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금요칼럼] 보수주의와 진보주의의 역사적 교훈
[백세시대 / 금요칼럼] 보수주의와 진보주의의 역사적 교훈
  • 서상목 한국사회복지협의회 회장
  • 승인 2019.08.23 13:49
  • 호수 68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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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는 일제‧전쟁 거치며

우파와 좌파로 분리됐고

오늘날 양쪽 진영 갈등은 심각

이젠 소모적 갈등관계 대신에

생산적 경쟁관계로 승화시켜야

좌파와 우파 또는 진보와 보수라는 구분이 생기게 된 계기는 프랑스 혁명이었다. 혁명으로 절대왕정이 붕괴되고 소집된 첫 국민회의에서 의장석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급격한 개혁을 주장하는 자코뱅(Jacobins)파가 앉았고, 우측에는 입헌군주제를 추구하는 온건한 성향의 지롱드(Gironde)파가 앉았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 기반해 급격한 사회변혁을 추구하는 것은 좌파의 특징이 되었고, 상대적으로 온건하고 점진적 개혁을 지향하는 세력을 우파로 부르게 되었다. 

프랑스 혁명은 잘못된 관행을 시정하는 차원을 넘어 새로운 사상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정치체제를 의미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진보주의가 싹트기 시작했다. 진보주의자들은 새로운 정치체제 수립과정에서 폭력 사용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했다. 사실상 프랑스 혁명 과정은 폭력의 연속이었으며 단두대에서 처형된 사람들만 4000명이 넘었고 수많은 사람이 거리에서 희생됐다. 

보수주의는 이러한 프랑스 혁명의 폭력성과 비연속성에 대한 반발로 영국에서 시작됐다. 보수주의의 태두라고 할 수 있는 버크(Burke)는 프랑스 혁명의 실패 원인을 분석하면서 “사회는 이성의 힘에 의해서 뭉쳐지는 것이 아니라 전통적 도의와 관습의 힘에 의해서 뭉쳐진다”라고 주장하였다. 진보주의가 이상적인 목표를 향해 급격한 변화를 추구하는 반면 보수주의는 인간 능력의 한계와 전통을 존중하면서 점진적 변화를 모색한다. 

유럽에서 자유민주주의가 보편적 정치·경제체제로 자리 잡게 되면서 진보주의는 전혀 다른 형태로 발전되어 갔다. 마르크스(Marx) 공산주의 이론은 1917년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을 통해 현실화되기 시작해 동유럽 등 세계 각처로 확산되었다. 공산주의 실험이 지속되는 동안 서구 진보사상은 자본주의와의 타협을 통해 복지국가 형태로 진화했다. 서구 선진국에서 진보주의는 형평을 핵심가치로 내세우면서 이를 이루기 위한 정부 차원의 개입을 정당화하고 복지재정 확대를 주장하는 반면, 보수주의는 효율을 핵심가치로 삼고 정부의 비대화와 복지재정의 비효율성을 지적하면서 ‘작은 정부’를 추구한다. 

조선시대 붕당정치는 당파 간 이념 차이가 거의 없었기에 이를 보수와 진보로 나누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조선왕조가 멸망하면서 개화파 인사들의 상당수는 중국, 미국 등지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하면서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우파세력을 형성했다. 반면 공산주의에 심취된 인사들의 대다수는 만주 등지에서 독립군 활동을 했고, 일부는 국내 산업계에 침투하여 노동운동과 더불어 공산당을 창당하는 등 좌파 정치 활동을 했다. 따라서 한국 사회는 보수와 진보라기보다는 우파와 좌파로 나뉘게 되었다.

1945년 해방 이후 한국 사회는 좌우 세력 간 힘겨루기가 극렬하게 전개됐다. 그러다 북한에 공산당 정권이 들어섰고, 남한에는 미군정의 도움으로 우파세력이 정국의 주도권을 잡게 됐다. 특히 한국전쟁은 공산주의에 대한 전면 부정을 한국 보수주의의 절대적 가치관으로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다. 서구의 복지국가 단계를 거치지 않은 한국에서는 신(新)보수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작은 정부’는 어색한 반면 반공(反共)은 국민 대다수가 공감하는 보수적 가치관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의 대통령 당선은 사상 초유의 여·야간 정권교체 차원을 넘어 그간 정치 사회적으로 소외 세력이었던 호남과 진보 세력이 권력을 장악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특히 햇볕정책의 추진은 우리 사회에서 우파와 좌파 세력 간 이념 논쟁과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의 승리 역시 우리 정치·사회에서 진보화 추세를 가속시켰다. 1990년 ‘3당 통합’으로 위기의식을 느낀 진보진영의 대반전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2007년 대선에 이어 2012년 대선에서도 보수진영이 승리함으로써 한국 우파와 좌파세력은 상호 견제를 통해 나름대로 균형을 이루어왔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2017년 대선에서는 최순실 사건과 이로 인한 촛불시위 여파로 진보진영의 문재인 후보가 압승했다. 적어도 경제 부문에서는 보수적 가치관을 수용한 김대중, 노무현 정권과는 달리 문재인 정권은 대북관계는 물론 경제 및 외교 분야에서도 철저히 좌파적 정책 기조를 견지함으로써 우리 사회에서 좌파와 우파 간 갈등은 심각한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따라서 우리의 당면과제는 작금의 좌파와 우파 간 소모적 갈등 관계를 서구 선진국에서와 같이 진보와 보수 세력 간 생산적 경쟁 관계로 승화‧발전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좌파와 우파 진영 모두 소통과 대화를 통해 ‘두 개의 시선’을 ‘하나의 공감’으로 모으는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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