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금요칼럼] 세상의 배려를 받으며 살아야 해
[백세시대 / 금요칼럼] 세상의 배려를 받으며 살아야 해
  • 신은경 차의과대학교 교수
  • 승인 2019.06.14 14:06
  • 호수 67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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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세 이상 정중히 거절한다’는 

문구를 내건 식당을 보면서 

민망하면서 화가 나

세대간 이해가 점점 어렵다지만

서로 배려하며 살 수는 없을까

어느 프랜차이즈 식당 카운터에서 70대 남자 손님이 주문하다 20대 아르바이트 여직원에게 물었다.

“여기 아침에 몇 시에 열어요?”

“네? 아침에 몇 시에 일어나냐고요?”

“아니, 아침에 몇 시에 문을 여냐고요?”

“아, 몇 시에 오픈 하느냐고요?”

아, 오픈! 그렇게 간단한 단어를 두고 왜 어른은 ‘몇 시에 열어요?’라고 물었을까? 근데, 이 아가씨는 그렇게 풀어서 말하면 왜 못 알아듣는 걸까?

만 원짜리 지폐를 꼭꼭 접어 손에 쥔 할머니가 유명 커피 프랜차이즈 점에서 음료를 주문하는 걸 본 적이 있다. ‘어떤 사이즈로 드릴까요? 아이스이신가요? 드시고 가실 거예요? 머그잔에 드려요? 카드를 앞에 꽂아 주세요.’ 할머니는 쏟아지는 질문에 어리둥절해하며 하나도 대답을 못 하고 쩔쩔매고 서 있다. 

이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하는 카페에 할머니는 왜 오셨을까? 근데 여점원이 할머니의 손에 잠시라도 눈길을 주었다면 그렇게 기계적인 질문만 던지고 있진 않았을 텐데.

비단 이곳뿐만이 아니다. 요즘은 나이 든 사람들이 함께 살기에 어려움이 많다. 특히 인력을 줄이기 위해 매장의 컴퓨터로 주문부터 하고 들어가야 하는 곳이 많아 겁부터 난다. 여러 가지 선택을 하고, 신용카드로 지불하고, 먹고 싶은 음식과 사이드 음식과 음료를 고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노 키즈 존(No Kids Zone)’이라는 것이 있다.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올 수 없다고 표시하는 레스토랑을 말한다. 찬반으로 나뉘어 대학생들이 재미있는 논리로 토론을 벌이는 주제다. 노 키즈 존이 있어야 한다는 여러 가지 논리 중 강력한 것은 아이들이 뛰어다니다 뜨거운 음식에 데이거나 다칠 수가 있다는 것. 아이가 부주의해서, 혹은 그 부모가 챙기지 않아 다친 것을 주인이 책임지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 그런 정책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49세 이상, 정중히 거절합니다’ 라는 문구를 써 붙여 논란의 대상이 된 식당이 있었다. ‘나이 든 손님은 이제 들어오지 마세요’라고 표시하는 ‘노 시니어 존 (No Senior Zone)’을 선언한 것이다. 아직 일반적인 추세는 아니지만 앞으로 많아지지 말라는 법이 없다. 젊은이들이 많이 들어오는 관악구의 한 포장마차에 붙여진 문구인데, 사람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그렇게 써 붙이긴 했어도, 무조건 나이를 확인하고 거절하는 것은 아니란다. 그런데 식당 안에 들어왔을 때 중장년으로 인지되면 주인이나 손님이 나가 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게 써 붙인 이유는 중장년의 여성 주인이 혼자서 식당을 운영하는데, 유독 중장년 손님들이 말을 많이 시켜서 일일이 대응하며 일하기가 힘들었다고. 말 많이 하는, 그리고 빨리 나가지도 않아 회전율을 떨어뜨리는 중장년, 이른바 ‘진상’ 손님을 쫓아버릴 구실을 써 붙인 모양이다.

사람들은 민망하고 부끄러우면 화를 내게 되어 있다. 자기가 더 작아지고 비루해질 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기기라도 하듯 화를 벌컥 내며 그렇게 대우한 상대에게 뭐라도 한마디 하고 싶어진다. 과연 그렇게 쫓겨나올 때 나라면, ‘아, 그렇군요’ 하며 곱게 발걸음을 돌려 나올 수 있을까 싶다. 과연 50세 이상은 그런 대우를 받아야 할까?

몇 년 전만 해도 이런 식당주인의 결정에 나도 수긍했을 것이다. ‘그래, 그래도 돼.’ 그런데 지금은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무심코 들어간 식당에서, ‘저 죄송한데, 나가 주시겠어요? 여긴 49세 이상은 못 들어오십니다’ 하면 기분이 어떨까 싶다. 얼마나 민망할까? 

점점 젊은 세대와 나이 든 세대가 함께 사는 일이 어렵게 느껴진다. 특히 서로 커뮤니케이션이 안 되는 것이 안타깝다.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고 알아듣지 못하다 보니, 서로 반감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서로 피하게 된다.

하지만 쉽사리 어느 편을 들 수가 없다. 젊은이를 나무랄 수도, 나이 든 사람들을 흉볼 수도 없다. 왜냐하면 우린 어차피 함께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서로의 입장을 조금씩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다. 어려움이 있다는 걸 서로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상대가 얼마나 힘든가를 헤아려야 그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젊은이는 나이 들면 얼마나 힘든 것이 많아지는지 알아야 하며, 어른들은 젊은이들의 삶도 얼마나 고달픈지 알아야 한다. 그래야 서로 배려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오늘의 결론은 이렇다. 노인들은 세상의 배려를 받으며 살아야 한다. 그리고 젊은이들도 세상의 배려를 받으며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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