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금요칼럼] 노인에게 묻지 않는 것들
[백세시대 / 금요칼럼] 노인에게 묻지 않는 것들
  • 이호선 숭실사이버대 기독교상담복지학과장
  • 승인 2019.11.22 14:45
  • 호수 69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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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들이 어려워서 안 묻고

물어볼 것 없어 못 묻고

청년들은 노인들에 묻지 않아

묻지 않는 건 어쩔 수 없다 해도

물을 때 대답은 해주기 바라

『예기』 <곡례(曲禮)> 편에는 어른과 나이 든 이들에 대한 젊은이용 예절법이 나온다. 

‘묻지 않으면 감히 대답하지 않고, 어른 뒤를 따라 걸으며, 물으면 거부하지 않고 대답하고, 어른께는 입을 가리고 말하며, 어른이 말씀을 마치고 나서야 말을 할 것이며, 주시는 술과 음식은 사양하면 안 되고, 어른들의 심사를 살펴 이야기를 해야 한다’

고개를 끄덕일만한 말이지만, 정작 놀라운 것은 『예기』는 이런 어른과 아이 구별이 ‘하늘이 분별(分別)한 질서’라고 말한다는 점이다. 너무 빡빡한듯한 이 예절이 하늘의 질서라니, 어른 공경이 중요하다고 하나 요즘 평등한 삶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듣는다면 ‘헐’ 소리와 함께 역차별이자 평등과 인권이라는 단어들이 족히 몇 번은 들어갈 만한 내용이다. 

이래서야 젊은이들 살겠나 싶지만, 어디 글대로 말대로 의도대로 역사가 이루어지겠나 싶고, 2천년 전 벽에도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다’라고 적혀 있다고 하니 예기의 덕목들도 실천 항목이라기보다 이상적 지침이자 지향점으로서 역할을 했을 것이라 본다. 그럼에도 예(禮)를 아는 우리 조상들의 노력과 삶의 자리들이 문화로 자리 잡고 무의식의 앙금으로 가라앉았는지 위의 항목 중 몇 가지는 다소 다른 모습으로 그 명맥을 잇고 이렇게 흔적으로 남아 있다.

‘물어도 대답하지 않고, 어른 근처에도 안 오며, 물으면 대들고, 어른께 입으로 비트박스를 하며, 어른 말씀 마치시도록 숙면을 취하고, 술과 음식은 언제든 환영이고, 어른들을 심사한다.’

이런 평가는 젊은 세대가 야속한 일부 어르신들의 성난 목소리라서, 건실하고 예절 바른 청년들이 들으면 그야말로 속상할 만한 말이다. 그러나 비트박스이건, 숙면이건, 심사건 다 좋다. 근처에라도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요즘은 이런 어르신들의 마음을 담아 청년들에게 전달하면 그들은 “할아버지 할머니들께 물어봐요? 뭘 물어봐요?”라고 답한다. 말인즉, 두 세대 위를 살고 있는 어른에게 물어보기 어렵다는 존중의 말과 물어볼 것이 없다는 배제의 말 두 가지다. 예의 유무를 떠나 사실관계만 보자면, 어려워서 안 묻고, 물어볼 것 없어 못 묻고. 청년들은 노인들에게 묻지 않는다! 무엇을 묻지 않는가를 물으면, 그들은 우리에게 ‘아 무 것 도’ 묻지 않는다! 

하긴 평생 살아온 내 아들딸들도 나에게 묻지 않는다. 하물며 알지도 못하고 만나본 적도 없는 그들이 무슨 질문을 하겠는가? 형편없이 묻는 것에 대해 불평이라도 할 시절이 차라리 좋았다. 노인들은 과거 무법지대를 지나, ‘무플시대’를 맞고 있다. 

고독을 말하는가? 누구도 질문하지 않는 그 관계의 진공 속에 노인은 중력 없이 한가운데 떠 있는 집단이다. 무중력상태의 우주인들은 키도 얼굴도 늘어난다더라만, 영어로 우울하다는 표현 중 ‘롱 페이스(long face)’는 ‘긴 얼굴’이라는 말이다. 고독의 진공 속 그 누구도 묻지도 않고 대답하지도 않는 이 관계의 무중력은 사람의 얼굴을 늘리고 또 늘린다. 혼자 떠들면 치매라 할 것이고 묻지 않는데 대답하면 망상이라 할 테니, 차라리 관계망상이라도 그립다. 

우리에게 물어주기를 바란다, 젊은이들이여! 우리 그렇게 꽉 막힌 사람들 아니고, 우리 그렇게 모르는 사람들 아니다. 심지어 우리는 답할 준비를 해왔다. 아들과 딸에게 마음으로 미안해하며 젊은이들을 대하는 방법을 후회로 배웠고, 낯선 새 생명 손주들의 성장을 보며 다른 인류의 놀라운 변화에 적응하는 방법을 배웠다. 

애들은 본능적으로 누른다는 인터넷이니 유튜브니 하는 매체들을 우리는 시간 들여, 돈 들여, 심지어 새벽 줄을 서가며 열심히 배웠다. 혼자 놀자고, 정보 찾자고, 아는 척 하려고 배운 거 아니다. 그곳에서 만나고 싶다. 그곳에서 젊은이들에게 배우고 싶고, 바로 그곳 사람의 얼굴과 세월 때문에 불편해하지 않을 그곳에서 세대의 접속을 하고 싶었다. 우리에게 묻지 않아도 좋다. 다만 우리가 물을 때 대답해주기 바란다. 3세대를 넘나드는 그 공간에서 젊은이들이여 응답하라, 메이데이 메이데이 응답하라 청춘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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