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전당 ‘그리스 보물’ 전, 알렉산더 대왕 조각상 머리에 뿔이 달린 까닭은
예술의전당 ‘그리스 보물’ 전, 알렉산더 대왕 조각상 머리에 뿔이 달린 까닭은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9.06.14 14:15
  • 호수 67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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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시대=배성호기자]

‘아가멤논 황금가면’ 등 그리스 24개 박물관서 엄선한 유물 350여점

호메로스 등 인물 두상, 아테네식 민주주의 보여주는 추첨기 등 눈길

그리스 정부가 주최하는 이번 전시에서는 서구문명 형성에 가장 큰 기여를 한 그리스의 엄선된 유물 350여점을 소개한다. 사진은 전시에 소개된 ‘알렉산드로스 판 조각상’, ‘아테나 두상’, ‘황소머리 술잔’의 모습.(왼쪽부터 순서대로)
그리스 정부가 주최하는 이번 전시에서는 서구문명 형성에 가장 큰 기여를 한 그리스의 엄선된 유물 350여점을 소개한다. 사진은 전시에 소개된 ‘알렉산드로스 판 조각상’, ‘아테나 두상’, ‘황소머리 술잔’의 모습.(왼쪽부터 순서대로)

신들의 신 ‘제우스’, 전쟁의 신 ‘아레스’, 지혜와 전쟁의 여신 ‘아테나’ 등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수많은 신들과 그들의 이야기는 예나 지금이나 소설‧영화‧게임 등 수많은 콘텐츠로 꾸준히 재탄생됐다. 때로는 익살스럽게 때로는 공포스럽게 변주되면서 현재까지도 사랑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을 신으로 추앙한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들을 어떻게 묘사했을까. 

이런 물음을 해소해주고 찬란한 역사를 가진 그리스의 보물들을 한 자리에 소개하는 전시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오는 9월 15일까지 그리스 정부가 주최하는 ‘그리스 보물전, 아가멤논에서 알렉산드로스 대왕까지’ 전에서는 청동기시대인 에게해 문명에서부터 정복 전쟁을 이뤄낸 알렉산드로스(알렉산더) 대왕 시대의 유물까지 그리스 문명의 발전 과정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그리스 전역의 24개 박물관에서 엄선한 유물 350여 점이 소개된다. 규모부터 남다른 이번 전시는 ‘그리스 문명의 서막, 에게해 문명’, ‘미케네인들’, ‘호메로스의 세계, 신화와 역사’ 등 총 9개의 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아크로티리의 소년 벽화(기원전 17세기)
아크로티리의 소년 벽화(기원전 17세기)

전시장에 들어서면 맨 먼저 기원전 3000년 경 출현한 에게해 문명 때 제작된 조각상 및 도자기, 벽화, 장신구 등이 관람객을 맞는다. 에게해 지역의 청동기 시대를 일컫는 에게해 문명은 크레타섬, 키클라데스 제도, 그리스 본토 간의 문화 교류와 이 지역의 문명을 한꺼번에 통칭한다. 이 시기 유물 중에는 키클라데스 제도에서 발굴된 대리석 조각상이 인상적이다. 팔짱을 끼거나 않아 있는 형태의 모습을 한 조각상들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여성상이 많았다. 대리석 여성 조각상들은 귀한 부장품들로 무덤에서 많이 발견됐는데 키클라데스 사람들의 종교의식 및 장례의식을 보여준다. 

나란히 소개된 ‘황소머리 술잔’ 역시 크레타섬에서 꽃피운 미노스 문화의 종교의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황소를 신성시한 미노스인들은 머리에 있는 두 개의 구멍을 통해 술을 흘려보내며 숭배의식을 펼쳤다고 한다. 당대 미노스인들의 의식주를 살펴볼 수 있는 ‘아크로티리의 소년 벽화’도 눈여겨 봐야 한다.

또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통해 그리스 신화를 널리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한 음유시인 ‘호메로스’의 두상도 전시됐다. 기원전 800∼750년경 활동한 것으로 추정되는 그가 남긴 두 작품은 서양 문학의 시초라 여겨진다. ‘트로이의 이야기’라는 뜻의 일리아스는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를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납치하면서 시작된 트로이 전쟁에 대해 다뤘다. 10년간 지속된 전쟁 중 거대한 목마 안에 숨어들어 트로이군을 상대로 승리한 그리스인들의 이야기로 잘 알려졌다.

기원전 5~4세기 번성한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 ‘아테네’ 문명의 발전을 엿볼 수 있는 유물도 소개한다. 아테네에서는 성인 남성이라면 누구나 입법‧통치‧판결 과정에 참여할 수 있었다. 아테네인들은 제비뽑기로 공직자를 선출했다. 출신 가문이나 보유 재산의 정도와 관계없이 나라를 위해 일할 사람을 공정하게 뽑기 위해서였다. 이로 인해 민주주의의 탄생지로 불리기도 한다.

또 재판에도 시민들이 직접 참여했는데 대리석 판에 홈을 내고 그 안에 이름표를 넣은 다음 무작위로 뽑힌 사람이 배심원을 맡았다. 전시에서는 이러한 아테네 민주주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클레로테리온’(추첨기)과 ‘피나키온’(이름표)을 볼 수 있다. 

그리스는 올림픽의 발상지로도 유명하다. 기원전 9세기부터 올림피아에서 4년마다 한 번씩 올림픽을 열었는데 참가국들은 지금과는 다른 생소한 종목들로 경쟁하며 동맹 관계를 공고히 했다. 당시 수상자들에겐 금메달 대신 월계수로 만든 관과 보상금을 줬는데 전시에서는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알렉산더 대왕(기원전 356∼323년)을 형상화한 조각상도 흥미롭다. 현재 그리스 도시 중 하나인 마케도니아의 왕이었던 알렉산더는 재위 기간 동안 그리스를 넘어 이집트, 페르시아, 인도를 아우르는 대제국을 건설했다. 조각상은 이런 알렉산더 대왕을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두 개의 뿔을 가진 염소의 모습을 한 목가의 신(神) ‘판’의 모습으로 표현했다. 그리스에서 풍요와 번식을 상징해 숭배됐던 판을 본떠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당시 사람들이 그를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보여준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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