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편삼절(韋編三絶)
거들떠보지도 않는
책들의 홍수 속에
예의바르게 버려진 문장들의 무덤
처서도 지나고 그토록 맹렬하게 한여름을 뜨겁게 달구던 매미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9월, 책 읽기 좋은 계절이라고 하지만 이 바쁜 시대에 누가, 얼마나, 한가로이 책을 펴들고 읽고 있겠는가. 그런데도 하루에 쏟아져 나오는 서적들은 홍수를 이룬다. 집으로 보내주는 시집이며 문예지들은 채 읽지도 않은 채 버려진다. 어떤 시인은 자신이 사인해서 준 시집이 헌 책방에 있더라고, 그래서 더 이상 누구에게도 자신의 시집을 주지 않는다고 한다. 책이 귀하던 시대에는 시 한 줄이며 문장 하나하나가 다 귀하게 여겨졌고, 그래서 책들은 귀한 대접을 받았다. 가죽끈으로 묶어서 만든 책을 하도 읽어서 그 가죽끈이 끊어지면 다시 묶어서 읽고 그렇게 세 번이나 끈이 끊어지도록 읽는다는 위편삼절. 첫 장도 넘기지 않고 그대로 버려지는 지금의 책들은 얼마나 불행한가.
디카시‧글 : 이기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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