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금요칼럼] 항일 투사 최인규
[백세시대 / 금요칼럼] 항일 투사 최인규
  • 김동배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명예교수
  • 승인 2019.08.09 14:37
  • 호수 68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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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갖 고문과 회유 속에서도

 끝까지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최인규 권사는 감옥에서 순교

‘일본 때려잡자’는 발상이 아닌

‘일본 더 잘아 이기는 길’ 가야

올해가 광복 74주년이다. 한일관계가 최악의 상태로 치닫고 있는 지금 내가 작년 봄 한국기독교역사문화아카데미 주관으로 강원도 동해 ․ 삼척 일대에 답사 갔던 일이 기억난다. 이 답사는 항일 투쟁 역사에서 그다지 중요하게 다루고 있지 않은 감리교 최인규 권사(교회 봉사직의 하나)의 순교 흔적을 찾아 나선 순례길이었다. 

동해 송정리에서 태어난 최 권사는 20대에 아내와 사별한 슬픔을 다스리지 못하고 술로 방탕한 세월을 보내다가 교회에 비치된 종교서적 중 ‘술의 해됨’이란 글을 읽고 회심하였다. 1925년에 세례를 받고 주일학교 교사와 설교자로 헌신하다가 일제가 강요한 신사참배를 거부하면서 요시찰 인물이 된다.

당시 시대 상황은 매우 암울했고, 특히 일제 폭압에 저항하고 있었던 기독교는 점점 변질되어 갔다. 1930년대 중반, 대다수 목회자는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와 회유를 견디다 못해 1936년엔 감리교가, 1938년엔 장로교가 결국 신사참배에 참여하기로 결의하였다. 이러한 극단적 억압 상황 속에서도 최 권사는 신사참배를 계속 거부하다 1940년 5월 체포되었다. 일제 경찰은 하나님을 못 믿게 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식을 존중해 달라는 것이라며 회유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그는 모진 고문에도 당당히 맞섰다. 

한 번은 망신을 주기 위해 인분 통을 어깨에 메고 동네를 다니며 “내가 예수 믿은 최인규입니다”하고 외치게 했다. 그러나 최 권사는 십자가 고난에 동참한다는 감격스런 마음으로 부끄럼 없이 “내가 신사참배를 거부한 최인규올시다. 내가 예수 믿는 최인규 권사요”라고 기쁘게 외치고 다녔다. 이는 일제 경찰에게는 매우 충격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서울의 교회 지도자들과 각 교파 총회에서 결의까지 하며 순순히 임하는 신사참배를 시골 작은 교회의 일개 권사가 거부했다는 것은 무모하기 짝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최 권사는 삼척경찰서, 강릉구치소, 함흥재판소, 대전형무소로 이감되면서 계속 회유 속에서 모진 고문을 당했으나 오히려 일본이 죄악을 회개하지 않고 계속 신자들을 박해하면 로마처럼 멸망할 것이라고 담대하게 자신의 신앙을 증거했다. 

최 권사와 비슷한 죄목으로 수감되어 있던 이진구 목사는 자신의 회고록에, 최 권사를 만나 적당히 타협하여 고문을 받지 말 것을 권유했다가 최 권사의 단호한 거절에 “목사로서 양심대로 살지 못한 것이 한없이 부끄러웠다”고 증언했다. 답사 해설을 맡은 이가 이런 솔직한 고백이 있기에 역사는 그 진실을 이어간다고 평가할 때 참가자 모두 숙연하여졌다. 

최 권사는 마침내 금식을 선언한 후 여러 차례 금식을 단행하여 쇠약해진 끝에 병감으로 옮긴지 3일 만인 1942년 12월 16일, 61세를 일기로 별세하였다. 최 권사는 일제가 민족말살정책의 일환으로 강요했던 창씨개명을 포함해 모든 국가행사(신사참배, 일장기배례, 황국시민서사, 동방요배)를 거부하였다. 최 권사는 동시대 대표적인 순교자로서 신사참배 말고는 창씨개명과 모든 행사에 참여했던 주기철 목사보다 더 순수하고 강하게 민족정체성을 지킨 항일 순교자로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동해 ․ 삼척 지역이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기독교인에게는 순교신앙을 간직하고 보급할 성지임을 깨닫게 되었다.    

현재 최 권사의 행적을 육안으로 기억할 수 있는 것으로, 처음 설교자로 부임했던 천곡교회 입구에 그의 유해를 모신 순교비, 그를 회심시킨 김기정 목사가 세운 삼척제일교회 앞에 최 권사 순교기념비가 있다. 아무 표지도 없이 평범한 논과 밭으로 변한 송정마을의 최 권사 생가 터를 보면서 일정시대 조상들이 겪었던 괴로움을 잠시 생각해 보았다, 그들이 신앙심이나 애국심 때문에 당한 숱한 고난을 우리는 지금 어떻게 승화시키고 있나? 

국제무대에선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 한다. 우리보다 한 수 위 선진국인 일본을 따라잡기(克日) 위해 일본을 더 철저히 알아야(知日) 하겠다. 그런데 현실은 반대인 것 같다. 일본은 우리를 속속들이 잘 알고 있는데 우리는 그렇지 못한 것 같아 매우 기분이 언짢았다. 금년 광복절은 “일본을 때려잡자”라는 유치한 발상이 아니라 ‘일본을 더 잘 알자’고 다짐을 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순례의 감동을 가슴에 안고 시원한 바다구경에 나섰다. 그런데 삼척해변의 든든하던 바위산에는 대명솔비치리조트가 멀대 같이 세워져 있고, 추암해변에서 오랫동안 바다를 지키던 추암마을은 어느새 해체되고 멋없는 상가건물들만 들어차 눈살을 찌뿌리게 했다. 그나마 남아있는 추암의 촛대바위(능파대)와 아담한 해암정은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했다. 묵호등대가 위치한 지역의 퇴락한 달동네가 지금은 논골담길 마을로 동네이름도 새롭게 짓고 ‘바람의 언덕’ 전망대도 새롭게 조성되어서 올망졸망한 카페와 게스트 하우스 촌으로 변신한 것이 매우 보기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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