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금요칼럼] 장애인과 함께
[백세시대 / 금요칼럼] 장애인과 함께
  • 김동배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명예교수
  • 승인 2019.07.05 15:26
  • 호수 67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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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유학생들 도운 신동화 박사

시각장애인 교수 이익섭 박사 등

내가 만난 장애인들은 참 긍정적

역경에 도전하는 이들의 삶은 

매우 귀중한 교훈을 안겨

#1. 소아마비 장애인인 신동화 박사님은 내가 미국 미시간대학 박사과정에 있을 때 다녔던 한인교회인 ‘성서교회’의 장로님이시다. 장애정도는 그다지 심하지 않아서 혼자 보행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전공은 우주항공학으로 주로 NASA 관련 프로젝트를 하셨다. 이 교회는 유학생을 돌보는 일에 열심이었다. 교회는 한때 유학생만 50〜60명에 이를 정도로 북적댔다. 미국에서 그 정도면 작은 교회가 아니다. 우리는 주말이면 한 달에 한두 번 장로님 댁에 모였다. 대학병원 산부인과 수간호사였던 최신애 권사님이 차려놓은 뷔페식 저녁을 잘 먹고, 기타 치며 노래하고, 밤새 성경토론을 하였다. 주중에 공부하느라 쌓인 스트레스를 장로님 댁에서 푸는 것이다. 장로님은 미국대학에서 생존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고, 권사님은 유학생 부인들의 출산을 헌신적으로 도와 주셨다. 성서교회에 다녔던 유학생이면 많던 적던 박사님 내외분의 신세를 지지 않은 사람이 없다. 그들은 지금 다 학위 받고 전 세계 대학과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다. 박사님 내외분이 가끔 한국을 방문하시면, 우리는 미국에서 생산한 아이들 다 데리고 와서 어려웠던 유학생활에 우리가 얼마나 큰 도움을 받았는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2. 유학시절에 건축학을 전공하는 후배 결혼식에 갔다. 신부는 같은 학교에서 피아노를 전공하는 소아마비 장애인이었지만 대단히 명랑하고 발랄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참으로 따뜻하고 축복된 분위기에서 결혼식이 진행되었다. 주례 목사가 신랑에게 물었다. “이 사람을 아내로 맞이하여 평생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병들거나 힘들 때에도….” 신랑은 한참 뜸을 들였다. 그는 잠시 울먹였고 하객들은 순간 긴장했다. 20여 초가 지났을까, 그는 “네”라고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아마도 이 여성을 사랑해서 결혼은 하지만 자기가 평생 변함없이 이 여성의 보호자로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망설임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이 여성과의 혼인이 성사될 때까지 부모님의 강한 반대와, 평범하지 않은 상황으로 인해 지금까지 힘들었던 시간들을 되새기면서 흘린 감동과 회한의 눈물이었으리라. 신부는 주례자의 동일한 질문에 신랑과는 대조적으로 곧 “네”라고 대답했다. 둘은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였고, 그 후배는 몇 년 간 대학교수로 있다가 뜻한 바가 있어 동남아 선교사로 가족과 함께 떠났다. 

#3. 내가 대학에서 학과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시력장애인인 이익섭 박사를 교수로 채용하였다. 아마 장애인 교수로서는 대한민국 제1호가 아닌가 싶다. 나는 사회복지학과에 장애인 교수를 채용하는 것이 한국 사회복지학계에 긍정적인 여파가 있을 거라 생각하여 선배교수들을 설득하여 강력하게 추진하였다. 그가 채용되었을 때 매스컴은 ‘인간승리’라고 대서특필 하였다. 그는 미국의 명문 시카고대학을 나왔는데 그의 학위과정에는 눈물겹게 헌신적인 부인의 도움이 있었다. 그는 두꺼운 점자 교재를 가지고 강의하거나 아니면 아예 내용 전체를 통째로 외워서 강의하였다. 그의 지혜는 교수회의 때 빛났다. 눈 뜬 교수들이 간과하는 사항에 대해 그는 정확하게 문제점을 지적하고 자기 견해를 피력하였다. 나는 가끔 그에게 “당신은 눈 뜬 사람보다도 더 잘 봐”라고 농담을 하곤 했다. 그는 한 때 UN 장애인협약 한국 대표로 활동한 적도 있었다. 그는 일벌레였다. 아마도 장애인인 자기가 비장애인인 다른 교수보다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나타내려는 심리가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그는 원래 건강한 체질은 아니었고 여러 가지 합병증으로 병원 출입이 잦았다. 내가 그에게 몸도 불편하니 너무 열심히 연구하는 것은 삼가라고 여러 번 권고하였지만 그의 열정을 막을 수는 없었다. 결국 그는 너무나 애석하게도 50대 중반에 하늘나라로 갔다. 

이 사람들은 과거에 내가 가까이 지냈던 장애인들이다. 나에게 그들은 정말로 장애우(友)였고 역경에 도전하여 승리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나는 그들을 한 번도 장애인이라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들은 장애가 있음에도 오히려 비장애인들보다 더 긍정적으로 살았고 어떤 면에서는 비장애인을 능가하였다. 이 사람들과의 친분을 통해 난 삶의 도전에 관해 매우 귀중한 교훈들을 얻을 수 있었다. 나의 경험상 장애인은 보통의 친구와 아무 다를 바 없다. 그런 인연으로 장애인복지 전문가도 아닌 내가 7년간 서부장애인종합복지관의 운영위원으로 그리고 마지막은 운영위원장으로 봉사하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사회적 약자에게 보통의 인간적인 삶을 누릴 권리를 보장해 주는 것이 사회정의의 출발이다. 장애인복지의 기본 정신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동일한 환경에서 동일한 양식으로 생활하는 것이다. 그래서 장애인복지의 두 큰 틀은 정상화(normalization)와 사회통합(social integration)이다. 나이 들어 육체적으로 쇠약해지는 노인들도 장애인의 특징을 갖게 된다. 사회복지 연구에 있어서 재미난 주제가 하나 있다. 장애를 가지고 살다가 나이 들어 노인이 되는 경우(고령장애인)와 노쇠현상으로 장애를 갖게 되는 경우(장애노인)의 같은 점과 차이점을 연구하는 것이다. 노인복지 연구자들은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장애인복지 프로그램을 벤치마킹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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