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문화이야기] ‘집사부일체’가 감동을 못주는 이유
[백세시대 / 문화이야기] ‘집사부일체’가 감동을 못주는 이유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9.06.28 15:08
  • 호수 67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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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모처럼 토요일 저녁을 집에서 TV를 시청하며 보냈다. 마땅히 볼 게 없어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던 중 KBS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에 눈이 갔다. 이름 그대로 ‘태조 왕건’과 ‘야인시대’로 유명한 배우 김영철이 전국의 동네를 걸어다니며 만나는 장소와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유명한 관광지도 있고 아닌 곳도 있지만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날은 필자가 어린 시절을 보낸 중랑구 면목동과 망우동 일대가 소개됐다. 눈에 익은 장소들과 함께 수십 년 간 해장국을 운영해온 어르신과 거의 사라진 국수공장을 지키는 노부부의 사연도 함께 소개됐다. 김영철은 이들이 만든 음식을 맛보고 국수 제작과정을 직접 따라해보며 최고는 아니지만 최선의 삶을 살아온 어르신들에게 경외심을 보냈다. 

동네 한 바퀴와 비슷한 프로그램이 유재석이 진행하는 tvN의 ‘유 퀴즈 온 더 블록’(이하 유퀴즈)이다. 퀴즈쇼를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동네 한 바퀴처럼 전국의 동네를 거닐다 만나는 사람들의 사연을 소개하는데 중점을 둔다. 유재석은 구석구석 돌아다니다 골목길에서 쉬고 있는 어르신들이나 자신의 일터에서 땀을 흘리는 중년의 노동자, 취업난 속에서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노력하는 청년들을 만난다. 그들 역시 최고는 아니지만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었고 유재석은 시청자들을 대신해 이들의 삶에 박수를 보낸다.

반면 SBS에서 방영 중인 ‘집사부일체’는 두 프로그램과는 완전히 다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각 분야에서 정점에 선 성공한 사람들, 이른바 ‘사부’들을 집중적으로 찾아가 노하우를 엿듣는데 중점을 둔다. 간혹 소방관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지난 1년 중 사부로 등장한 사람 중 절반이 연예인이었다. 문제는 자칭 시청자를 대표해 이들을 만나는 연예인들도 각 분야에서 나름 성공한 청년들이라는 것이다. 

누구나 최고가 될 수는 없다. 올림픽도 시상대는 3위까지만 허용한다. 금메달을 제외한 대부분의 메달리스트는 금세 잊히는 현실에서 순위에 들지 못한 사람은 일말의 관심조차 받지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게 아니다. 수많은 구슬땀을 흘렸고 박수를 받을 만큼 노력했다. 시대정신 역시 평범하지만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존경받아 마땅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동네 한 바퀴와 유퀴즈는 호평을 받고 집사부일체는 비판을 받는다. 집사부일체는 최근 연예인 일변도에서 벗어나려고 하고 있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사부로 삼아야 할 대상이 1등의 삶인지 최선의 삶인지를 되새겨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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