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우리 강산을 그리다’ 전… 누워서 산수화 바라보며 ‘홈캉스’ 즐긴 조선 선비들
국립중앙박물관 ‘우리 강산을 그리다’ 전… 누워서 산수화 바라보며 ‘홈캉스’ 즐긴 조선 선비들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9.08.16 14:23
  • 호수 6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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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강세황 등 우리나라 자연과 명승지 담은 실경산수화 360점
금강산이 그려진 ‘담무갈보살도’, 김홍도의 ‘해동명산도첩’ 등 눈길
이번 전시에서는 조선의 선비들이 여름 더위를 피하기 위해 방에 걸어뒀던 실경산수화의 진면목을 살펴볼 수 있다. 사진은 1788년 정조 임금의 명으로 금강산과 관동지역을 유람하고 그린 김홍도의 ‘해동명산도첩’.
이번 전시에서는 조선의 선비들이 여름 더위를 피하기 위해 방에 걸어뒀던 실경산수화의 진면목을 살펴볼 수 있다. 사진은 1788년 정조 임금의 명으로 금강산과 관동지역을 유람하고 그린 김홍도의 ‘해동명산도첩’.

[백세시대=배성호기자]여름철 산과 바다로 떠나는 대신 에어컨 바람이 부는 집에서 휴가를 보내는 일명 ‘홈캉스’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조선시대 선비들 역시 비슷했다. 다만 방법은 조금 다르다. 팔도강산의 아름다움을 담은 산수화를 방에 걸어 두고 바닥에 누워 이를 바라보는 ‘와유(臥遊)’를 즐겼다. 절벽 아래로 시원하게 쏟아지는 산수화를 보면서 유유자적 더위를 극복했던 것이다.  

이런 조선의 선비들이 사랑했던 산과 계곡 바다를 담은 실경산수화를 소개하는 전시가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오는 9월 22일까지 진행되는 ‘우리 강산을 그리다: 화가의 시선, 조선시대 실경산수화’ 전에서는 겸재 정선과 단원 김홍도 비롯해 김응환, 김윤겸, 강세황, 윤제홍 등 17세기부터 19세기에 활동한 화가들의 실경산수화 360여점을 소개한다. 

실경산수화란 고려와 조선시대에 우리나라의 실제 자연경관과 명승지를 소재로 그린 산수화를 말한다. 작품성과 회화성을 중시한 진경산수화와 달리 실제 경치를 기록하는데 더 중줨을 뒀다. 이런 실경산수화는 크게 명승명소·별서유거·야외아집 등의 유형으로 구분된다. 명승명소를 소재로 한 실경산수화는 중국 황실과 사신들의 선물용으로 주로 제작됐다. 또 별서유거(別墅幽居)의 실경산수화는 자연을 벗삼아 전원생활을 즐기고 인격을 함양하던 처소나 별장 주위의 실경들을 그린 것이다. 야외아집류의 실경산수화는 시와 술을 즐기며 친목을 도모하던 광경을 그린 것으로 풍속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맨 먼저 겸재 정선이 단발령(북한 지역의 강원도 금강군 신원리와 창도군 장현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에서 바라본 금강산을 그린 ‘단발령망금산도’가 관람객을 맞는다. 겸재는 화면을 대담하게 사선으로 나눠 앞쪽에 단발령을 그리고 뒤쪽에 금강산을 표현했다. 중요한 부분은 과장하고 중간은 구름과 안개를 덮어 금강산을 바라본 첫 느낌을 강렬하게 표현했다. 

실경산수화는 고려시대에 시작

이어 진행되는 전시는 총 4부로 구성됐다. 먼저 첫 번째 섹션인 ‘실재하는 산수를 그리다’에서는 조선 실경산수화의 전통과 제작배경을 볼 수 있다. 이중 고려시대인 1307년 노영이 그린 금강산이 그려진 ‘담무갈보살도’를 주목할 만하다. 금강산의 뾰족한 봉우리가 배경으로 그려진 고려시대 불화다. 내리그은 선으로 표현한 금강산의 봉우리는 실경산수화의 전통이 고려에서부터 시작됐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 이번 전시를 통해 기증된 작자 미상의 ‘경포대도(鏡浦臺圖)’와 ‘총석정도(叢石亭圖)’ 역시 눈길을 끈다. 1557년 금강산과 강원도 지역을 유람한 후 제작된 작품들로 현존하는 강원도 지역 실경산수화 중 가장 연대가 오래된 작품이다. ‘경포대도’는 화면 하단의 죽도, 강문교에서 상단의 경포대와 오대산을 올려다보는 구도로 그렸다. ‘총석정도’는 돌기둥 아랫부분을 희게, 윗부분을 검게 칠해 상승감을 고조시키고 돌기둥 사이로 물결을 그려 깊이감을 표현했다. 

2부 ‘화가 그곳에서 스케치하다’에서는 여행을 떠난 화가들이 현장에서 자연과 마주하면서 화폭에 담은 진한 여흥이 그대로 담긴 초본이 펼쳐진다. 1788년 정조의 명을 따라 관동지역과 금강산을 있는 그대로 그린 김홍도의 ‘해동명산도첩’을 비롯해 친구와 함께 유람을 하며 남한강의 풍경을 스케치한 정수영(1743~1831)의 작품 등을 만나볼 수 있다. 

특히 김홍도의 ‘해동명산도첩’은 이른바 초본이다. 당시 화가들은 산수를 더 실제처럼 닮게 그리기 위해 현장에서 스케치했는데, 초본은 그 드로잉을 말한다. 굽이굽이 펼쳐놓은 화첩을 마주하면 강릉 경포대, 삼척 능파대 등 강원도 명승을 유람하는 기분에 흠씬 젖게 된다. 같은 장소를 그려도 화가마다 붓질이 달라 비교하는 재미도 있다. 

실내에서 그림 완성하는 과정 보여줘

이어지는 ‘실경을 재단하다’에서는 작업실로 돌아온 화가가 초본과 기억 등을 바탕으로 산과 계곡, 바다, 나무와 바위, 정자 등의 경물을 재구성하며 그림을 완성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화가가 다녔던 동선을 살피며 그들의 시점에 따라 달라진 구도를 짚어보면서 화첩, 두루마리, 선면 등 다양한 매체에 따른 구성과 편집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사직동에서 인왕산을 향해 올라가면서 필운대를 바라보면서 그린 겸재의 ‘필운대상춘도’, 겸재가 하양현감 시절 해인사의 가을 풍광을 부채꼴 모양에 담은 ‘해인사도’ 등도 눈여겨 볼만하다.

전시의 마지막 ‘실경을 뛰어넘다’에서는 조중묵의 ‘아버지를 기리는 인왕산 그림’, 강세황의  ‘새롭게 구성한 피금정’ 등 우리나라 금수강산을 자신의 방식으로 재해석해 표현한 화가들의 독창적인 걸작들이 펼쳐진다. 

실경을 뛰어넘어 형태를 의도적으로 변형시키고 과감하게 색채를 입히거나, 붓 대신 손가락이나 손톱을 사용하는 등 원근과 공간의 깊이를 재해석하기 위한 그 시대 화가들의 고심을 엿볼 수 있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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