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금요칼럼] 서로를 붙잡아주는 팽팽한 균형과 배려
[백세시대 / 금요칼럼] 서로를 붙잡아주는 팽팽한 균형과 배려
  • 오경아 가든디자이너, 작가
  • 승인 2019.09.06 13:49
  • 호수 68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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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경아 가든디자이너, 작가]

정원에 거미줄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곤충도 많다는 뜻

어느 생명체도 너무 욕심부리면

지구의 팽팽한 균형은 깨지고

비극이 찾아올 게 자명

9월로 접어들면 대문 바로 옆 모과나무의 열매가 점점 노랗게 익어간다. 감나무의 감은 아직 초록이지만 크기가 웬만큼 자란 걸 보니 어느 날 갑자기 주황으로 몰랑거릴 것이다. 200평 남짓의 속초집 정원엔 100여 종 가까이 식물들이 서로 이웃하며 살아가고 있다. 가끔씩 지인들은 ‘바늘 꽂을 틈도 없다’며 화단 속의 식물들을 안쓰러워도 한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봄, 여름, 가을, 늘 화단의 빈자리를 찾아 꾸역꾸역 식물을 더 넣어준다. 결론적으로 식물들의 밀식은 치열한 경쟁으로 누군가 도태되고 서로의 성장에 중대한 결함을 줄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는 않다. 바짝 붙어 서로에게 몸을 부벼 대고 있어도 식물들은 그들의 방식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가 되어 준다. 

울창한 교목나무가 있는 산이나 숲을 찾게 되면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자. 가로수 길을 내자고 분명히 나무들을 줄 맞춰 심었는데도 이상하게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나무의 잎들이 하늘을 잘 가리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이유가 나무 가지들이 서로를 빗겨가며 햇살이 들어오는 자리를 조금씩 양보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느 한 그루의 나무가 우람하게 자라 전체 자리를 다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틈을 내주어 이웃에 사는 나무에게도 자리를 주기 때문이다. 다시 눈을 내려 큰 나무 밑을 보면 또다른 규칙도 보인다. 위에 하늘이 분명히 다 가린 듯 한데도 밑에서 자라는 식물들은 그 틈을 뚫고 내려오는 햇살을 절묘하게 잘 받아낸다. 만약 큰 나무가 위의 상공을 모조리 욕심껏 막아 버렸다면 숲속의 바닥에서 자라는 초본식물은 이미 멸종이 됐을 것이다. 이것 역시도 상공의 키 큰 나무가 조금씩 양보하며 틈을 내주고, 그걸 밑에서 자라는 식물이 소중히 받아 내기에 가능한 얘기다. 

또 다른 증거도 있다. 나무가 병충해를 입게 되면 공격을 받거나 병들어가는 식물은 가스 형태의 화학성분을 분출한다. 이 화학성분의 기체를 접한 그 옆의 식물, 혹은 같은 나무라고 할지라도 아직은 건강한 다른 가지와 잎들은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아차린다. 병충해가 곧 올 수 있으니 면역성을 갖추라는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최초의 공격을 받은 식물의 가지는 결국 죽을 확률이 높지만, 죽어가면서도 나무 전체가 죽지 않도록, 이웃해 살고 있는 다른 식물이 대비를 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의문이 생긴다. 이런 일련의 식물의 행위가 사회화된 현상으로 진정 서로에 대한 배려이고, 의도일까? 아니면 그저 우연일까? 과학자들의 대답은 물론 식물도 인간처럼 사회화된 생명체로 혼자가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며 생존력을 높인다고 말한다. 나 혼자 욕심을 다 채우지 않고, 때로는 자신이 희생될지라도 다른 이웃을 살리며, 식물이라는 전체 생명체가 이 지구에서 굳건하게 살 수 있도록 애를 쓰고 있다는 말인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로 불리는 우리 인류는 그 어떤 생명체보다도 사회화가 잘 되어 있다. 신체적으로는 무엇 하나 내세울 것 없는 인간이 이 지구에서 최강의 생명체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사회화 덕분이다. 서로를 배려하고,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배우고, 후손에게 이를 또 가르치고. 그것이 우리가 가장 잘 하고 있는 교육의 힘이기도 하다. 그런데 요즘 들어 우리가 이 강점을 잘 살려 후손에게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는지에 대해 의문이 들 때가 많다. 나만 혼자서 잘 먹고 잘 살자가 아니라 부족한 누군가까지도 도와주며 함께 가려고 했던 우리의 생존 본능이 잘 학습 되고 있는 것인지. 

비가 오락가락하며 무더웠던 8월이 지나가는 사이 속초집 정원은 거미줄로 가득 찼다. 사람이 다녀야 하는 길까지도 점령한 거미를 보자니, 당장 치워버리고도 싶지만 한편에는 다른 맘도 생긴다. 거미줄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정원에 해충을 포함한 곤충이 많아졌다는 얘기기도 하다. 거미가 이런 해충을 어느 정도 제어해줄 수 없다면 식물의 삶은 더욱 힘들어질 게 분명하다. 서로 피해를 주고, 먹고, 잡히는 듯 싶어도 정원 속의 작은 생태계도 생명체 간의 균형과 배려가 늘 존재한다. 어느 생명체라도 지나치게 욕심을 부렸을 때 이 지구는 이 팽팽한 균형이 깨지고 비극이 찾아올 게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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