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금요칼럼] 우리 가까이에서 늘 기다리는 자연
[백세시대 / 금요칼럼] 우리 가까이에서 늘 기다리는 자연
  • 오경아 작가, 가든디자이너
  • 승인 2019.11.08 14:44
  • 호수 69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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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경아 작가, 가든디자이너]

집밖 아름다운 자연의 풍광을

정원 삼아 즐겼던 우리 문화

아파트 숲으로 인해 제한당해

상업공간이든 공공의 장소든

도시 속 정원 부지런히 가꿔야

한동안 방치한 정원은 내가 원하는 범위를 벗어나 흐트러지고 넘치고 있는 중이다. 뒷마당의 보리사초는 돌로 만든 경계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흘러 넘치는 중이고, 앞마당의 코스모스는 큰 키를 어쩌지 못해 휘청이며 다른 화단을 침범한다. 여름 같으면 어떻게 해서든 시간을 내 자르고, 다듬어야 할 테지만 다행히 늦가을로 접어드는 이 즈음은 조금은 그대로 두어도 이제 곧 자연 스스로가 모든 걸 줄이고, 정리할 참이라 내심 여유있는 방치를 하는 있는 중이다. 

누군가 “설악산 밑에 사시면서 힘들게 정원을 뭐하러 하세요? 천지가 정원이네요”라는 말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한 적이 있다. 사실 이 말 속에 우리 민족의 정원관과 오늘날의 문제점이 고스란히 녹아 있어 의미심장하기만 했다. 

우리의 정원관은 집 안에 억지로 식물을 심고, 가꾸는 원예의 활동을 기반으로 하는 서양식 정원 문화가 아니다. 경치가 수려한 곳에 집터를 앉혀서 앞산, 뒷산의 풍경을 끌어안아 사계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이걸 전문용어로 경치를 빌어다 썼다는 의미로 ‘차경’이라 한다. 대신 집안에는 식물을 키우는 공간으로서의 정원을 두지 않고 ‘마당’이라는 빈 공간을 만들어 다목적 용도로 사용한 셈이다. 

이보다 적극적인 사람들은 집 울타리를 벗어나 자연 속에 슬쩍 정자를 얹혀 이 역시 자연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즐기며 감상하는 먼 정원(별서정원)을 만들기도 했다. 이 뿌리 깊은 우리의 정원관은 오늘날에도 이어져 내 집 정원은 만들지 않아도 봄이면 꽃구경, 가을이면 단풍구경을 민족의 대이동처럼 돌아다니며 한다. 이 독특한 정원 문화는 아무리 설명해도 서양인들은 이해가 어려운, 차원이 다른 문화다. 하지만 뿌리 깊은 우리의 정원관은 이미 문제가 생긴 지 오래다. 

빌딩으로 둘러싸인 주거지에서는 뒷산, 앞산,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는 것이 끊어진지 오래고, 사계의 흐름은 진공상태처럼 꽁꽁 막아둔 삼중창을 뚫고서는 몸으로 느끼기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수천년의 역사를 통해 이 문화가 학습된 우리는 아직도 여전히 사계의 풍경을 원하고, 자연과의 접촉을 시도하는 중이다. 주말이면 극심한 교통 체증을 뚫고 어떻게 해서든 주거지를 벗어나 자연을 찾아가고, 그곳에 발을 담아야 해소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럴 수 있을까? 혹은 언제까지 우리가 우리의 주거지에 맘을 주지 못하고 몸은 아파트가 좋다고 하는데, 맘은 자꾸 자연을 향해 가는 이 괴리를 지속할까? 과연 도시 속에서는 정원이 불가능한 일일까? 이 의문점과 문제에 대해 요즘 우리는 다양한 답을 찾고 있는 중이다. 건물의 외벽에서 식물을 키우는 수직의 정원이 생기고, 도시의 빈터를 이용해 주민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주민공동체 정원을 만들고, 옥상을 이용해 정원을 만드는 일이 벌어지는 것도 도시 속에 정원을 만들어내기 위한 노력들이다. 

지난 몇 주간 내가 매달렸던 일도 실은 상업 공간의 옥상 전체를 정원으로 만드는 일이었다. 쇼핑을 하러 오는 분들에게 정원이라는 공간을 선물해 좀 더 쇼핑센터에 오래도록 머물게 하려는 의도가 다분히 녹여져 있지만 나에게는 내심이 따로 있다. 

상업공간이든 공공의 장소든 지금 도시에는 정원이 정말 필요하다. 정원은 자연으로 쉽게 갈 수 없는 도시인들에게 자연과의 소통이 일어날 장소고, 자연의 입장에서는 고립된 도시를 징검다리처럼 이어 줄 생태의 장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올 여름, 쇼핑센터의 옥상 공사가 마무리 작업일 때였다. 옥상 식재를 하기 위해 여름에 큰 키를 세우는 버네나를 포함한 식물을 내려놓으니 한 시간이 안돼 나비가 찾아왔다. 나비가 특별히 좋아하는 꽃이 바로 보라색 버네나였기 때문이었다. 순간 주변에서 일하던 분들이 모두 눈이 동그래지며 “우와~ 식물이 오니까 나비가 다 찾아오네. 진짜 신기하다~” 감탄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 들렸다. 어떤 분은 여기 공사 2년 만에 나비 날아오는 건 처음 본다며 자리를 뜨질 못하기도 했다. 공사장에 찾아온 나비는 그렇게 한 여름 뜨거움을 시원하게 해주는 청량제와 다름없었다. 

사실 자연은 생각보다 우리 가까이 있고, 언제든 문만 열어주면 우리 곁으로 금방 다가온다. 그 자연을 향한 문은 생각보다 작아도 괜찮다. 베란다에 내놓은 작은 화분 하나, 아파트 작은 공터에 만들어진 반 평도 안 되는 화단의 문을 통해서도 언제든 자연은 우리를 향해 돌아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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