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블랙머니’…‘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 정지영 감독 손에 재조명
영화 ‘블랙머니’…‘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 정지영 감독 손에 재조명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9.11.08 15:17
  • 호수 69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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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의 인물 양민혁 검사가 은행 매각 스캔들 파헤치는 과정 담아
어려운 경제 개념 누구나 쉽게 이해하도록 연출… 모피아 문제 비판
정지영 감독의 신작으로 주목받는 ‘블랙머니’는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에 영화적 상상력을 더해 탄생했다. 사진은 극중 한 장면.
정지영 감독의 신작으로 주목받는 ‘블랙머니’는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에 영화적 상상력을 더해 탄생했다. 사진은 극중 한 장면.

[백세시대=배성호기자]지난 2003년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는 외환은행을 1조3800억원(지분율 51%)에 인수했다. 이후 2012년 외환은행을 하나금융에 매각하면서 매각 차익과 배당금 등을 합쳐 총 4조6600억원을 챙겼다. 이때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부실 금융기관으로 만들어 헐값에 인수한 후 되팔고 떠났다는 ‘먹튀’ 논란이 일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론스타는 우리 정부의 매각 절차 지연과 부당과세 때문에 5조원이 넘는 손해를 봤다며 투자자·국가 간 소송(Investor-State Dispute Settlement, ISD)을 제기했다. 현재 이 소송은 ISD 중재 판정부의 선고만 앞둔 상황이다. 이 사건과 ‘남부군’을 연출한 ‘거장’ 정지영(73) 감독이 만나면 어떤 이야기가 탄생할까.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에 영화적 상상력을 더한 ‘블랙머니’가 11월 13일 개봉했다. ‘부러진 화살’(2011)과 ‘남영동 1985’(2012)를 연출한 정지영 감독이 7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앞선 두 작품처럼 사회고발적인 성격을 띠는 대중적인 범죄 영화다.

이번 작품은 “실화를 바탕으로 하였으나 인물은 영화적으로 창작됐다”는 자막과 함께 주인공 양민혁(조진웅 분) 검사가 자신이 담당한 연쇄 뺑소니 사건의 피의자가 자살을 하고 난 후 ‘성희롱 검사’라는 누명을 쓰는 것으로 시작된다. 자신의 혐의를 벗기 위해 사건조사에 나선 그는 피의자인 박수경이 대한은행의 직원이었고 금감원 은행검사국 최민규 차장과 연인 관계란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최민규는 박수경보다 먼저 교통사고로 사망한 상황이었다. 두 사람이 잇달아 죽음을 맞이했다는 사실을 미심쩍게 여긴 양민혁은 이들이 대한은행 매각과 관련해 대검 중수부의 조사를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이들의 죽음이 대한은행 매각 사건과 관련이 있다고 직감한다. 

그러던 중 양민혁은 대한은행을 인수한 미국 스타펀드측 법률대리인을 맡은 엘리트 변호사 김나리(이하늬 분)를 만나게 된다. 김나리는 스타펀드가 대한은행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위법행위가 발생했다는 양민혁의 주장을 확인하기 위해 그와 공조를 펼친다. 이들은 사건의 핵심에 거대한 자본을 움직여 막대한 이익을 취득한 ‘모피아’(MOFIA, 재경부 인사들이 퇴임 후 정계나 금융권 등으로 진출해 막강한 세력을 구축하는 것을 마피아에 빗댄 표현)가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포착한다. 이후 양민혁은 진실을 찾기 위해 보다 깊숙이 사건에 접근하지만 은폐하려는 세력에 의해 큰 위기를 겪게 된다. 

이번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은 거대하고 복잡한 사건을 관객이 이해하기 쉽게 영화적으로 재구성했다는 것이다. 전개 또한 익숙하고 쉬운 방식을 택했다. 특히 사건에 대한 정보가 없고 경제에 대한 전문 지식이 없는 인물인 양민혁을 통해 복잡하고 어려운 금융 사건을 쉽고 흥미롭게 풀어내 몰입도를 높인다. 정보를 입수하고 사건의 실마리를 하나하나 파헤쳐 가며 극의 흐름을 따라가게 하고, 그 과정에서 웃고 울고 분노하며 공감하게 만든다. 

사건 앞에서 물불을 가리지 않는 양민혁의 수사방법은 화끈하면서도 시원하고, 통쾌함을 안겨준다. 미련하게 보일 만큼 우직하면서도 집요한 그의 모습은 어쩌면 현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바라는 검사의 모습이기도 하다. 조진웅은 거대한 세력 앞에서 기죽지 않고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지 않으며 불의에 맞서는 양민혁을 특유의 매력으로 소화해냈다.

김나리를 연기한 이하늬의 캐릭터도 돋보인다. 그는 영화 ‘극한직업’, 드라마 ‘열혈사제’에 보여준 코믹한 모습과 달리 냉정하면서도 선악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 없는 김나리 역을 완벽히 소화해낸다.

이번 작품은 론스타 사건이 터진 2011년부터 제작이 시작됐지만, 준비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많은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킨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감사원의 보고서, 대법원의 판결 자료, 노동조합의 투쟁 백서 등 방대한 자료들을 취합하고 분석했다. 실제 사건과 관련된 주요 인사들을 만나 인터뷰하는 과정도 거쳤다. 2016년 시나리오 초고가 완성된 이후에도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고, 수정 작업을 거듭했다. 결국 준비에서 영화가 나오기까지 10년 가까이 시간이 걸린 것이다.

정지영 감독은 “작품에서는 대한민국의 경제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대중들이 잘 모르는 경제 순환 논리의 이면을 제시하고 싶었다”며 “주인공과 함께 사건을 따라가면서 관객들이 뜨거운 여운과 함께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동시에, 우리가 알아야 할 사건의 진실을 마주하고 더 많은 이들과 공유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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