[백세시대 / 금요칼럼] 인생 유튜브!
[백세시대 / 금요칼럼] 인생 유튜브!
  • 이호선 숭실사이버대 기독교상담복지학과장
  • 승인 2019.05.31 14:51
  • 호수 67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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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을 특징지을 수 있는

이름표 하나 붙여보고

만나는 사람에게 나를 보여주고

내가 직접 쓴 편지를 전달해보자

그게 바로 ‘유튜브’ 아닐까

요즘은 유튜브가 대세다. 뭔가 필요하다 싶은 주제를 동영상으로 자세하고 상세하게 제공하면서 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동영상의 주인이 되어 정보 세상의 조각을 주체적으로 만들어간다. 언제부터 우리가 화면의 주인공이 되었던가? 

처음 텔레비전이 나왔을 때, 사람들 중엔 브라운관 안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고 귀신이라며 기겁하기도 하고 놀랍다며 절을 하기도 했다는데, 요즘은 유튜브라는 창에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귀신처럼 나타나고, 내용마다 놀라자빠질 지경이다. 물론 텔레비전이 있기 전에는 그저 어른들의 이야기와 책의 글자가 우리에게 귀신처럼 두렵고 눈떠지는 정보로 놀라움을 주었다. 입이 글이 되고 글이 다시 말이 되던 시간을 넘어, 이제 글이 화면이 되고, 스토리가 사람이 되어 움직이고 놀라고 돈도 버는 세상이 되었다.

계모임 화장법으로 유명해진 박막례 할머니는 텔레비전 광고에도 나올 정도가 되었고, 유튜브로 전 세계를 사로잡은 방탄소년단은 BTS로 알려지며 전 세계에 팬클럽 ‘아미’(ARMY)도 갖게 되었다. 절찬리에 상영 중이던 영화도 유튜브의 영화 소개 조각을 모으면 한 편이 거뜬히 완성되고, 상상초월로 많은 양의 음식을 한 번에 먹는 사람들은 그 자체가 SF 공상과학 영화같기도 하다. 귀여운 아기의 이야기부터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이야기를 소재로 한 영상까지 유튜브는 그야말로 콘텐츠의 요람이다.

노인도 대세다. 가장 오래 산 사람들이 가장 많아지는 전대미문의 세상이다. 살아있는 역사라고 할 만큼 1세기를 넘게 사는 이들도 요즘 드물지 않다. 100년을 넘게 살다니, 거의 영생의 시대라 할만하다. 콘텐츠 시대에 우리의 인생 이야기를 유튜브에 담아내자면 다음 생애까지도 부족할 테지만, 우리가 선뜻 유튜브를 한다? 사실 엄두가 안 난다. 컴맹이라서라기보다는, 뭘 보여줘야 할지, 누가 보기는 할는지, 혹시 돈이 드는 건 아닌지, 잘못했다가 괜히 욕만 먹는 게 아닌지 시작도 전에 걱정이 태산이다. 주변에 유튜브 하는 분들이 많지 않은 이유는 아마도 이런 이유들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겁도 나고 잘 안되면 욕도 나올 것 같으니 그저 상상만 할 뿐이다.

그나저나 우리는 무얼 보여줄 수 있을까? 누가 우리를 볼까? 먼저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지 생각해보자. 얼굴? 얼굴이야 좀 주름지긴 했어도 이 정도면 뭐 괜찮다. 얼굴도 얼굴이지만, 우리의 핵심 주제는 무엇인가? 나이 70이 넘도록 인생을 한 단어로 정의해본 적이 없는데 말이다. 자, 그럼 먼저 핵심 주제부터 생각해보자. 내 인생에 이름표를 붙이면 뭐가 좋을까? 잘 모르겠으면 다른 가까운 이들에게 슬쩍 물어보는 것도 좋겠다. 

‘역시 당신은 부지런이지!’, ‘누가 뭐래도 김씨는 착하지’, ‘필체는 따라올 사람이 없지’ 등 다양할 것이다. 이 모든 평가가 나의 이름표가 될 수 있으니, 그 중 내가 생각하는 나의 이미지와 가장 맞는 이름표 하나 붙여보자.

다음, ‘부지런’, ‘착함’, ‘필체’를 두고 어느 시절에 어떤 일에 부지런했는지 내용을 손가락으로 꼽아가며 생각하고 적어보자. 언제 착한 사람이란 말이 적절했는지 헤아려보자. 필체가 정말 좋은지 아내에게 글 한번 써보자. 손가락으로 꼽으며, 헤아려보며, 글을 써보면, 그제야 나의 콘텐츠를 알게 된다. 우리의 콘텐츠가 대단한 게 아니라도 반드시 사람은 자기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 인생의 이름표, 기억의 숟가락으로 건져 올린 인생 건더기, 그게 바로 우리 인생 콘텐츠이다.

그리고 누가 우리를 볼까? 볼품없는 외모에 보잘 것 없고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우리를 누가 볼까 싶다. 맞다. 그러나 가만 생각해보라. 젊어서는 누가 우리를 봐주었나? 우리가 스스로를 나타내야 눈이 달린 이들이 스리슬쩍 우리를 보는 정도였다. 사람은 타인에게 조금도 관심이 없다는 걸 기억한다면 의도적 노출이 아니라면 어차피 우리는 기억에 없는 사람이 되는 게 당연하다. 명패는 스스로 이름을 갖지 않는다. 누군가 의지를 갖고 조각도를 대어야 비로소 이름이 적히고 의미를 갖게 되고, 사람들이 명패를 통해 그 이름자의 주인을 알게 된다. ‘보여주기’를 시작해야 ‘보기’를 시작한다. 누가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이란 본 것을 통해 이해하고 들은 것을 통해 판단한다. 평가의 도식은 매우 간단명료하다.

유튜브 그게 별건가? 내가 만나는 사람에게 나를 보이는 것, 그에게 내 자신에 대해 질문을 시작하는 것, 그리고 그 사람들에게 내 필체로 적은 작은 편지를 전달해보는 것, 그게 바로 유튜브다. 전기 코드 없고, 배터리 없이 기억과 심장의 온도로 보여주고 읽어주는 그것이 유튜브다. 오프라인의 구들장 심장 온도로 우리를 보여주는 너와 나의 연결고리, 당신(You)과 나를 잇는 튜브(tube), YouTube다. 이제 이름표 붙이러, 나를 물으러, 편지를 전하러 가자. 관계의 튜브를 이으러, 마음의 망을 펼치러 일어나 전화하고 만나자. 만나면 보이고, 말하면 들리고, 편지를 전하면 이어진다. 인생 유튜브하러 지금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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