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세상읽기] “주역 한 번 공부해볼까”
[백세시대 / 세상읽기] “주역 한 번 공부해볼까”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9.06.28 15:15
  • 호수 67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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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후반에 회사 선배가 운세를 봐줬다. 선배는 독자적으로 주역을 배웠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50대 중반에 회사에서 나가게 되고 에이즈같은 큰 병을 얻는다”. 당시 기자는 승진한 직후였고 사람을 내치지 않는 전통을 자랑으로 여기는 회사라 내심 턱도 없는 소리라며 무시했다. 그런데 어찌어찌해 50대 중반에 회사를 나오게 됐다. 아직 몹쓸 병은 걸리지 않았지만 에이즈에 걸릴 것이라는 선배 말이 가끔 기억에 떠올라 심기가 불편해지기도 한다.  

남자들은 나이가 들면 주역에 관심을 갖는 것 같다. 공자도 “만년에 이르러 역(易)을 좋아하여 ‘역’을 읽다가 가죽 끈이 세 번 끊어졌다”고 했다. ‘논어’에는 이런 말도 나온다. “나에게 몇 년의 시간이 더 주어져 쉰 살에 역을 배운다면 큰 과오는 없을 것이다”.

수천년의 역사를 지닌 ‘역경’(易經)은 인류의 욕망과 지혜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역경의 원래 이름이 ‘역’이다. 주역은 ‘주나라의 역’이라는 말이다. 역경에서 ‘역’은 변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자연의 원리에서 우리 삶의 변화 원리를 탐구하고 그 원리에 기대어 미래를 예측하고자 하는 책이다.  

아득히 먼 옛날 복희씨가 음양의 변화와 자연이 끊임없이 변화하고 순환하는 원리를 담아 팔괘를 창조했고 이후 주(周) 문왕이 팔괘를 중첩해 육십사괘를 만들고 그에 대한 괘사와 효사를 쓰면서 더욱 풍부한 내용을 갖게 됐다. 여기에 공자가 쓴 해설서 십익(十翼)이 더해지면서 미래의 길흉화복을 점치는 점서에서 유교 경전의 반열에 올랐다.

우리나라 제일의 주역가로 꼽히는 대산 김석진(92) 옹이 최근 입을 열었다. 충남 논산에서 태어난 대산은 19세에 당대의 한학자 이달 선생 문하에 들어가 13년간 한학 공부를 했다. 생계를 잇기 위해 한때 한약방을 꾸리면서도 주역 연구를 계속했고 1985년 흥사단 강당에서 시작한 주역 강좌는 큰 인기를 끌었다. 제주까지 전국을 누볐고 연인원 7000여명이 강의를 들었다. 호를 지어준 이도 3000명에 이른다. 

대산은 올해 국운을 ‘수뢰둔’(水雷屯)괘로 한마디로 “어렵다”고 말했다. 국내외 정세를 상세히 풀었다. 

“둔자는 세 가지로 풀이한다. 첫째는 시교이난생이다. ‘처음 사귀어 어렵다’는 뜻이다. 둘째는 즉녹무우다. ‘사슴을 쫓는데 몰이꾼이 없다’는 뜻이다. 몰이꾼이 없으니 혼자서 산속을 헤맬 뿐이다. 지금 청와대와 국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이런 형국이다. 협치가 필요한데 독불장군식이다. 셋째는 승마반여다. ‘말을 탔다가 내린다’는 뜻이다. 말을 탔으면 달려야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는 건 중간에 돌아선 것이다. 미북 하노이 정상회담이 결렬된 채 교착 상태에 빠진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대산은 그러나 걱정만 할 필요는 없다고 조언했다. 얼마든지 국운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주역의 역자가 바꿀 역자이다. 대산은 “대한민국 국운에 어려울 둔자가 나왔다고 힘들다며 한탄만 하면 안된다. 이치에 맞게 변화를 꾀해야 한다. ‘궁즉변 변즉통’이다. 궁하면 변화를 꾀해야 하고 변화되면 통하게 된다”고 말했다.

대산은 ‘수뢰둔’괘의 음이 양이 되고 양이 음이 되면 ‘화풍정(火風鼎)’괘가 나온다고 했다. 이 화풍정괘를 상하로 뒤집으면 ‘택화혁(澤火革)’괘가 된다. 요약하면 둔자를 정자와 혁자로 바꿀 수 있다. 정은 솥이며 솥으로 밥을 짓는다. 밥은 생명이다. 밥을 잘 지으려면 먼저 솥을 깨끗이 씻어야 한다. 그런 다음에 솥에 쌀을 넣는데 ‘내 짝에게 병이 있다’고 했다. 상대방이 나에게 방해가 된다는 뜻이다. 

대산은 “옛날 솥은 발이 3개, 귀가 2개이다. 발 3개는 협력과 균형을, 귀 2개는 경청을 가리킨다. 정치가 이와 같다. 상대의 이야기를 잘 듣고 협력·협치하면서 어려움을 이겨내야 한다”고 말했다.

평생을 주역과 함께 살아온 대산은 그러나 “주역을 모르고 사는 게 좋다”고 했다. 그는 “주역은 미래 예측학이다. 그런데 미래를 알수록 걱정도 많아지거든. 제 자식들(3남1녀)에게는 주역 안 가르쳤다”고 말했다. 

잘 나가던 젊은 회사원의 ‘조기퇴직’ 운을 예측한 주역을 이제라도 공부해볼까 하는 호기심이 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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