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세상읽기] 소수서원 찾은 날
[백세시대 / 세상읽기] 소수서원 찾은 날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9.07.26 13:31
  • 호수 68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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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6일은 우리나라 서원이 인류문화유산으로 인정받은 뜻 깊은 날이다. 이날 아제르바이젠 바쿠에서 열린 제43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총회에서 한국의 소수서원 등 9개 서원이 세계유산목록에 등재됐다. 

이날 도포에 갓 쓴 유림대표들 17명도 총회에 참석했다. 이들은 발표 직후 유교 제례 예법에 따라 전 세계에 감사 인사를 보냈다. 유림 대표가 ‘공수’(拱手)라고 외치자 유림들이 양손을 잡아 얌전히 아랫배에 댔다. 3000여명의 참석자들 시선이 이들에게 쏠렸고 회의장이 일순 정적에 싸였다. 이어 ‘배흥’(拜興)이라고 외치자 유림들이 일제히 90도로 절을 했다. ‘평신’(平身) 구령에 맞춰 몸을 곧추세우자 박수가 쏟아졌다. 

위원회는 서원이 “오늘날까지 교육과 사회적 관습 형태로 지속되고 있는 한국의 성리학과 관련된 문화적 전통의 증거이자, ‘중국의 성리학이 한국의 여건에 맞게 변화’라는 역사적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과정은 쉽지 않았다. 성리학의 종주국 중국과의 차별성을 부각해야 했다. 다행히 중국대표가 “한국 서원엔 한국적 특출성이 있다, 건축기법·자연경관과의 조화에서 완전성·진정성이 있다”고 지지 발언을 하자 의장이 ‘등재’ 봉을 쳤다. 중국 서원은 제향 기능이 약해 제향의 조상이 공자밖에 없다. 반면에 한국은 향촌 지식인들이 자발적으로 건립해 제향의 주인공이 안향(소수서원), 퇴계(도산서원) 등 지역 선현들이다. 중국 서원이 과거시험, 입신출세를 위한 도장이라면 우리 서원은 지역 선현들의 학문과 정신을 계승해 바른 심성을 닦는 인격 수양의 도량이다. 우리 서원은 목조건물도 수려하고 자연과의 조화가 뛰어나다. 

최근에 우연찮게 경북 영주의 소수서원을 찾았다. 입장권(성인 3000원, 65세 이상 무료)을 구입해 서원 안으로 들어섰다. 왼편의 널찍한 푸른 잔디 위로 구불구불한 소나무들이 장구한 역사를 보여주는 듯 했다. 키 5m 이상, 허리통이 장독만한 소나무의 껍질이 ‘철갑’을 연상시켰다. 500년 수령의 은행나무는 밑둥이 거의 벗겨져 속살이 훤히 비쳤다. 험난한 세월을 견뎌낸 증거였다. 오른편으로는 죽계천이 유유히 흘러갔다. 이날 기온이 30도를 넘었지만 서원 안은 시원했다. 

소수서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이자 첫 사액서원이다. 조선 중종 37년(1542년) 풍기군수 주세붕이 이 지역 출신 고려시대 유학자 회헌 안향의 위패를 모신 사묘를 세우고 이듬해 백운동서원을 세웠다. 후에 퇴계 이황이 명종 임금께 건의해 소수서원(紹修書院)이라는 친필 현판을 하사 받았다.

서원은 강학공간과 제사를 지내는 제향공간으로 나눈다. 강학공간에는 강학당을 중심으로 지락재, 학구재, 일신재, 직방재가 있고 강학당 왼쪽에 장서각이 있다. 제향공간에는 문성공묘, 전사청, 영정각이 있다. 모든 목조건물이 자그맣고 수수했다. 서원은 숙수사라는 절터에 세웠다. 당간지주 등 절의 유적이 남아 있다. 서원 초입에 있는 경무정에서 내려다보는 경치가 압권이다. 언덕 아래로 폭 10여m 개천이 흐르고 자그마한 정자가 소나무 가지에 가린 채 조용히 앉아 있다. ‘자연과의 뛰어난 조화’다.  

소수서원 현판이 걸린 강학당에 유림들 20여명이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강학당에서 몇 발자국 떨어진 학구재에 낯익은 여성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서보니 이배용 전 이화여대 총장이었다. 이 전 총장은 한국의서원통합보존관리단 이사장으로 이번 등재에 큰 기여를 했다. 이날 대학협회 신문과 인터뷰 중이었고 강학당의 유림들은 이 전 총장을 맞이하기 위해 특별히 서원에 모였다고 한다.

이 전 총장과 반갑게 악수를 나눈 후 서원의 안쪽을 돌아보았다. 우리나라에 이처럼 멋진 문화유산이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아울러 정묘호란, 일제강점기, 6·25동란 등 엄청난 국가 재난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남아 은은히 빛을 발하고 있는 모습이 대견하고 고맙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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