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공공후견제, 행정 절차 개선해야
치매공공후견제, 행정 절차 개선해야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9.11.29 13:35
  • 호수 69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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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견인 400명 양성하고도, 피후견인과 실제 연결은 38건에 불과

치매안심센터가 피후견인 발굴 맡아… “업무 과중해 발굴 작업 막막”

증빙서류 등 간소화 필요… 일본선 비영리민간단체가 매칭작업 맡아 

[백세시대=배성호기자] 경기 의정부에 거주하는 하 모(77) 어르신은 2018년 치매 진단을 받았다. 함께 지내던 형마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후 혼자 지내게 된 하 어르신은 의지할 곳 없이 힘겨운 투병 생활을 해야만 했다. 다행히 지역 행정복지센터에서 그를 발견, 노인장기요양보험 등급을 신청했지만 어려움은 여전했다. 하지만 최근 하 어르신에게 든든한 친구가 생겼다. 권리를 대변해줄 ‘공공후견인’이 생긴 것이다. 공공후견인 덕분에 하 어르신은 환자 본인부담금 없이 요양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3등급으로 상향 조정을 받았고 보다 편안한 노후를 보내게 됐다.

하 어르신의 경우처럼 공공후견인의 도움이 필요한 저소득 치매노인은 많다. 하지만 관련 제도에 대해 잘 알지 못하거나 행정적인 지원 부족으로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보건복지부는 시범사업을 거쳐 지난해부터 치매노인 공공후견제도(이하 치매공공후견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치매공공후견제도는 치매로 의사결정 능력이 저하된 60세 이상 저소득 노인이 스스로 후견인을 선임하기 어려울 때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후견심판을 청구, 후견활동을 지원토록 한 제도다. 2016년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실시하다 지난해부터 치매환자까지 범위를 확대했다. 

문제는 제도가 시행된 지 1년이 지났지만, 양성된 공공후견인에 비해 피후견인의 숫자가 적기 때문이 활성화까지 갈 길이 멀어 보인다는 것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10월 말 현재 총 75건의 후견심판청구가 있었는데 이 중 법원은 38건의 후견활동을 받아들였고 29건은 심판을 진행하고 있다. 나머지 8건은 피후견인이 돌아가시거나 후견인 선임을 거부 등을 이유로 중간에 취소됐다. 반면 지난해 시범사업을 통해 130명의 치매노인 공공후견인이 양성됐으며, 올해도 287명이 신규로 교육을 받아 현재까지 400명이 후견인 자격을 갖추게 됐다. 후견인으로 활동하고 싶은 사람은 많지만 피후견인이 부족한 상황이다. 

치매공공후견제도에서 후견인과 후견대상자를 발굴하는 역할을 전국 시·군·구에 설치된 치매안심센터가 담당한다. 치매안심센터 직원은 동사무소, 노인복지관 등으로부터 후견이 필요한 사람을 추천받거나 직접 발굴해 피후견인을 찾고 이를 도울 후견인을 연결해준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후견인이 되기 위해서는 법원에 후견심판청구를 통해 판결을 받아야만 최종적으로 후견인이 될 수 있다.

후견인은 법원의 결정에 따라 복지급여 통장관리, 관공서의 서류발급, 복지서비스 신청대리, 병원진료와 약 처방 등 의료서비스이용 동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의사결정을 지원하게 된다.  후견인은 최대 4명까지 후견이 가능한데 맡은 인원에 따라 활동비(1인 20만원, 2인 30만원, 3인 40만원 등)가 다르다. 이 비용 중 일부는 노인일자리사업과 연계돼 지원을 받고 있으며, 1년에 최대 216만원을 받을 수 있다. 

현재 불균형을 겪는 이유는 복합적인데 가장 힘든 건 치매안심센터에 업무가 집중돼 후견 대상자 발굴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점이다. 치매안심센터 직원은 후견제도가 필요해 보이는 노인과 후견을 해줄 수 있는 후견인을 찾고 관련 서류를 중앙치매센터에 제출해 후견심판 청구 지원을 받는다. 그런데 이때 제출해야 하는 자료의 개수가 약 20개에 달한다. 이를 치매안심센터의 직원들이 감당해야 한다. 즉, 업무과중에 시달려 원활한 발굴에 어려움을 겪는 것이다.   

피후견인의 제도 이해 부족도 문제가 되고 있다. 치매공공후견제도는 강제성이 없다. 비록 대상자가 중증 치매를 앓고 있다고 해도 본인의 의사를 들어야 한다. 실제로 대상자들이 이를 원치 않아 후견인과 연결에 실패하는 사례가 많다. 

까다로운 절차도 문제로 지적된다. 피후견인은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 계층, 직계가족이 없는 경우가 1순위로 추천된다. 설령 가족이 있더라도 실질적 지원이 없다는 증빙자료를 제출해야만 한다. 앞서 설명했듯 제출해야 하는 자료가 많게는 20개에 달한다. 이렇게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 신청하더라도 법원이 후견추천대상에서 제외하는 경우도 있다.  

후견인과 후견대상인이 모두 발굴돼야만 후견심판을 청구할 수 있는 점도 제도가 활성화되지 못하는 이유로 분석된다. 가령 후견을 받아야 할 후견대상자는 있는데 후견인을 찾지 못한 경우에는 가정법원에 후견심판을 청구할 수조차 없다.

한 치매안심센터 관계자는 “인원은 한정돼 있는데 너무 많은 업무를 맡아서 어느 것에도 집중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면서 “이런 구조적 문제부터 해결해야 치매공공후견제도가 정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나라보다 먼저 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일본의 사례처럼 피후견인 발굴을 담당하는 비영리민간단체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치매안심센터가 홍보나 상담, 연계 지원의 역할을 맡고 공공후견인 모집과 공공후견 대상자 선정 등의 업무는 민간단체에 맡기자는 것이다. 또 복잡하게 구성돼 있는 후견 심판 청구과정의 간소화도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한 노인복지전문가는 “치매안심센터가 본연의 기능인 사례관리와 치매 예방에 집중할 수 있도록 치매공공후견제도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배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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