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세상읽기] 공수처 신설, 과연 필요한가
[백세시대 / 세상읽기] 공수처 신설, 과연 필요한가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9.10.25 14:27
  • 호수 69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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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처 논란이 분분하다. 공수처 신설 문제는 서민과는 상관이 없는 일임에도 우리 사회는 ‘공수처를 설치해야 한다’, ‘필요 없다’ 며 둘로 갈라져 얼굴을 붉히고 있다. 

공수처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라는 글자 그대로 고위 공직자 및 그 가족의 비리를 중점적으로 수사·기소하는 독립기관이다. 검찰청 앞에 몰려가 공수처 신설을 목청껏 부르짖는 시위 참가자들도 모두 서민들인지라 기온이 찬 밤에 아스팔트에 쭈그리고 앉아 생고생할 이유가 없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들의  저의가 의심되는 대목이다. 

평생 양심적이며 올바른 삶을 사는 장삼이사(張三李四)에게 공수처는 국민혈세만 낭비하는 장치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대통령까지 앞장서 두자고 고집하는 이 기구가 진짜 반드시 있어야할 존재인지 정도는 알아둘 필요가 있다.

먼저 고위공직자는 누구를 말하는 걸까. 공수처 설치 방안에 따르면 공수처의 수사 대상자는 현직 및 퇴직 후 2년 이내의 고위공직자와 그 가족이다. 대통령, 국무총리, 국회의원, 대법원장·대법관·판사·헌재소장·재판관, 광역자치단체장·교육감을 비롯해 각 정부부처 정무직 공무원, 대통령비서실·경호처·안보실·국정원 3급 이상과 검찰총장·검사, 장성급(전직에 한함) 장교, 경무관급 이상 경찰공무원이다. 

고위공직자 가족 범위는 일반 고위공직자의 경우 배우자와 직계 존·비속이고 대통령은 4촌 이내 친족까지다. 그러니까 해외 이주 상태인 문재인 대통령 딸도 공수처 수사의 대상일 될 수 있다.

공수처 설치를 굳이 고집하는 이유는 무언가. 한국사회에서 깨끗한 정부를 갖기 위한 고위공작자의 처벌 과제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공수처 같은 기구의 필요성은 김대중 정부 때 처음 제기돼 노무현 정부에서도 논란이 됐다. 당시 진보 보수를 넘어 정당들과 시민단체들이 이 기구의 설치에 동의했지만 결과적으로 불발됐다. 

검찰과 법원을 포함한 사법기구의 고위공직자에 대한 처벌은 일반 국민에 비해 늘 미약했다. 그런데 정부 영역, 공기업, 정부의 민간지원, 복지예산의 확대로 인해 철저한 감독·수사·처벌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민주화 이후 검찰의 역할이 너무 커지면서 견제와 균형이 필요해진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검찰 개혁은 민주화 이후의 상징적 개혁 과제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서초동 집회 참가자들이 검찰 개혁을 들고 나오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러나 필요성이 곧 적합성은 아니다. 

공수처 신설에 앞서 감사원의 법적 제도적 보강만으로도 공직자 비리는 척결된다. 민주공화국에서 정부 영역에 대한 제도적 감시와 처벌 문제는 두 단계로 이루어진다. 감사기구에 의한 직무 및 회계감사가 1단계이다. 따라서 감사원 독립을 통한 직무와 회계의 감독·감찰·징계가 철저하다면 2단계인 검찰과 사법기구에 의한 수사·기소·처벌은 크게 달라진다. 

그간 검찰이 강화된 한 요인은 모든 권력들이 예산권·감사권을 다 틀어쥐고는 자기정부에 대한 감사·감찰을 방해 또는 방치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패감소와 검찰 약화·견제를 위해선 감사원 소속과 감사원장 및 감사위원 임명권이 대통령에게 있어서는 안된다. 감사권의 독립강화와 의회 귀속이 먼저다. 

끝으로 기존의 법률 체계와 검찰 체제로도 비리 공직자에 대한 감시·처벌이 충분하다. 그간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부까지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처벌이 가능했다. 특히 대통령 가족과 측근 범죄는 재임 중에 모두 처벌 받았다. 심지어 대통령도 처벌 받았다. 

그럼에도 검찰보다 더 강력한 권력을 쥐고 태어나는 공수처란 ‘괴물’을 키워 예산 낭비와 국정의 자중지란을 자초할 필요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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