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에서
과거와 현재가 함께 뒹구는 인사동에서
손자는 과거를 보고 할아버지는 미래를 보고
비는 할아버지 어깨를 먼저 적시고
손자의 발을 적셨다
비가 오는 인사동거리를 혼자 배회하고 있는데 운 좋게 이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비 한 방울 맞지 않을 만큼 큰 우산을 쓴 채 아이는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옛 물건들이 가득한 진열장을 바라보고 있는 아이는 뒷모습조차 사뭇 진지하다. 아이는 할아버지가 만들어온 과거를 보고 있고 그런 아이를 바라보며 다가가는 할아버지는 그 아이의 미래를 보고 있다. 비는 계속해서 내리며 할아버지의 어깨를 먼저 적시고 아이의 발을 적셨다.
시리고 차갑고 안 좋은 것들은 앞서 간 세대들의 몫이었고 그 선조들의 피와 땀으로 이룩한 이 땅에서 지금 우리 후손들은 이렇게 풍요로운 오늘을 살고 있다.
할아버지의 얼굴에 잔잔하게 번지는 미소가 온 대지를 적시며 내 마음 속으로도 스며들어 따뜻해졌다.
디카시‧글 : 이기영 시인
저작권자 © 백세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