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세상읽기] 시골 음식점 노인이 말하는 ‘소주성’
[백세시대 / 세상읽기] 시골 음식점 노인이 말하는 ‘소주성’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9.09.27 14:06
  • 호수 68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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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말 주중, 전북 순창군 강천산 입구에 있는 한 식당.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 안에 들어서자 손님은 한 명도 없고 70대 후반의 노부부가 TV를 보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내놓은 메뉴판에서 비빔밥을 주문하자 할머니가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 안으로 사라졌다. 잠시 후 할아버지가 잘 걷지 못하는 걸음걸이로 밑반찬을 담은 커다란 쟁반을 비스듬히 들고 나타났다. 그는 밑반찬들을 식탁에 내려놓고 처음 자세로 돌아갔다. 식사를 마친 후 할아버지와 안부를 주고받았다. 

-식당을 두 분이서 운영하나 봐요.

“여름 한철이 지난 요즘 같은 비수기에는 할머니하고 둘이서 해요.”

-장사는 잘 되는가요.

(갑자기 할아버지 나이가 30대로 떨어진 듯 눈빛이 살아나고 목소리도 커지며)“소주성 때문에 다 안돼요.”

-소주성(소득주도성장)이요?

“나라에서 하는 ‘소주성’ 몰라요? 정부는 쉽게 말 한 마디로 결정해버리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은 피해가 커요. 전에는 알바를 6~7만원에 썼지만 그거 나오고 나서는 (최저임금 보장 때문에)8만원 이상 줘야하고 점심도 주고 퇴근까지 시켜줘야 해 사람을 쓰지 못해요. 그렇게 되니까 손님을 많이 받지 못하고 자연히 매상이 줄고 그렇다는 얘기지요.”

소주성이란 말을 시골음식점의 노인 입에서 듣는 것도 신기했지만 그로 인한 피해가 이곳에까지 미친다는 사실이 더 놀라웠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이 총체적 난관에 부딪쳤다. 소득주도성장은 경제 활력을 떨어뜨렸고 공정경제는 경제의 주력인 대기업의 심장에 타격을 가했고 혁신성장은 승차공유조차 살리지 못하는 무력한 구호에 그쳤다.

고용 현실은 거의 참사 수준이다. 직장인들의 월급명세표에 다음 달부턴 고용보험료가 지금보다 20% 넘게 오른다. 고용보험기금 가운데 대부분을 차지하는 실업급여 계정이 고갈될 처지여서다. 이 정부가 들어선 이후 실업급여 지급액이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그만큼 실업자가 쏟아지고 있다는 의미다. 

주변을 둘러봐도 실감이 난다. 퇴직한 은행 지점장이 아파트 영선반원이 됐거나 외국기업의 한국지사 상무가 지사 폐지로 졸지에 여자대학 주차원으로 전락했다. 앞을 봐도 뒤를 봐도 온통 직장 잃고 놀고 있는 ‘백수’들 천지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 달 취업자 수는 무려 45만명 이상 늘었다. 22년만의 가장 큰 폭이라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실망이 크다. 45만 명 늘었다는 일자리는 60세 이상이 40만명이다. 세금 쏟아 만든 ‘가짜 일자리’이다. 40대 일자리는 12만명 줄었다. 내년에는 노인 단기 일자리가 70만개 이상으로 더 늘어난다고 한다. 

정부는 곳간을 활짝 열어젖혔다. 더불어민주당은 세금 펑펑 쓰는 데 앞장선다. 총선을 앞두고 여당이 전국 시·도로부터 요청 받은 전국 개발 사업 규모는 130조원이 넘는다. 민주당 2중대인 정의당은 지금 40만원인 병사 월급을 100만원으로 올리겠다고 한다. 여기 드는 수천억 원의 돈은 국민 세금이다. 조국 사태로 젊은 층 표심이 흔들리자 세금으로 무마하려는 ‘매표(買票) 발상’이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이 이렇게 출발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강 건너 불 보듯 무책임한 통계를 내놓았다. OECD는 내년 경제성장률의 경우 G20국가 중 인도 등 신흥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는 올해보다 낮아질 것으로 보면서도 거의 유일하게 한국에 대해서는 대규모 확장적 재정정책 덕분에 올해보다 더 좋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우리 경제가 건실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잘 가고 있다”고 얘기한다.   

시골 음식점 노인이 작금의 한국 경제를 잘못 이해(?)하고 있기를 바라는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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