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박서보-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 전, 아들의 연필 낙서에서 시작된 한국 단색화의 전설
국립현대미술관 ‘박서보-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 전, 아들의 연필 낙서에서 시작된 한국 단색화의 전설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9.08.30 15:07
  • 호수 6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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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상흔 담긴 초창기 작품부터 ‘묘법’ 시리즈까지 총 160여 점 선봬
‘원형질 No.1-62’ 등 눈길… 88세 박화백 “비우는 것이 그림의 최고의 경지”
이번 전시에서는 독창적인 '묘법' 시리즈 등을 발표하며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불리는 박서보의 미술 세계를 조명했다. 사진은 초기 그의 대표작 ‘원형질 No.1-62’
이번 전시에서는 독창적인 '묘법' 시리즈 등을 발표하며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불리는 박서보의 미술 세계를 조명했다. 사진은 초기 그의 대표작 ‘원형질 No.1-62’

[백세시대=배성호기자]“비우는 것이야말로 그림의 최고 경지에요. 나이가 들다 보니 잡스러운 생각이 사라지고 그 어떤 자극적인 얘기에도 흥분하지 않고 마음을 편안하게 갖고 살고 있어요.”

미수(米壽)에 이르러서도 마치 고독한 수행자처럼 묵묵히 화업에 매달린 박서보 화백의 말이다. 그는 수차례 심근경색 수술로 인한 불편한 몸임에도 되레 왕성한 활동을 펼치며 한국미술의 역사를 새롭게 써내려가고 있다. 박 화백은 “변하지 않으면 추락한다. 그러나 변하면 그 또한 추락한다”는 자신의 미술철학을 강조하며 변함없는 활동을 예고했다.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불리는 박서보(88) 화백의 미술세계를 조명한 ‘박서보-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 전이 9월 1일 막을 내린다. 이번 전시에서는 1950년대 ‘원형질’ 부터 2000년대 ‘후기 묘법’, 2019년 신작까지 총 160여 점을 선보이며 독보적인 길을 걸어온 그의 작품세계를 되돌아봤다. 

한국미술의 산실인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한 박서보는 1956년 김영환, 김충선, 문우식과 함께 ‘4인전’을 통해 반(反) 국전 선언을 발표하는 등 초기엔 한국미술의 전위적 흐름을 이끌었다. 또한 1970년대부터 ‘묘법(描法)’ 연작을 발표하며 단색화의 기수로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을 주도해온 미술가로 평가받는다.

한국 미술의 전위적 흐름 이끌어

전시에서는 다섯 개의 공간을 마련해 그의 작품 세계를 시대순으로 조명한다. 먼저 초창기 ‘원형질’ 시기에서는 전쟁의 상처로 인한 불안과 고독, 부정적인 정서를 표출한 ‘회화 No.1’(1957)부터 1961년 파리 체류 이후 발표한 한국 앵포르멜(즉흥적 행위와 격정적 표현을 중시한 전후 유럽의 추상미술) 회화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원형질’ 연작 등을 선보였다. 

이중 눈여겨볼 작품은 ‘원형질 No.1-62’(1962)이다. 한 프랑스 일간지 표지에 실리기도 했던 이 작품은 쓰레기통에서 부서진 기계 부속, 버려진 옷가지 등을 주워 꿰매어 붙인 후,  버려진 스타킹을 구해 흰색을 칠했다. 이후 그 위에 토치램프로 그을려 마치 화상으로 죽은 인물을 묘사하며 폭력의 잔인함을 표현했다.  

분노와 파괴, 절규 등을 담았던 박 화백은 1960년대 후반 다양한 실험을 거듭했다. 한국의 전통미를 현대적으로 구현하려는 시도로 오방색을 활용하고, 당시 서구에서 유행하던 팝아트 등의 영향 아래 기하학적 추상과 대중적 이미지를 담은 ‘유전질’을 선보이게 된다. 이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 ‘유전질 No.2-68’(1968)이다. 원형질 시리즈에 비해 원색이 두드러지며 색의 대비를 강조하는 패턴을 반복해 보여준다. 기하학적 추상 형식으로, 단순화되고 정제된 화면 속에서 한국적인 색감을 표현해 전통사상에 대한 시각화를 시도했다.

서양회화의 영향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그는 1960년대 후반부터 자신만의 독창적인 묘법 연작을 공개한다. 묘법이 탄생한 배경에는 그의 아들이 있었다. 

“어느 날 우연히 국어 숙제를 하던 아들이 공책 네모 칸 안에 ‘닭’을 쓰기 위해 씨름하는 것을 봤어요. 예쁘게 글자를 쓰려고 획을 긋는데 네모 밖으로 자꾸 삐져나가자 아들이 화를 못참고 연필로 글자를 죄다 직직 그었습니다. 그걸 보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프레임(캔버스를 의미)에 뭘 넣는다는 게 불가능한 거구나’라는 생각이요.”

연필로 비슷한 선을 무한히 긋는 ‘묘법(描法)’ 연작은 이렇게 탄생했다. 전시의 세 번째 공간인 ‘초기 묘법’에서는 1970년대 전후로 선보인 ‘연필 묘법’을 소개했다.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된 ‘묘법 No.5-73’(1973)에도 이러한 특징이 잘 드러난다. 파리여행 시 제작된 작품으로 호텔에 머물던 그가 앞방 투숙객이 버린 신문지를 주워 물감을 칠하고 그 위에 연필로 묘법을 시도했다. 가장자리와 필선 사이로 신문기사가 보이는 것도 특징이다.

‘묘법 No.931215’ 미 교과서 실려

박 화백은 1980년대 ‘중기 묘법’ 시기부터 보다 원숙한 작품을 선보인다. 닥종이에 한지를 발라 마르기 전에 문지르거나 긁고 밀어 붙이는 행위를 반복하는 ‘지그재그 묘법’을 선보인다. 이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 ‘묘법 No.931215’(1993)다. 미국 미술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독창적인 화법으로 표현한 이 작품은 바탕에 진한 원색을 밑칠하고 검은색물감을 발라 밀어내는 방식으로 표현했다. 특히 언뜻 언뜻 보이는 바탕의 붉은 색이 더욱 강렬하게 다가온다.

1990년대 중반부터 현재까지의 화업을 소개하는 ‘후기 묘법’ 공간에서는 손의 흔적을 없애고 막대기나 자와 같은 도구로 일정한 간격으로 고랑처럼 파인 면들을 만들어 깊고 풍성한 색감이 강조된 대표작을 공개했다. 

또한 전시에서는 1970년 이후 선보인 적 없는 설치 작품 ‘허의 공간’도 볼 수 있다. 또한 지난 70년의 활동을 엿볼 수 있는 다양한 자료를 통해 세계 무대에 한국 작가 전시를 돕는 예술행정가이자 교육자로서의 면모도 소개했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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