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세상읽기] 日, 한국 버리고 북 택하나
[백세시대 / 세상읽기] 日, 한국 버리고 북 택하나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9.08.09 14:30
  • 호수 68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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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북한 핵 무서워 화이트리스트 발동?

일본이 한국을 수출절차우대국(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진짜 이유는 무언가. 그들이 내세우는 표면적인 이유는 안보다. 일본의 반도체 소재가 적국의 무기제조에 사용될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우려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최근 히로시마 원폭 투하 74주년 희생자 위령식에서 “한국이 한일협정을 제대로 지키면 좋겠다”는 발언을 해 위안부 배상 합의 파기,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 등에 대한 불만을 간접적으로 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표피적인 것에 불과할 수 있다. 아베의 ‘혼네’(속마음)는 북한 핵무장과 관련, 한·미·일간에 벌어지는 ‘밀당’에서 읽을 수 있다. 

일본은 지금까지 한국을 자국 안보의 방패막이로 이용해왔다. 미국은 소련·중국의 동아시아 진출을 막는 최전선으로 한국을 십분 활용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자국의 이익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동맹국일지라도 언제든지 내칠 수 있는 냉정한 나라이다. 70여년 전 미국의 태평양 방어선에서 한국을 제외한다는 ‘애치슨 라인’이 발표되자 바로 김일성이 소련제 탱크를 몰고 38선을 넘어와 남한을 초토화한 역사적인 사실이 그것을 증명한다. 

일본은 지금까지 한국을 돕는 척 했지만 실은 자기들의 안보를 위한 눈가림이었다. 1970년대 초 중국과의 데탕트(긴장 완화)를 원했던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은 마오쩌둥 정부의 환심을 사기 위해 한국 내 유엔사령부를 없애겠다고 했다. 유엔사가 사라지면 유엔군의 일원인 미군의 한반도 주둔 명분도 설 자리가 없어진다. 북한이 중국 등의 사주를 받아 유엔사 해체를 줄기차게 부르짖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때 일본은 유엔총회에서 “정전체제 유지에 관한 관련국 간 사전합의가 없는 한 일방적 유엔사 해체는 한반도 평화를 위협한다”며 한국 측의 주장을 거들었다. 

지미 카터 대통령은 한때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월터 먼데일 미국 부통령이 일본에 가 주한미군 철수 방침을 알리자 일본의 자민당 의원들이 맹렬히 반대하면서 반대청원까지 냈다. 2개월 후 미·일 정상회담차 워싱턴에 간 후쿠다 다케오 총리는 ‘철수’ 대신 ‘감축’으로 가야 한다고 카터를 설득했다. 박정희 대통령도 “미군 철수는 곧 북의 도발을 불러 온다”며 강하게 반대했지만 박 대통령에 대한 비호감이 강했던 카터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결국 전면철수를 고집했던 카터는 감축으로 태도를 바꿨다. 일본의 로비가 통했기 때문이다.

김정은은 미국과 ‘정상회담 쇼’를 하면서 뒤로는 핵무장을 완성했다. 핵탄두 30~60발을 보유했고 상황을 바꿀 수 있는 게임 체인저 3종 미사일 세트도 갖췄다. 대륙간탄도미사일과 잠수함용탄도미사일에 최근 수차례 쏜 신종 단거리 탄도미사일이다. 여기엔 모두 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고 우리는 그에 대해 방어할 수단도 없다. 미국은 자국의 위협이 되는 대륙간탄도미사일만 쏘지 않으면 상관없다며 북의 잇따른 미사일 발사를 용인해주고 있다. 

과거 핵이 없었던 북한은 일본의 적수가 될 수 없었다. 이제는 다르다. 일본에게 북은 두려움의 대상이 됐다. 일본은 1945년 세계 최초로 히로시마, 나가사키 두 곳에 원자폭탄을 맞아 방사능에 뜨겁게 뎄던 트라우마가 있다. 일본이 북한 핵을 두려워하는 이유다. 

일본은 한국을 더 이상 소중히 여길 까닭이 없다. 반면에 언제 핵을 쏘아댈지 모르는 북에 잘 보여야할 필요가 생겼다. 북에 등을 돌리면 미움을 받는다는  생각에 아베는 한국을 멀리하고 북한과 가까워지려고 애쓰고 있다. 그는 “북과 관계 정상화를 위한 회담을 언제든지 할 용의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한국을 끈끈한 동맹국으로 여기지 않는다. 미국이 시진핑의 ‘중국몽’을 막기 위해 구축한 인도·태평양전략에 한국이 참여하지 않은 점이 불만이다. 한국 정부의 친북·중 노선도 맘에 들지 않는다. 트럼프는 화이트리스트 강행에 대한 한국의 중재 요청에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기도 했다. 어쩌면 일본 해상자위대 ‘가가’의 갑판에서 트럼프와 아베가 두 손을 맞잡았을 때 암묵적 거래가 오고갔을 지도 모른다.  

북이 핵을 가진 상황에서 극일(克日)만이 답이 아니다. 중국·러시아의 ‘한국  영공 간보기’, 미국의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제일주의) 등 냉엄한 국제정세 속에서 일본에 대한 외교안보의 틀을 바꾸어야 할 시점이다. ‘일본제품 사지말자’, ‘일본을 이기자’며 마냥 ‘관제 민족주의’로 나가야할 것인가를 따져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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