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세상읽기] 미국-중국의 기 싸움
[백세시대 / 세상읽기] 미국-중국의 기 싸움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9.06.14 14:02
  • 호수 67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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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지배하는 최강의 국가와 새로운 강국으로 떠오르는 신흥국 사이에는 충돌이 불가피하다. 기원전 5세기 그리스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도시국가 아테네가 부상하면서 스파르타와 격돌한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목격하고 “아테네의 부상과 그에 따라 스파르타에 스며든 두려움 때문에 전쟁이 일어났다”라고 말했다.

지금 미국(기존 지배세력)과 중국(신흥세력)의 무역 충돌을 두고 세계의 석학들이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란 말은 미국의 저명한 정치학자 그레이엄 엘리슨 하버드 대 교수가 만들어낸 말이다. 그는 지난 500년간 부상하는 신흥세력이 기존의 지배세력을 위협했던 16번의 역사적 사례를 분석했다. 그 결과 16번 중 12번은 전쟁이 일어났다. 엘리슨 교수는 신흥세력과 기존세력 간의 충돌 위험성을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라고 정의했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은 기(氣) 싸움이다. 서로의 자존심을 건 한판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아무런 전략도 갖지 않은 채 중국을 몰아붙이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트럼프에 밀릴 수 없다. 14억2000여만명의 자국민이 보고 있어서다. 

미국 언론들은 트럼프가 대략 세 가지 시나리오를 가지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하나가 중국이 양보하지 않고 장기전에 들어갈 경우 “나의 관세 폭탄 결단으로 미 경제가 더욱 강해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둘째는 특정 시점에 중국이 상당한 양보를 할 경우 트럼프는 “그 봐라. 중국을 상대로 한 무역 승리를 내가 해냈다”고 대통령 재선에 도전한다. 세 번째는 중국이 끝내 양보를 하지 않고 미중 무역 분쟁으로 미국이 타격을 입을 경우 트럼프는 소폭의 양보를 하고 주식시장은 상승한다. 그러면 트럼프는 “나로 인해 주가가 전례 없이 고공 중”이라고 선전한다. 

시진핑의 전략은 무얼까. 그는 물러설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시 주석은 중국에서 오류를 찾을 수 없는 완벽한 인물로 추앙 받고 있다. 시 주석의 말과 행동을 인민들이 배우고 따라할 정도다. 실제로 시 주석의 말과 행동을 전문적으로 학습하는 모바일 앱 ‘학습강국’이 올해 등장해 중국 전역에서 시진핑 배우기가 진행 중이다. 그런 상황이라 시 주석의 권위에 흠집을 낼 수 있는 양보는 용납될 수 없다. ‘미국에게 졌다’, ‘중국의 일대일로 꿈이 산산조각이 났다’는 비난이 터져 나올 경우 중국 공산당의 집권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게 홍콩 정치평론가들의 분석이다.

시진핑 기본 전략의 첫 단계는 희토류의 무기화다. 두 번째는 중국이 보유한 2조 달러어치의 미국 국채매각이다. 마지막은 애플·제너럴모터스 등 중국시장에서 큰돈을 버는 미 기업의 퇴출이다. 그렇지만 미 전문가들은 이런 전략에 대해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다. 우선 희토류 카드는 오히려 향후 미국의 대 중국 희토류 의존도를 낮추는 역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 미 국채 매각도 중국의 보유자산 가격의 하락을 수반한다. 미국 기업 퇴출 카드는 미국의 더 센 보복을 불러와 실현 가능성이 적다는 예측이다.

문제는 우리나라다. 미중의 압박은 시간이 갈수록 노골화되고 협박조가 돼가고 있다. 중국의 최대 통신장비업체 화웨이 사건이 대표적이다. 중국 정부는 최근 삼성·SK하이닉스를 포함한 글로벌 IT업체를 불러 미국의 대중 압박에 협조하지 말라고 했다. 중국은 미국 쪽에 가담하면 끔직한 결과에 직면하고 응징 당할 것이라고 겁박했다. 미국은 미국대로 한국을 죄고 있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 대사는 우리 정부에게 화웨이와의 거래를 끊으라고 공개적으로 주문했다. 

미 백악관은 “동맹국의 네트워크가 취약하다면 정보 공유문제를 다시 평가할 필요가 있다”며 미중 사이에서 선택을 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한국의 기업들은 피가 마를 지경이다. 중국의 경제보복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사드의 악몽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정부에 도움을 청했으나 정부는 “민간 영역이니까 민간 기업이 알아서 하라”며 외면하고 있다. 정부의 존재 이유가 없다. 

화웨이 분쟁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무역 분쟁이 풀린다고 해도 다음엔 첨단기술, 그 다음엔 공급망, 해외투자 식으로 여러 분야로 싸움이 번질 것이다. 정부는 원칙을 세워놓고 대응해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 외교·안보·경제 역량을 총동원해 종합적인 국가 전략 차원에서 다뤄야 한다. 눈앞에 떨어진 불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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