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세상읽기] 뉴욕의 초보검사가 말하는 ‘미국 검찰’
[백세시대 / 세상읽기] 뉴욕의 초보검사가 말하는 ‘미국 검찰’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9.11.01 14:27
  • 호수 69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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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개혁이 우리 사회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여야가, 좌우가 국회에서, 거리에서, 방송에서 갈라져 싸우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조용히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어떻게 되먹은 나라인지 일 년 열두 달 바람 잘 날이 없다. 

평생 경찰서 근처에도 갈 일이 없는 대부분의 서민들이 자기와는 무관한 검찰개혁에 왜들 핏대를 올리고 흥분하는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공수처를 앞세워 검찰개혁을 노래 부르듯 하고 있으니 모른척하고만 지낼 수는 없다.

검찰개혁의 핵심은 검찰의 막대한 권력을 좀 덜어내자는 것이다. 사람을 가두고 주리를 트는(?) 수사와 기소권을 한손에 쥐고 있는 검찰의 힘을 좀 빼자는 얘기다. 

미국 검찰은 어떨까.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책 ‘나는 뉴욕의 초보검사입니다’(생각정원)가 최근 발간됐다. 이 책의 저자 이민규는 뉴욕 주 검찰청 사회정의부 소속의 한국인 검사이다. 그는 미국 위스콘신 주에서 태어나 리버럴 아츠칼리지 중 하나인 웨슬리언대학을 졸업했다. 한국에서 군 생활을 하던 중 역시 미국서 변호사로 활동하다 군에 들어온 한국인을 통해 미국 로스쿨 입학시험을 알게 됐고, 시험을 통과해 컬럼비아대 로스쿨에 입학했다. 졸업 후 노동법, 인권법, 형사법을 골고루 다룰 수 있는 사회정의부 소속검사를 지망했다. 

그에 따르면 미국도 검찰은 형법제도상 가장 강력한 집단이다. 기소권이라는 막강한 재량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자국민 220만명을 교도소에 수감시키고 있고 국제 마약조직과의 총격전이 꾸준히 벌어지며 부패한 거대 은행과 기업, 거물 정치인의 스캔들이 수시로 터져 나오는 나라에서 검찰이 힘이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그럼에도 미국 검찰은 종종 욕은 먹을지언정 한국에서처럼 ‘떡검’이니 ‘검새’라는 비아냥까지 듣지는 않는다.   

그 차이는 기소권에서 기인된다. 미국 검사들은 그들이 소유한 가장 강력한 창인 기소권을 마음대로 휘두를 수 없다. 검찰의 기소권 남용을 견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대배심 제도 때문이다. 미국에선 검사도 소송적 절차를 통해 대배심에 기소를 청구해야 한다. 대배심은 형사소송규칙 상 16명에서 23명의 시민들로 구성된다. 만약 이들 중 과반수가 검사가 제출한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하면 기소 청구는 기각된다. 즉, 기소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검찰의 역할은 표적을 정하는 것일 뿐이고 정작 그 표적을 향해 방아쇠를 당길지 말지 결정하는 건 무작위로 선발된 시민들인 셈이다.  

물론 그렇다고 검사가 아무 힘도 없는 것은 아니다. 검사가 죄 있는 사람을 못 본 척 하는 경우 다른 누구도, 그 어떤 기관도 그 사람을 쉽게 기소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유죄 증거가 많고 그 증거들 하나하나가 명백하더라도 말이다. 이렇듯 검찰의 모르쇠 앞에선 변호사도 판사도 무력해진다. 

부정이 존재하지 않는 한 어떤 사회도 청탁을 완전히 척결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적어도 최소화할 수는 있다. 이를 위한 구조적 해결책 중 하나가 검찰의 분권화이다. 미국의 정부조직은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의 ‘삼권 분립’뿐만 아니라 같은 조직 내에서도 상호견제가 가능하도록 돼 있다. 중앙집권적 조직구조와 권한을 가진 한국 검찰과 달리 미국 검찰은 연방 검찰청, 주 검찰청, 그리고 지역 단위마다 있는 지역 검찰청으로 힘이 분산돼 있다. 

한국 검찰이 대검찰청, 고등검찰청, 지방검찰청 등 수직적인 위계질서 하에 움직이는 ‘검사 동일체 원칙’을 기반으로 한다면 미국 검찰은 위 세 기관이 상하관계로 묶여 있지 않고 독립적으로 수사하는 ‘검찰 완전 분리주의’로 운영된다. 연방 검찰이 덮어버린 사건을 주 검찰이 들쑤실 수 있고 주 검찰이 놓쳐버린 사건은 지역 검찰이 수사할 수 있다. 

우리도 검찰 내 상호감시·견제 장치를 만들어놓았다면 지금처럼 검찰이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지 못했을 것이다. 검사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지 못한다는 건 아주 긍정적이다. 권력남용과 부정부패를 최소화해 법이 제대로 기능하고 사회가 올바로 돌아가게끔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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