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금요칼럼]피아니스트 김선욱과 젊은 날의 정명훈
[백세시대 / 금요칼럼]피아니스트 김선욱과 젊은 날의 정명훈
  • 신은경 차의과대학 교수
  • 승인 2019.10.11 14:49
  • 호수 69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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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자이면서 지휘자 코스 밟는 

김선욱의 피아노 연주 들으며

정명훈의 젊은 날 떠올라

국내 지휘봉 내려놓고 유럽행

마에스트로의 귀환 기다려져

내가 앉은 자리는 객석의 오른쪽이어서 피아니스트의 얼굴은 보이나 건반은 보이지 않는 위치였다. ‘아, 피아니스트의 손이 보이지 않겠네’ 하고 아쉬운 맘이 들었으나, 곧 여기가 훨씬 낫다는 생각으로 안도했다. 객석 왼쪽에 앉았더라면 독주자의 등만 보였을 테니 말이다. 게다가 일반적인 오케스트라 배열과 달리, 가장 저음을 담당한 콘트라베이스가 왼쪽에, 첼로가 무대 한가운데 자리를 잡아 웅장한 저음이 내 앞으로 파도처럼 밀려오는 행운의 자리였다.

창단된 지 471년 된 독일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의 세종문화회관 연주였다. 수석객원지휘자로 있는 정명훈의 지휘, 피아니스트 김선욱의 협연으로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를 연주했다.

2006년 리즈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큰 주목을 받았던 김선욱은 당시 18살로 리즈콩쿠르 40년 역사상 최연소 우승자였고, 아시아 출신 연주자로도 처음이어서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다. 그때로부터 13년, 10대였던 김선욱은 이제 서른을 넘긴 중견 연주자가 되었다. 대중적인 레퍼토리인 <황제>여서 음악도 친근했지만, 이번 연주에서는 지휘자로서의 김선욱의 모습을 상상해 보는 재미도 있었다. 영국 왕립 음악원에서 지휘 석사과정도 마친 김선욱은 올해 본머스 심포니와 지휘자로서 첫 데뷔 무대를 가질 예정이라고 한다. 피아니스트가 지휘를 하게 되면 아예 지휘만 하기도 하지만, 다니엘 바렌보임처럼 자신이 피아노를 치면서 동시에 지휘하기도 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피아노 연주 중 가끔 두 손이 고양이 발처럼 공중으로 올라갔다가 딱 멈추는 것이 눈에 띄기도 했다. 아마도 오케스트라에 사인을 주는 순간 손이 올라가는 게 아니었나 싶었다.

연주 내내 피아니스트로 시작해 지휘자가 된 정명훈과 김선욱이 오버랩 되었다. 김선욱의 모습에서 젊은 날 정명훈의 모습이 보였다. 

20대의 정명훈이 차이콥스키 피아노 콩쿠르에서 1등 없는 2등 상을 받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 대한민국은 환희로 가득했다. 그를 오픈카에 태우고 시청 앞에서 카퍼레이드를 벌였고, 한 일간지에서는 특별칼럼난을 만들어 날마다 그의 성공스토리를 연재했다.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그 칼럼을 스크랩하며 부러움과 열등감에 휩싸여 자세히 읽었다. 누구는 20대에 세계 최고가 되어 이렇게 각광을 받는데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 이 한 세상을 살아나갈까? 대학입학의 성공조차도 불투명한 평범한 고등학생 형편에 성공이나 갈채는 사치스러운 바람이었다.

피아니스트로 시작한 정명훈은 이후 지휘자로 길을 바꾸었다. KBS 아나운서가 된 나는 뉴스 진행과 더불어 KBS FM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되면서 음악계 인사들을 인터뷰할 기회가 많았다. KBS 교향악단을 지휘하는 정명훈을 만나 인터뷰할 기회도 왔다. 그는 가족들을 위해 스파게티를 만드는 평범한 가장의 모습과, 커다란 오케스트라 악보를 펴놓고 공부하고 또 공부하는 지휘자의 모습을 이야기했다. 2003년 발간된 <디너 포 에잇 (Dinner for 8)> 이라는 요리책을 보면 아내와 세 아들, 그리고 그들의 미래 반려자들과 함께 먹을 요리와 함께 인생이야기가 소개되어 있다.

그는 세계무대에서 활동하다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한때 상임 지휘자로 있던 교향악단의 자리에서 적절하지 못한 처신 때문에 세상의 눈총을 받았다. 잘 알려진 사람이 실수하거나 과오를 저지르면 세상은 그를 실컷 짓밟고 나서야 한숨을 돌린다. 딱딱한 껍질을 가진 풍뎅이 같은 벌레를 발로 밟으면 웬만해선 곧바로 죽지 않는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또다시 한번, 꾹꾹 밟아야 하는 것처럼. 여러 번 확인하여 밟는다. 잘잘못은 법이 가려주지만, 그사이 첨예하게 대립한 양쪽의 의견과 생각이 오고 가고, 거기에 보통 사람들의 평가와 의견이 덧붙여진다. 한동안의 소모전이 지나야 서로 휴우 한숨을 내쉰다. 그는 지휘봉을 내려놓고 유럽으로 떠났고, 잠시 잊혀졌다. 

아마도 그동안에도 스파게티를 만들었을 것이고, 오케스트라 총보를 펴놓고 하염없이 공부하였을 것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천재적인 지휘자는 몇 번만 보아도 숙지하는 내용을 자신은 백 번도 더 봐야 한다고 한다. 그렇게 공부해 아주 외워버린 악보는 카라얀처럼 눈을 감고 지휘하기도 하였을 것이다.

세월은 어김없이 흘러 그도 늘어나는 얼굴의 주름이나, 성글어가는 머리숱을 감출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그런 건 초월해 버린 사람 같아 보인다. 아예 관심이 없는 듯하다. 함영준의 <내려올 때 보인다>를 보면 정명훈의 일상은 음악 외에 가족, 요리, 신앙으로 요약되는 단순한 삶으로 표현된다. 그렇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얼굴이나 몸이 늙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인데 왜 사람들은 거기에 연연해하며 살까? 

김선욱을 이야기하려다가 정명훈을 이야기하게 되었다.

2020년 신년 음악회에 정명훈이 다시 서울시향을 지휘할 예정이라고 하니 그때 다시 세종문화회관을 찾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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