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는 물가… 어르신 무료급식소 ‘신음’
치솟는 물가… 어르신 무료급식소 ‘신음’
  • 함문식 기자
  • 승인 2008.08.08 19: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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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재료비 30~40% 껑충… 심각한 운영난

불경기 탓에 독지가들 후원 큰폭으로 줄어
지자체 행정 편의주의 급식단체 내쫓기도


무서운 기세로 물가가 폭등하고 있다. 과거 아이엠에프(IMF) 구제금융 시대보다 살기 어렵다는 한탄 섞인 목소리도 흘러나오고 있다. 경제대란에 비유되는 고난의 시기를 맞아 저소득층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한 무료급식소는 폭격을 맞은 것이나 다름없다. 운영난에 문을 닫는 곳이 늘고 있다. 어르신들의 발걸음을 뒤돌릴 수 없어 겨우 운영하는 무료급식소도 배 이상 오른 식재료비에 허덕거리며 신음하고 있다.


서울 용산역 인근에서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13년째 무료급식을 하고 있는 ‘하나님의 집’ 조재선(38) 목사와 유연옥(41) 원장은 올해 심각한 운영난에 부딪혔다. 팔 수 있는 것은 모두 팔아 무료급식만큼은 멈출 수 없다는 각오를 다지지만 나날이 곤두박질치는 재정난은 감당할 길이 없다.


올해 초부터 인상되기 시작한 식재료 값은 지난해 대비 30~40%까지 치솟았다. 음식준비에 필수적인 엘피지(LPG) 가스를 비롯해 모든 식재료 값이 지난해보다 배 이상 뛰어 조 목사를 암울하게 만들고 있다. 불경기 탓에 독지가들의 후원도 큰 폭으로 줄어들었지만 정반대로 식수인원은 나날이 늘고 있어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올해는 특히 연초에 태안 기름유출사고의 여파로 자원봉사자들이 대거 빠져나가고, 그나마 근근이 이어오던 후원도 대폭 줄었다.


개척교회 운영과 함께 무료급식을 이어오던 조 목사와 유 원장은 결국 예배당 전세금까지 빼내 급식 준비에 충당하는 형편까지 내몰렸다. 예배당을 잃고 난 뒤에는 용산역 뒤편 가로공원에서 주일 하루 야외예배를 보는 딱한 사정이다.


하루 평균 식수인원 300명을 충당하기도 버거운데, 인근 무료급식단체들이 줄줄이 문을 닫으면서 알음알음 몰려드는 어르신들이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다.


유 원장은 “지난해와 비교해 급식소를 찾는 어르신들이 50~80명은 늘었고, 그중에는 멀리서 전철을 타고 오는 홀몸 어르신들도 있다”고 전했다.


결국 부식 단가를 낮추는 수밖에 없었다. 때때로 식단에 오르던 동태국이나 생선은 이미 자취를 감췄다. 그나마 감자나 양파, 미역 등 제철채소와 값싼 식재료에 의지할 수 있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있다.


조 재선 목사는 “구청의 지원이 절실하지만 신청 절차가 워낙 까다로운 데다 지원 여부도 장담할 수 없어 품을 들일 시간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 조 목사와 유 원장, 자원봉사자 등 단 3명이 많게는 400여명 분의 급식을 준비하는 일로도 시간이 부족한 판이다.

 

치솟는 물가에 무료급식을 이용하는 어르신들이 크게 늘었지만 열악한 상황에 내몰린 무료급식단체들의 사정도 여의치가 않아 언제 급식이 중단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지난 1972년 문을 연 사설 무료급식소 ‘한길봉사회’의 김종은(60) 회장도 울상이긴 마찬가지다. 36년 동안 오직 사비로만 급식소를 운영해 오고 있지만 올해처럼 심각한 운영난은 처음이다. 무료급식 비용을 충당하던 개인사업도 어려워지면서 자연스럽게 어르신들의 밑반찬도 부실해 졌다.


김종은 회장은 “소액 후원자들은 몰라도 고액 후원자나 정부의 지원은 그다지 달갑지 않다”고 말한다. 받는 것이 있으면 그만큼의 대가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김원수(65) 홍익대 교수는 회원들과 사회복지법인 ‘바른법연구원’을 함께 하면서 망원동 자택 마당 한 켠에 20여개의 탁자를 놓고 3년 넘게 어르신들과 저소득층 주민 등 300여명을 대상으로 무료급식을 하고 있다.


김 교수 역시 무료급식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급식소 2층에 ‘하심정’이란 식당을 열었다. 천연조미료와 생수로 국물을 우려 급식 음식을 장만한 정성이 입소문을 타면서 식당을 마련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김 교수는 식당이 무료급식 재정에 숨통을 열어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 교수도 “그러나 여전히 식재료비에 대한 부담이 심각하다”면서도 정부 지원은 바라지도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지원체계가 복잡하고 자격요건도 까다로워 신청할 마음이 없다고 했다.


고물가에 허덕이는 무료급식단체를 옥죄이는 또 다른 사슬은 자치단체의 무관심과 행정편의주의다.


국내에서 어르신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장소로 유명한 종묘공원의 무료급식은 지난해 8월 마땅한 대책도 없이 강제로 중단됐다.


서울시가 종묘성역화 사업을 추진하면서 무료급식으로 인해 어르신들을 비롯한 노숙자가 모여든다며 급식단체를 내쫓았기 때문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종묘공원의 무료급식을 중단시키면서 인근 서울노인복지센터에 300여명분의 급식비용을 지원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취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종묘에서 무료급식을 주관하던 ‘사랑채’ 김금복 목사는 “무료급식을 이용하기 위해 종로 일대로 모여드는 어르신들을 달가워하지 않는 일부 상인들의 급식중단 요청을 서울시가 받아들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어찌됐든 종묘공원의 무료급식이 중단되면서 종로 3가의 쪽방 거주 어르신들과 홀몸 어르신, 그리고 멀리 지방에서 찾아온 어르신들이 급식을 받지 못하거나 무료급식소를 찾아 배회하고 있다. 무료급식을 막고 어르신들을 쫓아냄으로써 대책 없는 성역화 사업의 첫 단계는 일단 성공한 셈이다.


급식단체간 빈익빈부익부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대체로 이름난 무료급식소는 봉사단체와 정부의 현물지원과 후원이 줄줄이 이어지면서 큰 걱정 없이 살림을 꾸리고 있었다.


영등포 쪽방촌의 ‘홈리스복지센터’를 운영하는 광야교회의 경우 센터의 운영자금이 정부로부터 지원되고, 현물지원도 풍부하게 이뤄져 무료급식에는 차질을 빚지 않는다고 전했다.


서울시가 조계사에 위탁운영하고 있는 이화동 ‘서울노인복지센터’도 “급식단가가 많이 오르긴 했지만 급식에는 큰 문제가 없다”는 반응이다. 정부예산에 더해 푸드뱅크나 지역사회의 후원이 뒷받침 되고 있기 때문이다.


‘밥퍼’로 유명한 서울 청량리 ‘다일공동체’도 양호한 편이다. 노숙자보다는 홀몸 어르신들을 중심으로 식수인원이 크게 늘었지만 후원단체가 많은 탓이다.


‘하나님의 집’ 조재선 목사는 “정부와 자치단체가 어르신들의 무료급식을 민간단체에만 맡겨놓고 뒷짐만 지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라며 “무료급식단체의 식수인원 등을 고려해 형편이 어려운 급식소에 대해 적극 지원하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함문식 기자 hammoonsik@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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