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노인회 충남 예산군지회 주교3리경로당, 신나는 공동작업장
대한노인회 충남 예산군지회 주교3리경로당, 신나는 공동작업장
  • 김순근 기자
  • 승인 2019.06.21 15:40
  • 호수 67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백세시대=김순근기자]

“출근이 즐거워”… 할머니 18명 매일 일하는 재미에 행복지수 상승

박상목 예산군지회장 “의욕넘쳐 성공 확신…3~4곳 추가 개설 추진”

“일하는게 즐거워!” 예산군지회 주교3리경로당 어르신들이 공동작업장에서 쇼핑백에 손잡이 끈을 끼우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일하는게 즐거워!” 예산군지회 주교3리경로당 어르신들이 공동작업장에서 쇼핑백에 손잡이 끈을 끼우는 작업을 하고 있다.
공동작업장이 문을 연 한달 뒤 신안철 충남연합회장(오른쪽 다섯번째), 강희성 대한노인회 복지부총장(신안철 회장 왼쪽), 박상목 예산군지회장(오른쪽 두 번째)이 방문해 어르신들을 격려했다.
공동작업장이 문을 연 한달 뒤 신안철 충남연합회장(오른쪽 다섯번째), 강희성 대한노인회 복지부총장(신안철 회장 왼쪽), 박상목 예산군지회장(오른쪽 두 번째)이 방문해 어르신들을 격려했다.

“엄마 일하러 간다.”

충남 예산군 예산읍 마상길 주교3리 (여자)경로당의 맏언니 마인숙 어르신(81)은 아침이 즐겁다. 간단히 아침을 먹고 출근길에 나선다. 직장은 경로당. 일터는 뒷마당에 마련된 ‘마상골 공동작업장’이다.

출근 길에 외지에 사는 자녀들이 안부 전화를 걸어오면 “나 바뻐. 출근해야해!”라며 생색낸다. 이전에 아이들에게 전화를 할 때 자주 듣던 말인데, 이제 자신이 하니 룰루랄라 신이 난다.

“일하러 간다는 게 월매나 신나유. 좋아죽것어유”

이는 마인숙 어르신만이 아니다. 주교3리 경로당 18명의 회원들이 모두 같은 마음이다.

매일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공동작업장에 옹기종기 모여 일하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면세점에 납품하는 쇼핑백의 손잡이 끈을 끼우는 등 단순 작업이지만 심심할 틈이 없다. 한 회원이 갖다놓은 카세트에서 흥겨운 노래가 흘러나오고 간밤에 본 드라마 이야기부터 동네 경조사, 개인적인 이야기까지 말하다보니 하루해가 짧다. 

사장이나 쌍심지 켜고 일을 감독하는 이도 없다. 일한 것만큼 성과가 지급돼 일 못한다고 핀잔 주거나 빨리 하라는 독촉도 없다. 

출퇴근과 근무시간도 자유롭다. 때문에 오전에 공공근로작업을 하고 오후에 일하는 ‘투잡’어르신들도 있다. 많은 직장인들이 출근을 힘들어 하지만 여기선 예외다. 주말과 공휴일에도 특별한 일이 없으면 출근한다. 이곳에선 일이 곧 재미있는 일상이 됐다.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일 안하고 시간 보내는 게 힘들지. 일하는 건 재미있어”라는 답이 돌아온다.

이처럼 지금 일하는 즐거움에 푹 빠져 있지만 1년여 전만해도 전혀 딴판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또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한숨만 나왔다. 경로당도 주 1회 진행되는 프로그램 시간 외에는 딱히 소일거리가 없다. 회원들과의 잡담이 끝나면 긴 시간과의 싸움이 시작된다. 화투를 치거나 윷놀이를 하고 안마의자에 앉아도 보지만 하루해가 너무 길었다.

“너무 따분하고 심심해. 일좀 했으면 좋겠어!”

작년 5월 어느날 한 회원이 무심코 한 말이 무료한 일상을 탈출하는 신호탄이 됐다. 중지를 모은 끝에 ‘일거리 만들기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로 했다.

며칠 뒤 마인숙 어르신 등 3명으로 구성된 대표단이 대한노인회 예산군지회의 문을 두드렸다. “일거리좀 줘유!”

예산군지회 사상 처음 있는 ‘사건’이었다. 뜻밖의 방문이었지만 박상목 지회장과 지선자 취업지원센터장은 어르신들의 얘기에 전적으로 공감했고 도움에 나섰다. 

인근 아산시 소재 한상기업을 섭외해 일거리를 공급받기로 했다. 문제는 장소였다. 작업물건을 쌓아두고 완성품을 보관하는 등 넓은 공간이 필요한데 여자경로당은 좁아 남자경로당을 빌리기로 했다. 당시 6월 모내기철이라 남자어르신들의 경로당 방문이 뜸했던 터라 흔쾌히 장소 이용을 양해받았다.

이렇게 해서 작년 6월 19일, 마상골 공동작업장이 오픈했고 할머니들에겐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원하는 일을 하게 됐고 일을 하니 시간이 잘가고 소득도 올려 일거양득이었다.

처음엔 일이 서툴러 다시 작업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갈수록 숙련이 되어 속도도 빨라졌다. 그렇게 할머니들의 행복지수가 쑥쑥 올라가기 시작할 무렵 문제가 생겼다. 7월 중순에 접어들면서 모내기가 끝나 한가해진 할아버지들이 경로당을 찾기 시작했는데 일하는 할머니들 옆에서 머쓱하게 있다가 이내 밖으로 나갔다. 아예 경로당에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배회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눈치 9단의 할머니들이 이런 걸 모를 리가 없었다. 고민 끝에 할아버지들에게 피해를 주지말자며 눈물을 머금고 작업을 중단했다. 일을 시작한지 한달 보름여만이다.

할머니들이 지회를 찾아와 이같은 결정을 알렸을 때 지선자 취업지원센터장은 마음이 몹시 아팠다며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딱한 사정을 들은 박상목 지회장이 장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백방으로 수소문하며 노력한 끝에 지난 4월 옛 복지관이 사무실로 사용하던 빈 컨테이너를 작업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예산군으로부터 협조를 받아냈다. 이와함께 경로당 뒤편 군유지 132㎡를 컨테이너를 놓을 공간으로 임대받았다. 

컨테이너를 작업공간으로 새롭게 꾸미고 마을까지 옮기는데도 적지 않은 비용이 예상됐다. 이에 지선자 지회 취업지원센터장이 충남연합회 및 중앙회 취업지원센터에 사정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해 중앙회로부터 사업비를 지원받았다. 

이같은 우여곡절 끝에 지난 5월 20일 ‘마상골 공동작업장’ 이 다시 문을 열었다. 어르신들은 너무 기뻐 이날 마을 잔치를 열고 자축했다.

이곳 작업장에서는 하루 7000 ~7500개를 작업해 1인당 30만원 내외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마인숙 어르신은 “큰돈은 아녀. 그렇지만 돈보다 얻는 게 더 커. 재미여. 그저 좋아”라고 말한다. 이런 마음들이니 공동작업장은 일하는 곳이기 보다 웃음소리와 노랫소리가 그칠 줄 모르는 놀이공간이 됐다. 

작업장이 다시 문을 연 한달여 뒤 현장을 방문한 신안철 충남연합회장은 즐겁게 일하는 모습을 보고 “일자리야 말로 건강하고 행복하게 노후를 보낼 수 있는 최고의 묘약임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신안철 연합회장은 “하고자 하는 의지와 노력이 너무 자랑스럽다. 무엇보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그런 마음가짐이 정말 훌륭하다”며 “이런 사례가 다른 곳으로 많이 확산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누구보다 기쁜 사람은 박상목 지회장이다. 공동작업장 개설 후 수시로 현장을 방문해 격려하고 애로사항을 살펴보는 등 성공적인 운영을 돕고 있다. 박상목 지회장은 “모두 의욕이 대단해 잘 되리라 확신한다”며 “이번 경우를 토대로 조만간 3~4곳의 마을에 공동으로 밤이나 은행, 마늘 등을 손질하는 공동작업장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순근 기자 skkim@100ssd.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