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 실패 늪 빠진 배불뚝이 ‘아재’들의 수중발레 도전기
영화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 실패 늪 빠진 배불뚝이 ‘아재’들의 수중발레 도전기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9.07.05 15:45
  • 호수 67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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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시대=배성호기자]

71회 칸영화제 초청작… 실직‧파산‧불화 겪는 남자들의 유쾌한 반전

중장년들의 아픔 치유하고 재기 독려… 마지막 수중발레신 놀라워

이번 작품은 위기를 겪는 남자들이 삶의 열정을 되살리기 위해 수중발레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유쾌하게 담고 있다. 사진은 극중 대회 준비 장면.
이번 작품은 위기를 겪는 남자들이 삶의 열정을 되살리기 위해 수중발레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유쾌하게 담고 있다. 사진은 극중 대회 준비 장면.

2년 전 백수가 된 베르트랑은 자식들의 눈치가 보이지만 아내의 응원 덕분에 꾸준히 재취업을 노리고 있다. 이런 그에게 6개월 만에 면접제의가 들어온다. 절치부심한 베르트랑은 이번엔 기필코 성공하리라 결심하고 면접장으로 향하지만 이번에도 떨어지며 크게 낙담한다. 번민을 잊기 위해 찾은 수영장에서 베르트랑은 우연히 ‘남자수중발레’ 단원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무언가에 홀린 듯 지원한다. 그렇게 마주한 수중발레팀원들은 하나같이 패배자였다. 실력 역시 부끄러운 수준인데 세계대회에 나가자고 설레발까지 친다. 그런데 이들의 도전, 왠지 모르게 끌린다.

인생 패배자 배불뚝이 중장년 남성들의 수중발레 도전기를 다룬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이 7월 18일 개봉한다. 지난해 칸 영화제에 공식초청 되고 올해 2월 열린 세자르영화제에서도 10개 부문 후보에 올라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는 등 작품성도 인정받았다. 

작품은 크게 단원들의 개별 사정을 다룬 전반부와 본격적인 세계대회에 도전하는 후반부로 나뉠 수 있다. 베르트랑 외에도 8명의 단원들은 전부 개인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최고령인 마퀴스는 수차례 사업에 실패한 데다 마지막으로 도전하는 수영장 판매업 역시 부도 직전에 몰렸다. 전처와 함께 사는 딸을 만나는 것이 유일한 낙인 시몽 역시 17장의 음반을 ‘자비’로 낼 정도로 실패한 로커다. 

그나마 번듯한 직장과 집을 가진 로랑은 양극단을 오가는 어머니의 영향 때문에 분노조절 장애를 겪고 결국 가정이 파탄직전에 이른다. 이들을 지도하는 전직 선수 델핀도 마찬가지. 단원들을 다그치지 않고 늘 독려하며 시를 읽어주는 낭만적인 코치지만 함께 듀엣으로 활동하던 동료가 불의의 사고를 당한 후 알콜중독자가 된다. 또 헤어진 남자친구를 잊지 못하고 불안한 나날을 보내다 결국 단원들이 세계대회를 준비하던 그때 좌초하고 만다.

잔잔한 전반부와 달리 후반부에선 본격적인 웃음폭탄을 터트린다. 델핀 대신 코치를 맡은 그녀의 옛 동료 아만다는 단원들을 독하게 다그친다. 비록 하반신은 마비됐지만 선수시절 독기가 살아있는 그녀의 스파르타식 훈련 덕분에 오합지졸 남자수중발레단은 서서히 ‘프랑스팀’으로서 면모를 갖춰간다. 하지만 단원들 각자에게 예기치 못한 사건들이 벌어지면서 위기를 맞는다.

흔히 프랑스 영화는 어렵다는 편견이 있다. 심오한 주제의식 때문에 극장을 나와서 자신이 무슨 영화를 봤는지 어리둥절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생각으로 인해 프랑스 영화라고 하면 손사래를 치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이 작품은 다르다. 선명하게 주제를 전달하면서도 무엇보다 유쾌하다. 

베르트랑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이 겪는 실직, 가정불화 등은 별 게 아닐 수도 있다. 문제는 이들이 중장년이라는 것이다. 한 번 미끄러지면 재기가 불가능한 나이로 접어들었기에 이들이 겪는 슬럼프는 스스로 패배자로 치부할 정도로 치명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단원들이 재기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선택한 게 수중발레다. ‘게이들이 하는 스포츠’라는 비아냥을 들으면서도 이들은 연습 후 서로의 아픔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하나가 된다. 오로지 세계대회를 향해서 나아가는 이들의 도전은 그 자체만으로 감동을 선사한다. 

다만 이와 같은 ‘공포의 외인구단’ 설정은 수많은 영화에서 활용돼 식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칸영화제측이 초청한 데는 이유가 있듯 이 작품에는 대체 불가능한 비장의 무기가 있다. 바로 아만다라는 캐릭터다. 그녀는 등장부터 객석을 초토화 시키더니 단원들과 30분 가까이 밀고 당기는 기 싸움을 벌이며 식상함을 통쾌한 웃음으로 바꾼다. 아만다는 제일 늦게 등장하지만 극장을 나와서도 가장 기억에 남을 정도로 인상 깊은 활약을 펼친다.

아만다의 활약 등을 보고 한참 웃고 나면 이 작품이 준비한 마지막 한발이 객석을 향해 날아든다.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수중발레신이다. 사실 이 작품은 수중발레를 소재로 내세웠음에도 100분 가까이 이렇다 할 장면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저 배 나온 아저씨들의 물장난처럼만 보일 뿐이다. 대회에서 선보인 수중발레신은 절로 박수를 치게 만들 만큼 이런 불신을 한방에 날려버리며 긴 여운을 남긴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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