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 ‘기생충’ 칸 황금종려상 수상… 세계에 한국영화 우수성 알려
봉준호 감독 ‘기생충’ 칸 황금종려상 수상… 세계에 한국영화 우수성 알려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9.05.31 15:04
  • 호수 67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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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시대=배성호기자]

극빈층 가족이 대저택과 얽히며 벌어지는 이야기… 송강호 등 호연 

전반 유쾌한 희극, 후반은 서스펜스… 극빈층의 슬픔, 장면에 묻어나

한국영화 최초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5월 30일 개봉했다. 작품은 기택네 식구들이 대저택과 얽히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진은 극중 기택네 식구들인 기우(최우식 분), 기택(송강호 분), 충숙(장혜진 분), 기정(박소담 분)의 모습.
한국영화 최초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5월 30일 개봉했다. 작품은 기택네 식구들이 대저택과 얽히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진은 극중 기택네 식구들인 기우(최우식 분), 기택(송강호 분), 충숙(장혜진 분), 기정(박소담 분)의 모습.

암전이 되자 스크린에 반지하 방의 모습이 등장한다. 빨래 건조대에 네 짝의 양말이 마치 절벽에 매달린 사람처럼 위태롭게 걸려 있고 먼지 가득한 창문을 통해 희망의 상징인 ‘빛’이 새어 들어와 되레 궁핍한 살림을 도드라지게 한다. ‘어떤 이야기를 하려고 이토록 지독한 가난의 미장센(연출자가 의도를 담아 소품 등 시각적 요소를 배열하고 조직하는 기법)을 선보였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고 이후 2시간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봉준호 감독의 신작 ‘기생충’은 기자만 놀라게 한 것은 아니었다. 칸의 심사위원들이 모두 엄지를 추켜올렸으니 말이다. 

한국영화 100년 사상 처음으로 칸 영화제의 대상격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기생충’이 5월 30일 개봉했다. 5월 25일(현지시간) 폐막한 제72회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최정상에 선 기생충은 상영 직후 8분간 기립박수를 받으며 수상을 기대케 했고 결과로도 이어졌다. 심사위원장을 맡은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은 “이 작품은 예측할 수 없는 방법으로, 다른 여러 개의 장르 속으로 관객을 데려간다”면서 “한국을 담은 영화지만 동시에 전 지구적으로도 긴급하고 우리 모두의 삶에 연관이 있는 그 무엇을, 효율적인 방식으로 재미있고 웃기게 이야기한다”고 평했다.

 

“한국영화 100주년에 큰 선물”

가장 마지막에 이름이 불린 순간 주연배우 송강호와 아이처럼 얼싸안으며 환호한 봉준호 감독은 “올해가 한국 영화 탄생 100주년인데, 칸 영화제가 한국 영화에 큰 의미가 있는 선물을 줬다”며 벅찬 감동을 표했다. 뿐만 아니라 190여국에 수출계약을 맺는 겹경사를 맡기도 했다. 이로 인해 흥행에도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이번 작품은 마땅한 일자리 없이 가족 모두 백수로 지내는 ‘기택’(송강호 분)네 장남인 ‘기우’가 성공한 사업가인 ‘박 사장’네 집에 고액과외 면접을 보게 되면서 얽히고설키는 이야기를 다룬다. 기택네 식구들은 아무도 돈을 벌지 않는 탓에 누구도 휴대폰 요금을 내지 못하고 윗집에 설치된 와이파이에 의존해 외부에 의사소통을 하는 지경에 이른다. 툭하면 술에 취해 자신의 집 창문에 실례를 범하는 취객에게도 화를 내지 못하고 참을 정도로 자존감도 바닥이다. 그러면서도 피자박스를 접는 부업으로 버는 적은 돈으로 온가족이 두런두런 모여앉아 맥주보다 싼 발포주를 마실 줄 아는 풍류와 가족애를 가지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기우의 절친이 찾아와 돈을 가져다준다는 수석(壽石)을 선물하며 자신의 영어 과외 알바자리를 대신해줄 것을 부탁한다. 대학 입시에서 계속 미끄러져 자격이 없다고 거절하던 기우에게 친구는 역시 미대 진학에 번번이 실패한 동생 ‘기정’의 위조 솜씨를 이용해 서류만 조작하면 큰 문제없이 따낼 거라며 독려한다.

이에 용기를 얻은 기우는 면접을 보러 박 사장 집에 방문했다가 집안에서 풍기는 돈 냄새를 맡고 하나의 계획을 설계한다. 그의 설계대로 일은 술술 풀려나가고 곰팡이 냄새 풍기는 집안에도 드디어 진짜 빛이 들려고 하는 듯 했다. 하지만 대저택에 숨겨진 놀라운 진실이 드러나고 가족의 운명은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린다.  

이번 작품은 마치 ‘짬짜면’처럼 블랙코미디적인 희극을 표방하는 전반부와 서스펜스가 가미된 비극의 후반부로 나뉜다. 기우가 박 사장 집안에 입성한 후 벌어지는 이야기에선 봉준호 감독 특유의 예상치 못한 대사를 통한 웃음을 유발하면서 유쾌하게 흘러간다. 하지만 후반부는 봉 감독의 전작인 ‘살인의 추억’과 ‘마더’에서도 잘 보여준 서스펜스를 통해 가난한 사람이 가진 원초적 비극을 드러낸다. 

 

돈냄새 나는 대저택의 비밀은…

기택네 가족은 가난 때문에 자존감이 낮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그들이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서 선택한 것은 자립이 아닌 의존이다. 영화 톤이 전반적으로 유쾌하지만 마냥 웃을 수 없는 블랙코미디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결말은 조금 다르다. 기우의 마지막 대사는 보는 사람에따라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작품은 희극과 비극이 교묘하게 절반씩 균형을 맞춘 듯하지만 한쪽에 묘하게 힘을 더 실으며 마무리된다. 단 어느 쪽에 더 힘을 실을 지는 관객의 선택에 달려 있다. 

특히 작품 곳곳에선 봉테일(봉준호와 디테일을 합친 말)이란 별명을 가진 봉 감독 특유의 섬세한 미장센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시각적으로 잘 전달한다. 기택네 식구들은 극빈층임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자신의 가난을 비관하진 않는다. 사회를 탓하거나 능력이 모자라다고 원망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봉 감독이 설정한 미장센을 통해 가난의 고통을 느낄 수 있다. 단연 압권은 영화 하이라이트에서 기택의 딸 기정이 똥물이 튀는 변기에 앉아 담배를 피는 씬이다. 집안에 닥친 최악에 상황에서 기정이 태우는 담배 한 개비와 그녀를 에워싼 풍경은 격한 슬픔으로 다가온다.    

봉 감독이 황금종려상 수상 후 대표작을 함께한 자신의 ‘페르소나’(분신) 송강호에게 한쪽 무릎을 꿇으며 상을 건네는 세레모니를 선보였을 만큼 송강호를 비롯한 이선균, 조여정, 최우식, 박소담, 장혜진 등 주‧조연 배우들의 호연도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기택을 연기한 송강호는 “계층에 대한 이야기,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무엇보다 말하고 싶었던 건 ‘인간에 대한 존엄’이었던 것 같다”면서 “봉준호 감독이 예술가로서 가진 뛰어난 통찰력을 집약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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