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빈낙도’ 통념 허문 조선시대 재테크 서적 발굴
‘안빈낙도’ 통념 허문 조선시대 재테크 서적 발굴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9.07.05 15:37
  • 호수 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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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운이 쓴 ‘해동화식전’… 재산 불리는 법, 부자 유형 소개

군자는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조선시대 통념을 거부하고 부는 미덕이며 가난은 악덕이라고 주장한 18세기 재테크 서적이 발굴됐다. 농사를 중시한 농본주의 국가 조선에서 상업의 필요성은 물론 재산 불리는 법과 부자 유형까지 기술했다는 점에서 혁신적인 저작으로 평가된다.

안대회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는 조선 영조 때 문인 식니당(食泥堂) 이재운(1721∼1782)이 조선시대 일반적 경제관념과 상업관을 뒤집는 이론과 사례를 정리한 책 ‘해동화식전’(海東貨殖傳․사진)을 찾았다고 7월 4일 밝혔다.

해동화식전은 일몽(一夢) 이규상(1727∼1799)이 쓴 ‘병세재언록’(幷世才彦錄)에 명칭이 등장하지만, 실물은 지금까지 확인되지 않았다. 병세재언록에서 이규상은 “이재운은 대흥 사람으로 남인의 서계(庶系)”라며 “해동화식전은 참으로 용문(龍門, 사마천)의 솜씨이다. 변화가 무궁하며 붓끝이 굉장하고 빛이 나서 근세 백년 사이에 이런 작품이 없다”고 극찬했다.

이재운은 명문가 한산이씨 서자였다. 5대조가 영의정을 지낸 이산해이고, 조부는 이인빈이었으며, 부친은 이인빈 서자 이식근이었다. 본래는 북인 핵심 가문이었으나, 인조반정 이후 남인으로 행세했다.

안 교수가 최근 입수한 해동화식전은 경진년(1820) 필사기가 있는 책과 ‘택리지’(擇里志)와 함께 수록된 이규상 수택본이다. 이재운은 해동화식전 첫머리부터 청빈(淸貧)이나 안빈낙도(安貧樂道)를 따르는 삶은 옳지 않다는 견해를 드러냈다.

이재운은 “군자는 재물을 이용해 자신을 돋보이게 하고, 소인은 재물을 얻으려고 자신을 희생한다”며 “군자가 이익을 추구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군자가 세 곱절의 이윤을 남기며 장사하는 상인의 수완을 잘 안다고 하여 잘못이라 책망할 이유가 없다”고 적었다.

사대부가 보기에는 속물적 경제관을 강조한 이재운은 해동화식전에서 재산을 관리하는 이재(理材) 방법과 부자 유형을 스스럼없이 서술했다. 또 부자 9명에 대한 일종의 열전을 실었는데, 그중 5명을 통해 부자가 되는 5가지 길을 제시했고 4명은 자수성가형 부자로 소개했다.

그는 가장 나은 경영법으로 치산(治産)을 잘해 재물을 불리는 것을 꼽았다. 이어 아끼고 절약하는 방법, 변화를 일으켜 형통하는 방법, 고생을 참고 근면하게 일하는 방법, 수완이 없어 거지로 사는 방법을 나열했다. 특히 흥미로운 이재 방법이 절약인데, 구두쇠 자린고비 사연을 담았다.

안 교수는 “이재운은 부의 획득이 횡재가 아니라 경영계획 수립을 통해 얻어질 수밖에 없다고 봤으며, 스스로 노력을 통해 부를 얻은 자수성가형 부자를 경영론에 가장 잘 부합하는 부자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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