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세상읽기] “대학이 특권과 비리의 온상이 안 되려면”
[백세시대 / 세상읽기] “대학이 특권과 비리의 온상이 안 되려면”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9.10.18 14:40
  • 호수 69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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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의 주요 포스트마다 포진해 있는 리더들의 출신대 중 태반이 서울대학이다. 이 대학은 최고 지성의 국립대학으로서 국민들의 선망과 존경을 받고 있다.

그런데 최근 조국 전 법무부장관의 복직과 관련해 이 대학이 보여준 행태는 대단히 실망스럽다. 조 전 장관은 10월 14일, 오후 2시 입장문을 통해 사퇴 의사를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은 3시간여 만인 오후 5시 38분 면직 안을 재가했다. 조 전 장관은 그로부터 20여분 만에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 복직 신청서를 황급히 제출했다. 

서울대는 어떤 진지한 성찰이나 논의도 없이 곧바로 이 신청서를 처리했다. 이 대학 교무처는 업무 시간이 지났는데도 이례적으로 오후 8시쯤 결재했고 개교기념일이라 학교가 휴무한 다음날인 15일, 박찬욱 교육부총장이 자택에서 오전 11시쯤 전자결재로 복직을 최종 승인했다.

서울대 측은 국가공무원법에 따라 처리해 절차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는 형식논리일 뿐 나라를 뒤흔든 ‘조국 사태’의 엄중함을 고려하면 공감하기 어렵다. 학내에서 의견을 수렴하고 논의하는 모양새조차 갖추지 않았다. 뭐가 그리 급한지 관공서 관행(?)조차 무시하고 찰나적으로 대응했다.   

조 전 장관은 2017년 5월 민정수석으로 발탁되면서 2년 2개월간 교수직을 휴직했고 청와대를 나오면서 복직했다. 그리고 장관에 임명되자 학교에 휴직원을 냈고 장관직을 사퇴하며 복직했다. 불과 70여 일 동안 복직·휴직·복직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거듭했다. 딸의 입시 비리에 직간접으로 연루되면서 교수로서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었고 학교와 학생들에게 엄청난 누를 끼쳤지만 복직 과정에서 서울대 구성원들에게 일언반구 사과조차 없었다.

서울대 내에선 조 전 장관의 복직에 반발과 분노가 터지고 있다. 학생 커뮤니티 ‘스누라이프’에는 “(조 교수에게는)학교가 보험이다”거나 “피의자 처지인 교수가 로스쿨에서 형법을 가르쳐도 되나” 등의 비난이 쏟아졌다. 재학생들의 복직 찬반 투표가 한 달간 진행 중인데 90% 이상(17일 기준)이 반대하고 있다. 

‘조국 사태’로 말미암아 일반인들이 대학에 갖는 호의가 많이 퇴색했다. 중세 유럽 암흑기에도 대학 도시들은 학문과 자유의 기치를 높이 내걸고 민중의 길잡이가 됐다. 여전히 사람들은 지적이며 클래식한 외모의 교수와 젊고 풋풋한 학생, 낭만적인 캠퍼스 풍경에 대한 노스텔지어를 간직하고 있다. 선진국을 찾는 여행객들 중 많은 이들이 하버드·옥스퍼드·컬럼비아 등 서양의 명문대 방문을 주요 관광 코스로 선택하는 이유 중 하나다.  

불행히도 우리의 대학은 최근 몇 달 사이 신뢰와 명망을 한꺼번에 잃고 말았다. 수많은 대학들이 하루아침에 압수수색의 대상이 됐고 연구 성과들은 사법적 검토의 대상이 됐다. 입시와 장학금과 발행 증명서들이 날조되고 조작 됐을 것이란 의구심이 널리 퍼졌다. 최순실 국정농단사건으로 총장과 교수들이 줄줄이 구속되는 장면이 국민의 뇌리 속에서 채 잊히기도 전에 대학이 또 다시 법의 심판대에 서게 됐다. 

이제는 대학이 검찰 수색을 받게 돼도 아무도 충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며 그 누구도 대학을 위한 변명을 하지 않는다. 우리 대학들의 수치이자 교수 개인들로서는 치욕적인 일일 것이다. 

대학이 사회가 기대하는 공정·공평성에 한참 미흡한 이유는 무얼까. 한 서울대 교수는 여러 원인 가운데 대학의 운용 원리가 중세적인 가내수공업 시대의 뼈대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즉, 당장 오늘 먹을 양식을 생산하지 않아도 내일의 꿈을 담보로 모인 대다수의 구성원들을 묶는 것은 조그만 한 조각의 신뢰와 자율 외에는 없는 곳이어서 이 신뢰와 자율을 지키는 능력이 부족할 때 언제든지 일탈 행위가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대학이 전문성을 방패삼아 반칙의 관행을 일삼는다면 앞으로도 유사한 일은 반복될 것이다. 대학이 특권과 비리의 온상이 되지 않으려면 좀 더 공개가능하고 검증 가능한 모습으로 외부 사회와 소통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지성이 모인 서울대도 예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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