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금요칼럼]나를 위한 주변에 대한 배려
[백세시대 / 금요칼럼]나를 위한 주변에 대한 배려
  • 오경아 작가, 가든 디자이너
  • 승인 2019.07.12 14:26
  • 호수 67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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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경아 작가, 가든 디자이너]

같은 지역, 이웃한 땅이라도

식물의 생육환경은 달라져

빈터에 어떤 나무 심어야 좋을지

결정하는 것이 쉽지 않듯

인간사도 주변을 잘 살펴야

엊그제 일어난 우리 집 상황이다. 아프리카 케냐에서 일을 하고 있는 작은 아이한테 연락이 왔다. 우기가 찾아와서 갑자기 추워져 외투가 좀 더 필요하다고. 그 시각 남편은 학회 참석차 유럽의 크로아티아에 있었다. 그가 보내온 메시지는 37도가 넘는 폭염에 밖으로 나가기만 해도 사우나를 한 듯 땀으로 범벅이 된다는 말과 함께 보내온 사진이었다. 청명한 여름 햇살 아래 입고 있는 옷이 흠뻑 땀으로 젖어 있어 보기에도 웃음이 나왔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지만 지구는 동시다발적으로 수많은 계절을 보여준다. 계절뿐만 아니라 한쪽에서는 홍수가 나는데, 한쪽에서는 가뭄이 극심하여 먹을 물조차 없다고 아우성이다. 이게 세계적인 상황도 아니다. 

얼마 전 양구의 사과 농장에서는 아침저녁으로 기온이 급격하게 내려가면서 꽃을 피우려는 사과나무가 냉해를 입었다. 그런데 그날 남쪽의 의성, 문경에서는 낮 동안 온도가 급격히 올라가 사과꽃이 갑작스럽게 너무 많이 피어 사과꽃을 따느라고 혼쭐이 났다. 같은 나라 안에서도 기온이 천차만별이고 강수량도 들쭉날쭉하다. 

더 기가 막힌 경우도 있다. 얼마 전 내가 살고 있는 속초에는 큰불이 났다. 전 국민이 위로와 응원을 보내줬던 이 엄청난 재난 속에도 희비가 엇갈렸다. 그날의 상황은 거센 바람이 불을 안고 날아다니는 수준이었다. 

그러다 보니 바로 붙어 있는 집들인데도 어떤 집은 몽땅 타버렸고, 바로 옆집은 아무 일 없이 무사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싶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도 다니는 길이 있고, 지형에 따라 속도가 달라진다는 걸 짐작해보면 충분히 이해가 간다. 

가든디자인을 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을 꼽으라고 한다면 내가 살고 있는 그 지역을 이해하는 일이다. 내가 살고 있는 환경이 어떤 곳이냐에 따라서 자랄 수 있는 식물과 생존하지 못하는 식물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정말 쉽지가 않다. 우리 집의 경우도 앞집의 그림자에 가려졌다면 남향이지만 가장 춥고 척박한 환경이 된다. 

실제로 내가 사는 속초집의 뒷마당은 당연히 앞에 서 있는 집 때문에 그늘이 져야 마땅하지만, 한옥의 낮은 높이 탓에 양지가 바르다. 그래서 음지식물보다는 양지식물을 심어야 하는 상황이다. 우리가 억지로 심는 식물이기 때문에 정원 속 식물들은 어떤 식물은 환경에 잘 적응을 하지만 어떤 식물은 적응하지 못한 채 몇 년 동안 시름시름 앓다가 끝내 정원에서 사라진다. 

가끔 강의가 끝나면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을 받곤 한다. “우리 집 앞에요. 빈터가 있는데 여기에 나무 한 그루를 심고 싶은데 어떤 나무가 좋을까요?” 아마 내가 가장 대답해주기 어려운 질문이 아닐까 싶다. 

어떤 나무가 그 자리에 좋은지는 그 땅을 살펴보고, 그 지역을 살펴보고, 그곳의 강수량, 강설량, 일조량 등을 파악한 이후, 그 나무를 심으면 혹시 주변에 응달을 만드는 것은 아닐지, 그렇다면 미세 기후가 또 어떻게 달라질지 등까지 고려한 후에야 나름의 답이 보이기 때문이다. 

10년 동안 정원 공부를 했고, 다시 10년간 가든디자이너라는 명함으로 일을 했으니 일이 이제 만만해질 만도 한데 하면 할수록 어렵고 까다롭다. 

한 그루의 나무를 골라내고 심어주는 일이 수십번의 생각 끝에 결정이 나고, 이 결정이 다른 식물의 결정에 다시 또 엄청난 영향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어디 정원에서만 일어날까? 우리가 사는 삶의 현장도 다를 바가 전혀 없다. 그러니 뭔가를 행동하고 결정하기 전에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나의 주변을 먼저 생각하지 않으면 당장 나부터가 힘들어진다. 주변에 대한 배려와 생각이 결국 나를 잘살게 하는 것임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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