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공단 박동자 센터장의 베를린 요양현장 탐방
건강보험공단 박동자 센터장의 베를린 요양현장 탐방
  • 박동자 건보공단 인천중부지사 장기요양운영센터장
  • 승인 2019.08.30 13:28
  • 호수 68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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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독 간호사·광부들 치매 시름… 말 통하는 한국인의 돌봄 필요”
독일, 요양등급 신청 5주면 나와… 독거 치매노인 하루 두 번 방문간호
한국인이 만든 복지법인 ‘해로’, 교민어르신 복지혜택 누리도록 도와

[백세시대  글=박동자 건보공단 인천중부지사 장기요양운영센터장]

 “파독 간호사·광부 등 독일의 1세대 교민 어르신들 가운데 치매를 앓는 분들이 많습니다. 교민 치매어르신의 경우 후천적으로 습득한 독일어를 먼저 잊어버리고 나중에는 모국어인 한국어만으로 소통하게 됩니다. 고향음식을 갖다드리면 너무 좋아 하시죠. 이 분들과 말이 통하는 한국 사람들의 돌봄과 관심이 필요합니다.”

우리보다 앞서 사회보장제도를 안정되게 이끌어가고 있는 독일의 노인들, 특히 파독 간호사·광부 등 한국 교민 어르신들은 어떤 사회서비스를 받고 있을까? 필자는 최근 독일을 방문, 베를린에서 치매어르신 돌봄과 방문형 호스피스 등을 제공하고 있는 비영리 사회복지 사단법인 ‘해로’(偕老, Kultursensible Altenhilfe HeRo e.V.)의 봉지은 대표를 만나 생생한 요양현장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해로’는 베를린 거주 파독 1세대 교민과 재외한국동포를 위한 건강·사회복지기관으로, 독일 사회보장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창구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독일의 장기요양서비스와 치매예방 프로그램들

요양서비스와 치매예방 프로그램의 제공은 대상자에 따라 요양 등급, 장애 등급이 있는 경우와 비교적 건강한 노인으로 크게 구분된다. 

먼저 비교적 건강한 노인을 대상으로 한국의 노인복지관과 유사한 시니어센터에서 다양한 예방 차원의 건강 프로그램들이 진행된다. 대부분 무료이거나 적은 참가비만 받는다. 언어강좌, 춤, 노래, 게임, 컴퓨터, 요리강좌, 기공 등 프로그램이 다양하다. 또한 각 지역 관청에서 제공하는 하루 소풍, 노인을 위한 강좌 등에도 참여한다. 

또한 건강과 요양에 대한 상담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지역별로 쉽게 접근이 가능한 요양지원센터라는 기관이 있다.  

한국과 같이 독일의 재가형 돌봄을 받는 요양 등급자의 경우는 급여 혜택으로 주야간보호센터를 이용할 수 있다. 그리고 보건청에서도 사회복지사가 상담 및 지원을 해주고 방법을 제시하기도 하고, 상담처도 지역구별로 활성화돼 있다. 

노인요양시설은 장기요양 등급을 받고 경제적인 여건, 즉 충분한 연금과 재산이 있는 어르신들이 보통 입주해 있는데, 본인이 부담하기 어려운 경우 자녀가 부담하고, 자녀나 부양가족 없는 경우 사회청에서 지원한다. 이곳에서 24시간 간호서비스를 받으며, 산책과 가사 등 일상생활도움은 물론 시설에서 운영하는 다양한 여가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한인 어르신들의 경우 언어적인 문제와 절차의 복잡함으로 지역 기관들을 잘 이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해로’ 같은 기관의 도움이 필요하다. 

봉지은 대표는 “한인 1세대 어르신들의 경우 전통 무용, 서예, 북춤, 연극, 합창단, 소그룹 음악교실(노래, 기타) 등 한인들과 함께하는 그룹 활동을 더 많이 하신다”면서 “건강과 관련해서는 간호요원회, 한인회 사회복지부(해로에서 담당)의 도움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파독 간호사와 광부들이 고령화되면서 돌봄을 필요로 하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다. 사진은 1966년에 독일에 온 파독 간호사들의 ‘해로 자조모임’.
파독 간호사와 광부들이 고령화되면서 돌봄을 필요로 하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다. 사진은 1966년에 독일에 온 파독 간호사들의 ‘해로 자조모임’.

◇독거노인을 위한 서비스

독일에서도 혼자 사는 노인들의 경우 치매가 진행될 때까지 주변에서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집주인이 알게 돼 건강보험에 신청하면 보통 장기요양 1등급(한국의 5등급)을 받게 된다. 의사 소견에 따라 요양등급이 나오고 건강보험의 심리치료를 받을 수도 있다.

독거노인을 위한 식사배달 업체는 많다. 인터넷으로 ‘Essen auf Rädern’ (에센 아우프 레던, 식사배달)이라는 단어를 입력하면 쉽게 검색할 수 있다. 다만, 한인들을 위한 노인식, 환자식 배달 업체는 따로 없다. 그래서 한인들은 수술 후, 혹은 항암 치료 후 독일 빵이나 다른 독일 음식이 잘 넘어가지 않아 고생하기도 한다. 

봉 대표는 “한인들은 대부분 죽이나 속이 편한 한국음식을 찾으시는데 이를 충족하긴 쉽지 않다”면서 “특별한 경우에는 저희 단체에서 지원하거나 봉사가 가능하신 분들을 연결시켜 드리는 일을 한다”고 말했다.

장기요양보험에서는 중증의 독거 치매노인들을 위해 하루에 두 번 간호사가 방문해서 약과 식사를 챙겨주고 있다. 또 문턱을 없애고 화장실 욕조 등 주택을 개조하는 비용을 4000유로(약 520만원)까지 보조해준다. 이런 서비스를 받으려면 우선 장기요양 인정 등급을 받아야 하는데, 건강보험의 장기요양운영센터(MDK)에 신청하면 5주도 채 걸리지 않는다. 

봉 대표는 “요양등급 인정을 위한 조사자가 왔을 때 한인 어르신들은 독일어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면서 “그럴 때 저를 비롯한 한국인 봉사자가 통역해줘서 장기요양서비스 혜택을 수월하게 받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물리치료가 필요한 어르신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물리치료사를 찾아간다고 한다. 보통 병원에서 퇴원한 직후에는 물리치료사가 집으로 직접 와서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어느 정도 거동이 되면 집에서 가까운 물리치료사를 찾아간다는 것.

◇‘해로’, 장기요양 등급 신청 무료로 대행

사회복지법인 ‘해로’는 한국 교민 어르신들이 장기요양 등급, 장애 등급을 받을 수 있도록 신청절차를 무료로 대행해주고 있다. 비교적 건강한 어르신들의 여가활동 장려와 환자 자조모임 결성, 장기요양 등급이 있는 교민들의 일상생활 도움과 방문형 호스피스 그리고 필요한 경우 장례식에 이르기까지 노령기에 필요한 토탈 케어 서비스를 제공한다.

특히 일상생활 도움 교육(최소 40시간과 추가 교육)과 방문형 호스피스 자원봉사자 교육(실습 포함 130시간의 정규 교육)은 사회서비스 급여제공기관이 되기 위한 전제 조건이기 때문에 해당 지자체 지침에 나와 있는 교육 과정에 맞춰 진행하고 있다.

한인 치매환자가 입주한 노인요양시설에서  ‘해로’ 관계자가 공연하는 모습.
한인 치매환자가 입주한 노인요양시설에서 ‘해로’ 관계자가 공연하는 모습.

일상생활 도움 교육은 40시간으로 최대 20명의 그룹으로 진행하고, 호스피스 자원봉사자의 경우 실습 포함 8~15명에게 130시간의 교육을 실시한다. 일상생활 도움을 위한 교육은 다양한 테마로 진행되기 때문에 ‘해로’의 자문위원인 병원의 노인정신과 담당자, 전문간호사, 사회복지사, 응급처치교육자 등 외부의 전문 강사들이 맡는다. 

호스피스 자원봉사 교육은 연령과 상관없이 봉사의 마음을 갖고 환자 방문이 가능한 사람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베를린 자원봉사 운동은 파독 1세대 어르신들에 의해 시작됐고, 현재까지도 교회, 성당, 베를린 한인회, 베를린 간호요원회 등을 중심으로 노노케어가 지속되고 있다. 

◇‘해로’에서 돌보는 어르신 사례

혜경(가명) 어르신은 1970년대에 파독 간호사로 독일에 왔다, 60세도 채 되기 전에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았다. 당시 병원 근무 시, 요양기록을 하지 않고 퇴근하거나 약속을 지키지 않는 일이 빈번해지면서 병을 발견하게 된 사례다. 치매발견 초기엔 딸이 극진히 돌봤으나 배회증상이 심해지면서 집을 자주 나갔기 때문에 케어에 어려움이 커져, 현재는 노인요양시설에서 생활을 하고 있다. 

혜경 어르신은 독일어를 잊어버리고 “아, 어, 으, 허” 등 단음절로만 소통을 하고 있다. 

베를린에는 파독 간호사나 광부어르신 중 치매 어르신이 많다. 해로에서 동행 중인 환자 중 치매환자는 3분의 1이다. 혜경 어르신의 딸은 아쉽게도 한국어를 배우지 못해 어머니와의 비언어적 소통만 가능하다. 

해로에서는 일주일에 한번 모국어 방문자가 요양원에 찾아가 동행하고 한국음식을 제공하기도 하며 입소한 요양원과 협약관계를 맺고 입소자들을 위한 분기별 음악회를 진행하고 있다. 

봉 대표는 “한인사회도 고령화가 진행돼 돌봄을 필요로 하는 치매어르신들이 늘어나고 있다”면서 “저희 ‘해로’는 한인들이 함께 모이실 수 있는 주간보호시설이나 한인 복지관을 통해 다양한 서비스의 장을 마련하려고 계획하고 있다. 하지만 ‘해로’만으로는 아직 어려워 보이는 큰 산이다. 다음 세대의 자발적인 참여와 외부의 돕는 손길과 관심이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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