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금요칼럼] 넌 이미 충분히 훌륭해
[백세시대 / 금요칼럼] 넌 이미 충분히 훌륭해
  • 엄을순 문화미래 이프 대표
  • 승인 2019.10.25 14:36
  • 호수 69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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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을순 문화미래 이프 대표

황토집 리모델링한다고

석달간 신경쓰고 보니

살이 쪽 빠지고 팍 늙은 것 같아

더 좋은 집 만들고픈 욕심 때문에

스스로 행복 갉아먹지 않았는지

지금 사는 살림집 바로 옆에는, 흙으로만 만든 황토집이 있다. 실평수가 20평쯤 되려나. 서종면으로 처음 귀촌할 때 지었는데, 너무 작아서 바로 밑에 있는 땅에 살림집용 빨간 벽돌집을 또 지어 지금까지 살고 있다. 그런데 100% 황토집이란 게 그렇더라. 8년이란 세월이 지날 동안 게을러서인지 경제적인 문제 때문인지, 보수공사 한번 하지 않았더니 시도 때도 없이 수시로 흙이 뚝뚝 떨어져 내린다. 천장을 보고 입을 벌리고 누웠다가 입속에 흙이 들어간 적도 많다.

누워서 떡 먹기란 말은 있지만 글쎄, 난 누워서 흙 먹기도 많이 해봤다. 어쨌거나. 집 지어준 건축가(?) 말이, 지은 지 8년이 지났으니 이제는 안전을 위해 보수공사를 꼭 해야만 한단다. 남편과 며칠 동안 고민 또 고민한 결과. 황토집을 연주 내지는 간단한 공연까지 할 수 있는 공연장으로 바꾸기로 했다. 우리 부부가 취미생활로 밴드를 하고 있으니 이래저래 좋은 생각 같았다.

행여 시끄러운 소리에 벽이 울려 흙이 다 뜯겨 나갈까봐 흙벽돌을 다 뜯어 벽돌로 쌓았다. 바닥도 다 들어내고 지난겨울 기름 아끼다가 터져버린 보일러도 새것으로 교체했다. 터진 보일러 때문에 화장실 벽도 습기로 엉망이고 군데군데 곰팡이까지. 지붕과 나무 대들보와 나무 기둥만 빼고는 모조리 다 바꿨다.

다 고치는 데 걸린 시간만도 자그마치 석 달. 들어간 돈도 돈이지만 몸이 지칠 대로 지쳤다. 처음 몇 번은 일하는 분들 점심까지 해 드렸지만, 나중엔 그것도 힘들어 중간중간 간식만 챙겼을 뿐인데도 몸이 너무 힘들다. 

일하는 분은 예전에도 같이 했던 사람인데도 하는 일이 영 맘에 안 든다. 대충대충 하는 것 같다. ‘저렇게 해도 비가 오면 고인 물이 잘 빠질까. 저건 날카로워서 잘못하면 다치겠는걸. 타일이 너무 어두운 거 아냐.‘

결국엔 몸무게가 3㎏이나 빠졌다. 고생하고 빠져서 그런가. 얼굴은 팍 늙어버렸고. 집 한번 지으면 10년은 늙는다더니 옛말 틀린 것 하나도 없구나. 그런데 예전엔 왜 안 그랬을까.  

8년 전에도 황토집과 벽돌집까지 연달아 지었건만 십 년 이십 년 늙기는커녕 새집 생겨 들뜨고 신나기만 했었는데 이번엔 고작 ‘리모델링’을 한 것뿐인데도 왜 이리 몸이 상했을까. 집 공사해 준 분에게 물었다. 

‘예전엔 일하는 사람에게 무작정 맡기고 알아서 해주겠지 하셨지만, 이제는 집에 관해 너무 많이 알아서 그래요. 잘 아니깐 하나하나 다 참견하고 싶은 거지요.’

행복하려고 시작한 보수공사가 나를 불행하게 만들었구나. 하나하나 참견했다고 해서, 믿고 맡겼을 때보다 훨씬 더 훌륭하게 된 것 같지도 않다. 가질수록 알수록, 점점 더 갖고 싶고 점점 더 알고 싶고, 그래서 욕심이란 것이 생겨나나 보다. 생긴 욕심이 내게 ‘더 좋게 해라. 더 많이 가져라’하고 부추겼던 게고. 

몇 년 전이던가. 세계에서 행복지수 1위인 나라가 ‘방글라데시’라 했다. 그 나라는 그리 경제 사정이 넉넉한 나라도 아니고, 최첨단 과학기술도 없고, 자원도 그렇고, 그렇다고 고학력 엘리트 나라도 아니다. 그런데도 온 국민의 행복지수가 세계 1위라고?

그들에겐 욕심이 없어서 그런가. 사람들은 ‘더 갖고 싶고 더 올라가고 싶고 그래서 더 잘 해내고 싶고’ 그런데 현실에선 내 마음대로 안 되고. 그래서 불행한가. 

더 좋은 학교, 더 좋은 집, 더 많은 돈다발, 더 높은 지위…. 이것들이 잡힐 듯 잡힐 듯 손에 잡히지 않으니 이것 참. 거의 15년 동안이나 내 취미생활이 되어버린 드럼 치는 것도 마찬가지다. 처음 시작할 땐 그저 두드리는 게 신이 났고 속이 뻥 뚫리는 그 시원한 소리에 칠 때마다 행복했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실력이 늘어가니 기뻐해야 하건만, 오히려 옛날만큼 신도 나지 않고 행복하지도 않다. 칠 때마다 ‘난 왜 그게 안 될까’ 자책하고 조바심내고 짜증만 낸다. 이 나이에 내가 드럼 쳐서 밥 먹고 살려고 하는 것도 아닌데 왜 자꾸 욕심을 내나. 그 욕심이 내 행복을 날마다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지 않는가. 

‘그 정도면 충분해. 너 참 잘하고 있어. 욕심을 버려. 결과와 상관없어.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도 넌 이미 충분히 훌륭해. 넌 행복할 자격이 충분한 사람이야.’

호흡을 길게 내쉬며 나를 토닥토닥 다독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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