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영천에 ‘산수경로회’ 개소…“‘80세 이상만 모인다 하니 어르신 84명이 몰렸다”
경북 영천에 ‘산수경로회’ 개소…“‘80세 이상만 모인다 하니 어르신 84명이 몰렸다”
  • 김순근 기자
  • 승인 2019.06.07 13:53
  • 호수 67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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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시대=김순근기자]

‘80세 이상 경로당’은 규정에 없어 일단 ‘산수경로회’로 출발

영천시, 보은군 ‘산수경로당’ 벤치마킹해 해결방안 모색키로

‘산수경로회’ 개소행사에 앞서 고경면분회에 마련된 ‘산수경로회’에 달 현판 앞에서 어르신들이 기념촬영을 했다. 맨 오른쪽이 류원일 어르신, 그옆이 최남학 산수경로회 회장.
‘산수경로회’ 개소행사에 앞서 고경면분회에 마련된 ‘산수경로회’에 달 현판 앞에서 어르신들이 기념촬영을 했다. 맨 오른쪽이 류원일 어르신, 그옆이 최남학 산수경로회 회장.

지난 5월 24일 경북 영천시 고경면 복지회관에서 80세 이상만 이용할 수 있는 산수경로회 개소행사가 열렸다.

행사장을 가득 메운 80여명의 어르신들은 다소 들뜬 표정으로 사회자인 류원일 어르신(80)이 발표하는 산수경로회 개소 목적과 과정에 대한 설명에 귀 기울이며 큰 박수로 화답했다.

이만희 국회의원, 박영환·이춘우 경북도의회 의원, 이갑균·서정구 시의원 등 참석한 내빈들은 축사를 통해 “정작 만들어졌어야 하는데 늦은 감이 있지만 진심으로 축하드린다”며 개소식을 축하하고 힘 닿는데까지 지원을 아끼지않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인근 고경면분회로 자리를 옮겨 ‘산수경로회’ 현판을 달았다. 경북 영천시 최초의 ‘80세이상 이용가’ 경로당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산수경로회’ 이름은 충북 보은군에 3곳이 개설된 ‘산수(傘壽)경로당’에서 따왔다. ‘산수(傘壽)’는 80세를 가리키지만 100세까지 포괄하는 의미로 사용됐다. 그런데 이곳 ‘산수경로회’는 ‘산수경로당’이라 부르지 못하는 안타까운 사연이 있다.

보은군 산수경로당은 군에서 예산을 투입해 탄생시킨 공식 경로당이지만 이곳은 규정에 없어 공인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 1월 보은군내 3번째 산수경로당으로 문을 연 마로면분회 산수경로당은 보은군에서 6000여만원의 예산을 투입해 옛 주민자치센터 건물을 개축해 개설했고 경로당 운영비도 지원받고 있다. 

반면 영천시지회 ‘산수경로회’는 고경면분회(분회장 이희옥) 사무소에서 한지붕 두가족 생활을 해야 한다. 원래 10여평의 분회사무실 한켠을 16명의 남성어르신들이 경로당 공간으로 활용하던 곳이어서 ‘산수경로회’로 이름만 바꾼 셈이다.  

고경면분회 ‘산수경로회’가 탄생한 것은 보은군지회 마로면분회 산수경로당 개소식이 계기가 됐다. 지난 1월 29일 개소식 소식이 ‘백세시대’에 보도(3월1일자, 658호)된 것을 본 류원일 어르신(80)이 “우리도 산수경로당이 필요하다”며 제안하면서부터. 고경면분회 경로당에는 류 어르신을 포함해 모두 16명의 80세 이상 남자 회원들이 있었는데, “고경면에 뿔뿔히 흩어져 있는 외로운 80세 이상 노인들의 여가공간을 만들자”는데 만장일치로 합의했다.

류원일 어르신은 “지역의 80세 이상 노인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세대차로 60, 70대와 같은 경로당을 이용하는데 불편함을 갖고 있다”며 “보은군의 산수경로당 개설 소식에서 해결책을 찾게 됐다”고 밝혔다.  

곧 고경면분회 경로당을 중심으로 ‘산수경로당 개설 추진위원회’가 구성했고 류원일 어르신이 위원장을 맡았다. 고경면사무소 총무계장 출신으로 행정업무에 밝은 류 위원장이 본격 활동에 나서면서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지난 4월 26일 보은군지회를 방문해 이응수 지회장을 면담하고 마로면 산수경로당을 찾아 개설과정과 산수경로당 운영 등을 벤치마킹했다. 이를 바탕으로 산수경로당 개설 필요성과 취지 등을 영천시지회에 보고했다. 

성낙균 영천시지회장도 “취지에 동감한다”며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성낙균 지회장은 산수경로회 개설을 하루 앞둔 지난 5월 23일 최기문 영천시장을 만나 도움을 요청했다. 

최기문 시장도 취지에 동감하고 사회복지과에 방안마련을 지시했다. 영천시는 6월 중 보은군으로 직원을 보내 산수경로당 개소 및 운영에 관한 현황을 파악한 뒤 합리적 방안 모색에 들어갈 계획이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예산이다. 

영천시 사회복지과는 “관내 경로당 수가 420개로 타 지역에 비해 다소 많은 편”이라며 “타 읍면에서도 산수경로당 개설을 요구할 수 있어 이렇게 경로당이 계속 늘어나면 ‘1리(里) 1경로당’ 원칙에도 어긋나는데다 예산확보에 적지않은 문제가 발생한다”고 애로점을 토로했다.

그러나 일단 주사위는 던져졌다. 고경면 분회 산수경로회 개설 소식에 80세 이상 어르신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사전 등록 회원이 84명에 달했고 이중 76명이 개소식에 참석해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이날 최남학 어르신(90)이 초대 회장으로 추대됐고 류원일 어르신은 사무장을 맡게 됐다. 

비록 기존 10여평의 좁은 분회 사무실에서 출발했지만 비슷한 동년배끼리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잇점에 산수경로회 좁은 공간은 매일 20여명 이상의 어르신들로 북적이고 있다.

현재 일반 경로당처럼 보조금 등 예산지원이 이뤄지지 않아 식비, 관리비 등 살림은 회원들의 회비로 충당하고 있다. 개소식 행사비용도 회원들이 십시일반 낸 회비로 진행했다.

산수경로회 산파역을 맡은 류 어르신은 “60, 70대 후배들에 세대차를 느끼는 분들에게 좋은 선물이 됐으면 하는 바램에서 발벗고 나섰다”며 “산수경로회를 만드니 그동안 동네 경로당에 잘 나가지 않던 80세 이상 어르신들이 아주 만족해 하는 것을 보고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또 “언젠가는 반듯한 독립공간에서 보다 여유롭게 지낼 수 있는 날이 올 것을 학수고대 하고 있다”며 “그날이 올때까지 만사 제쳐놓고 열심히 발로 뛰겠다”고 열의를 보였다.

김순근 기자 skkim@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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