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문화이야기] 한국 남자가 ‘군부심’을 가진 이유
[백세시대 / 문화이야기] 한국 남자가 ‘군부심’을 가진 이유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9.09.20 14:12
  • 호수 68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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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처음에 군대를 가겠다고 내 입으로 솔직히 이야기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지난 9월 17일 방송된 SBS ‘본격연예 한밤’에 출연한 미국인 스티브 유 씨의 발언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유승준이란 이름으로 활동했던 그는 입대를 3개월 앞둔 2002년 돌연 미국서 시민권을 취득했고 병무청이 곧바로 국내소환을 요청했지만 불응했다. 이에 법무부가 긴급명령을 내려 입국관리사무소는 그에게 영구 입국금지 조치를 내렸다. 
유 씨의 미국 시민권 취득으로 인한 병역기피 사례는 전 국민의 공분을 자아냈고 국내법 개정으로 이어졌다. 병무청은 병역의무를 기피할 목적으로 대한민국의 국적을 상실했거나 이탈한 자는 입국 거부가 가능하도록 출입국 관리법을 개정했다.
유 씨는 최근 한국으로 입국할 가능성이 조금 생기자 이번 인터뷰에 응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득보다는 실이 많았다. 죽어가는 불씨에 장작을 한 트럭 던져놓고 기름까지 부은 격이라고나 할까. 그가 앞서 소개한 발언이 알려지면서 그에게 관심을 끄고 지냈던 대다수 한국 남자들은 17년 전 당시처럼 분노한 것이다.
군필자 한국 남자들은 군대를 다녀왔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 즉, ‘군부심’을 가지고 있다. 입대 대상자이지만 아직 다녀오지 않은 사람들에게 주로 군부심을 드러낸다. 대부분이 가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감정을 느끼는 이유는 하나다. 지옥처럼 가기 싫었던 곳에서 살아 돌아왔다는 복잡한 심정을 표출한 것이다.  군 시설이 아무리 좋아져도 자신이 살고 있는 집보다는 좋지 않다.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과거에는 이유 없이 맞기도 했다. 전투 실력과 상관없이 단순히 일찍 입대했다는 이유로 서열이 높은 병사에게 치욕스런 말을 듣고 구타를 당하는 건 큰 상처가 된다. 더군다나 무기로 인해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가 늘 훈련 중에 따라다닌다. 
또 꿈 많고 혈기왕성한 시기에 갇혀 지내는 것도 극심한 고통이다. 명문대에 다녔어도 걸레를 제대로 못 빨면 ‘병X’ 취급받는 희한한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꽤 올랐지만 10년 전만 해도 이 굴욕을 다 감내하고 병사들이 받는 돈은 불과 몇 만원이었다. 이 외에도 군대가 최악인 이유는 수십 가지도 더 된다.
과거 유 씨 외에도 몇몇 연예인들이 불법으로 군 입대를 기피했다 적발된 적이 있다. 일부는 군대에 다시 다녀왔고 일부는 끝까지 입영을 피했다. 똑같은 범죄를 저질렀지만 군대를 다녀온 연예인들만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사랑을 받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유 씨 스스로 오랫동안 생각해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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