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문화이야기] ‘우문’에 ‘현답’ 나올까
[백세시대/ 문화이야기] ‘우문’에 ‘현답’ 나올까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9.06.07 10:19
  • 호수 67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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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통에 가보면 문재인 정부 경제가 어떻다는 걸 바로 체득하게 됩니다.”

최근 유튜브 스타로 발돋움한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난 6월 3일 공개된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과의 토론회에서 한 말이다. 이 말을 들으면서 필자는 실소가 나왔다. 정치인들은 경제 문제로 정권을 공격할 때 늘 시장을 끌어들이곤 한다. 그리고 대중들에게 효과적으로 먹힌다. 뉴스에서도 마찬가지로 “장사가 잘 안 돼요”라는 시장 상인의 인터뷰를 활용해 경제가 어렵다는 것을 부각시킨다. 

한때 필자는 수산물 유통을 전문적으로 취재하며 전국을 돌았다. 유통의 중심지는 시장이기에 서울 노량진수산시장과 가락시장, 부산공동어시장 등을 출입했다. 당시 초짜 기자라서 당연히 시장의 생리를 잘 몰랐고 어디서부터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도 막막했다. 

그래도 업무가 취재였기에 상인들을 대상으로 “장사 잘 되시나요”라는 뻔한 질문을 던졌다. 돌아오는 답변은 “어려워요”, “힘들어요”, “잘 안 팔려요” 같은 앓는 소리였고 이를 바탕으로 수산물시장이 어렵다는 주제로 기사를 쓰려고 했다. 얼마나 시장이 힘든지 보여주기 위해 수산물시장을 운영하는 법인의 협조를 얻어 전체 매출을 들여다보고는 깜짝 놀랐다. 상인들의 말과는 전혀 달랐던 것이다.

수산물은 계절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선선할 때 많이 팔리고 더울 때 덜 팔린다. 그래서 월 매출을 비교할 때 전월(前月)과 하는 것은 무의미하고 최근 5개년 같은 달의 매출을 살펴봐야 한다. 당시에는 이 수치가 크게 차이가 없었다. 

이 일을 겪고 처음 내린 결론은 ‘상인들은 거짓말쟁이’였다. 하지만 이 역시 속단이었다. 경험이 쌓이고 나서 왜 상인들이 앓는 소리를 하는지 알게 됐다. 질문 자체가 엉터리였던 것이다. 시장 상인들은 정치인과 기자들에게 ‘장사 잘 되나요’라는 질문은 지겹도록 듣는데 이는 ‘행복하십니까’처럼 답변하기가 모호한 것이다. 장사가 잘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설명해야 하고 자신의 매출도 일일이 공개해야 하는 등 말이 길어진다. 그래서 상인들은 잘 된다고 말하기는 그렇고 안 된다고 대충 답한 거였다.    

“작년 같은 달보다 잘 팔리나요?” 혹은 “지난해 매출에 비해 어느 정도 차이가 나나요”처럼 보다 구체적으로 질문하면 답은 완전히 달라진다. 혹은 객관적 수치를 들이밀며 질문하면 상인 역시 전문적이고 진지한 답변으로 화답한다. 

일상생활에서도 종종 엉터리 질문으로 오해를 사는 경우가 많다. 이때도 마찬가지다. 정성을 다해 질문을 해야만 진심이 담긴 답변이 돌아오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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