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노인 인권침해 실태와 예방…“치매 환자라는 이유로 무시하고 모욕하는 사례 많아”
치매 노인 인권침해 실태와 예방…“치매 환자라는 이유로 무시하고 모욕하는 사례 많아”
  • 이수연 기자
  • 승인 2019.06.14 14:17
  • 호수 67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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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력 저하 악용해 재산 몰래 빼돌리거나 성폭행 하는 경우도 있어

치매에 대한 부정적 인식 바꿔야… 일본에선 치매 대신 ‘인지증’으로 불러

치매국가책임제가 시행되면서 치매 치료비에 대한 국가의 지원이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치매 환자의 인권에 대한 고려와 보장은 미흡한 실정이다. 요양시설이나 가정에서 인권 침해 및 학대 사례가 끊이지 않는다. 

경기광역치매센터는 6월 4일 ‘치매 환자, 인권을 말하다’라는 주제로 치매 아카데미를 열어 치매 환자의 인권과 실태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치매 아카데미 강연 내용을 중심으로 치매 노인 인권 문제를 정리해본다. 

◇치매 노인의 인권

2017년 노인학대 현황보고서에 따르면 노인학대 대상자 중 1122명이 치매노인이고 학대 발생 장소는 가정 내에서 발생한 건수가 770건으로 가장 높았고, 생활 시설이 276건으로 조사됐다. 

아셈노인인권정책센터 김현정 정책기획팀장은 “먼저 치매에 대한 부정적이고 적대적인 인식을 바꿔야 한다”며 “잘못된 인식이 깔려있을 때 차별과 학대를 정당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팀장은 인식을 개선하는 예로 ‘치매(癡呆)’라는 단어를 바꿔 사용하는 것을 들었다. 일본은 ‘치매’라는 말에 어리석다는 의미가 있어 부정적인 인식을 고착화할 것을 우려해 ‘인지증’이라고 고쳐 말하고 있다. 그는 또 “앞으로 치매 치료는 자유를 제한하기보다는 환경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돌봄 시간을 확대하되 지역 주민이 관심을 갖고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지역 내 안전망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돌봄 영역이 확대될수록 치매 노인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고, 병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면서 인권 향상에 도움이 될 것을 기대할 수 있다. 

◇치매 노인 인권침해 현장 사례 

노인인권침해는 노인학대로 나타난다. 노인학대는 신체적 학대, 정서적 학대, 성적 학대, 방임, 유기 등 다양하다. 이 중에서도 일상에서 노인들이 ‘학대당하고 있다’고 느끼는 지점은 정서적 학대를 당할 때였다. 경기북부노인보호전문기관 김지순 실장은 “설문에 응한 70% 이상의 어르신이 가정에서 혹은 시설에서 벌어진 상황을 제대로 설명 듣지 못하거나 무시당할 때, 욕을 하는 등 모욕적인 발언을 들었을 때, 신체적 학대를 당할 때보다 더 큰 모멸감을 느낀다고 답했다”고 지적했다. 

위협이나 협박, 고함이나 욕설 등은 물론이고, 쳐다보지 않고 무시하거나, 말을 걸지 않고 대화하지 않는 것도 정서적 학대에 해당한다. 또 노인과 관련된 결정에서 소외시키고 모든 것을 보호자의 편의만 따져 결정하는 것도 정서적 학대이다. 

김지순 실장은 “노인이 가족이나 보호자와 대화가 없거나 눈치를 보고, 늘 불안한 모습을 보이거나 아무런 반응이 없을 때, 말하기를 꺼리는 등 징후를 보일 때는 의심해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실제 현장에서 벌어진 치매노인 학대 사례를 설명했다. 

한 요양원에 유독 사이가 좋은 남자 어르신과 여자 어르신이 있었다. 부부는 아니었고, 여자 어르신만 치매 증상이 있었다. 낮에는 어딜 가나 꼭 붙어 다니고 무엇이든 함께해서 요양원에서도 사이가 좋은 걸로 유명했다. 그런데 밤이 되면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피하고 두려워하며 혼자 있기를 원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자 이상하게 여긴 요양원 사무국장이 야간근무를 하며 지켜봤다. 그리고 그날 밤 할머니가 혼자 쓰는 방에 할아버지가 아무도 몰래 들어가 성폭행하고 나가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김지순 실장은 “낮에는 기억을 잃었던 할머니가 밤이 되면 무의식적으로 폭력을 인지하고 두려워했던 것”이라며 “몸이 폭력을 기억해 이상한 행동을 보였고, 관리자가 낌새를 알아채서 사건이 일어났던 것을 밝힐 수 있었다”고 말했다. 

양 어르신(80)은 경증 치매 판정을 받아 하루가 다르게 서서히 기억을 잃어갔다. 어르신은 혼자 살았고, 노인보호시설(데이케어센터)을 오가는 것 외에는 가족이나 다른 사람들과 특별한 교류가 없었다. 어르신에게는 자신의 명의로 된 건물과 자산이 있었는데, 어느 날 어르신 명의의 건물을 동생이 팔아 자신의 몫으로 가로채는 일이 발생했다. 

이후 이 사실을 알게 된 시설장이 어르신의 동의를 얻어 월 지급식 보험에 가입했다. 이를 통해 양 어르신은 자산을 묶어두면서 매월 일정한 금액을 받아 생활비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 동생은 ‘어르신의 재산을 착복했다’는 이유로 시설을 고소했다. 다행히 양 어르신은 자기 자신이나 주변 지인, 있었던 일에 대한 기억은 점점 희미해졌지만, 통장에 찍힌 마지막 금액까지도 모두 기억하고 있을 만큼 돈에 대한 것들은 철저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이미 동생이 자신의 건물을 판 금액을 챙겨 간 것도 인지하고 있었고, 덕분에 남은 재산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었다. 

양 어르신처럼 치매에 걸렸거나 질병이나 장애, 노령 등의 사유로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결여된 사람들은 공공후견제도를 활용하도록 해야 한다. 지난해 9월부터 시행된 치매 공공후견제는 지방단체의 장이 후견인을 물색해 선임함으로써 피후견인의 재산을 관리하고 의료행위 등의 신상에 대한 결정을 대행해주는 제도다.  

◇‘내 문제’라는 사회적 인식 확산돼야 

치매에 걸린 노인들은 인지 능력이 퇴화되면서 위험한 상황을 만들기도 하고, 역으로 돌보는 보호자나 종사자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치매 노인 인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돌봄 환경이나 시설 등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치매’를 사회적인 책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김현정 팀장은 “노인 인권 문제는 다양한 환경에서 벌어질 수 있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가와 사회가 환경을 조성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노인 문제는 나 자신의 문제이기도 하다”며 “치매노인 인권에 대해서는 더욱 활발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수연 기자 sylee@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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