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로당 회원들 대추 재배·판매…‘지원 받는 경로당’서 ‘지원하는 경로당’으로
[백세시대=오현주기자]대한노인회 강원 영월군지회는 조만간 ‘노인복지 천국’이 될 징후가 역력하다. 그것은 엄인영(71) 영월군지회장의 남다른 지혜와 노력에 의해서 가능할 것이다. 엄 지회장은 80명이던 노인대학 정원을 280명으로 늘렸고 전무했던 노인일자리를 300개나 새로 확보한 주인공이다.
엄 지회장은 “노인에게 건강 관리와 즐거움을 주는 게 지회가 할 일”이라며 “앞으로 노인일자리 확충을 통해 이 부분을 충족시켜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11월 초, 강원도 영월읍 봉래산로에 위치한 지회에서 엄 지회장을 만나 지회 운영과 앞으로의 계획을 들었다. 엄 지회장은 2018년 4월 취임했다.
-임기 1년을 넘어섰다. 그동안 어떤 일들을 했는지.
“제가 온 이후로 경로당에 식사도우미(100여명)가 지원됐고 거리를 깨끗하게 청소하는 환경정화 일자리도 180여개 생겼다. 영월군수와 상의해 내년에는 노인일자리를 600여개로 확충할 계획이며 그에 따라 일자리 전담 직원도 3명 늘어난다.”
-그 전에는 노인일자리가 없었나.
“시·군에서 맡아서 했다. 영월군 시니어클럽도 곧 만들 예정인데 그 역시 노인회 안에 두고 운영할 계획이다. 제가 군수께 ‘노인일자리는 노인회가 전적으로 맡아야 한다’고 말씀드렸고 군수도 그 점에 동의했다.”
영월군지회는 타 지회와의 자매결연을 비롯 대형병원 등과 업무협약을 맺어 회원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엄 지회장은 “경기 김포시지회, 의왕시지회와 협약식을 맺고 상호 방문 등 우호교류를 해오고 있으며 회원들이 영월의료원, 제천서울병원 이용 시 할인을 받는다”고 밝혔다.
-지회 현황을 소개해 달라.
“9개 분회, 190개 경로당이 있다. 여기는 농촌 지역이라 경로당이 산재돼 있다. 1개 리에 경로당이 2개 있는 지역도 드물게 있다. 군의 전체 노인은 1만1000여명이고 그 중 대한노인회 회원은 3000여명이다.”
-회원배가운동은.
“내년부터 노인회에 가입돼 있어야만 노인일자리를 얻도록 하는 식으로 회원을 늘리고자 한다.”
-경로당 시설은 어떤가.
“TV·냉장고·김치냉장고 등은 기본이며 대체로 잘 돼 있다. 공기청정기, 한궁을 전 경로당에 보급했고 안마의자를 순차적으로 넣고 있다.”
-차별화되는 경로당활성화 사업이라면.
“4년여 전부터 대추나무사업을 펼치고 있다. ‘지원 받는 경로당에서 지원하는 경로당’이란 캐치 프레이즈를 내걸고 4개 경로당에서 8000여평의 땅을 마련, 군 지원을 받아 대추나무 묘목을 재배하고 있다. 3년 뒤에는 수확이 가능해 이후부터는 판매수익으로 운영한다. 앞으로 이런 종류의 사업을 확대하려고 한다.”
-소출과 판로는.
“작년에 소규모 수확을 했고 올해는 그보다는 좀 나을 것 같다. 대추는 한약재로 많이 쓰인다.”
영월 출신의 엄인영 지회장은 경찰공무원으로 30년 봉직했다. 영월군새마을지회장, 영월군경우회장을 지냈다. 영월군향교 전교이다. 영월군지회 노인대학장(4년)을 거쳐 현재에 이르렀다.
-영월은 어떤 군인가.
“과거엔 화력발전소, 대한중석, 대한석공, 쌍용양회같은 큰 공장이 있었으며 대한민국 산자부 예산의 50%가 집중될 정도로 번성했다. 군민도 13만명을 헤아렸지만 지금은 4만명으로 줄었으며 광산도 문 닫고 화력발전소(가스)와 쌍용양회만 남아 있다.”
공기 맑고 물 좋은 영월은 노인들이 살기 좋은 군이다. 게이트볼, 골프장, 수영장, 축구장 등 각종 스포츠시설이 동강 변에 모여 있다. 문화관광산업을 육성해 곤충박물관, 별마로천문대, 김삿갓문학관 등 박물관, 전시관이 30여개에 이른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장릉은 단종의 묘와 함께 엄흥도 등 단종을 위해 순절한 충신 264인의 위패를 모신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노인대학 정원을 3배 이상 늘렸다고.
“퇴직 후 대학에서 약초를 전공했다. 전임 지회장의 권유로 노인대학에서 ‘약초로 지키는 건강’을 주제로 강의했다. 노인대학장을 맡고나서 예산을 고려해 출향인 자원봉사 특강을 실시했다.”
‘출향인 자원봉사 특강’이란 외지에 나가 나름 성공한 지인을 강사로 초빙해 지난 삶의 역정을 노인들에게 들려주는 것이다. 엄 지회장은 “나눔과 배려의 차원에서 고향을 지킨 노인들에게 전할 선물도 가지고 오면 더 고맙겠다고 부탁했더니 어떤 이는 빵을, 어떤 이는 가방 수십 개를 들고 오기도 했다”고 말했다.
학생 수가 획기적으로 늘어난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다. 엄 지회장은 이석호 청호나이스 회장이 영월 출신이란 사실을 알고 전화로 특강을 부탁했다. 이 회장은 고향을 방문해 강의할 사정이 안 된다며 대신 버스를 보내 노인대학생들을 평택공장으로 초청해 강의도 들려주고 견학도 시켜주고 기념품도 전달했다.
엄 지회장은 “홍삼 엑기스에 화장품 세트까지 받아든 노인들이 너무 좋아하더라. 그 일이 알려지면서 학생이 확 늘었다”며 웃었다.
-경찰공무원 30년 간 에피소드라면.
“저는 도둑 한명 잡아보지 못한 경찰이었고 ‘교통 딱지’ 한번 떼지 못한 경찰이었다. 그렇지만 한 가지 한 일이 있다. 경찰청 범죄기록과 연계해 지명수배자나 차량 등을 현장에서 확인하는 단말기(HDT·Hand Dater Tank)를 개발해 경찰 수사에 기여했다고 자부한다.”
엄 지회장은 사찰에서 수상한 차량의 번호를 메모해 경찰서로 돌아와 경찰청 범죄기록과 조회한 결과 뒤늦게 수배차량인 것을 알고 크게 실망한 적이 있다. 엄 지회장은 “당시엔 경찰서에 단말기 한 대 뿐이었다. 손에 쥐고 다니는 단말기가 있다면 사건 해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며 “기술적인 문제는 서울 세운상가에서 해결했다”고 말했다.
엄 지회장은 일흔 나이에도 배움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약초에 이어 효 석사과정을 하고 있다. 엄 지회장은 “요즘은 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효 인성교육을 요구하는 직장, 단체들이 많다. 그런 곳을 비롯해 노인대학, 연찬회에서 강의할 요량으로 일주일에 한두 번 인천 성산효대학원에 나간다”고 말했다
-임기 내에 꼭 이루고 싶은 일은.
“첫째가 노인일자리 확충이고 두 번째는 노인회관 건립으로 군수에게 부탁해 놓았다. 지금 회관은 선배 노인들이 십시일반으로 마련한 땅에 건물을 지어 군에 기부채납한 것이다. 당시만 해도 튼튼하고 멋진 건물이었지만 지은 지 50년이 넘어 낡고 비좁아 지회 업무를 원활히 수행할 수가 없는 상태다.”
오현주 기자 fatboyoh@100ss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