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금요칼럼] 위로의 음식, 위로의 말
[백세시대 / 금요칼럼] 위로의 음식, 위로의 말
  • 신은경 차의과대학 교수
  • 승인 2019.12.06 15:31
  • 호수 69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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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만 해도 군침이 돌고

위로가 되는 음식이 있는 것처럼

위로를 주는 언어도 있어

일이 잘 풀리지 않고 답답할 때

위로되는 단어를 종이에 써보자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도는 음식이 있다. 그 음식을 떠올리기만 해도 마음이 푸근해진다. ‘컴포트 푸드 (comfort food)’라고 하는 이것은 직접 먹지 않아도 생각만으로도 심리적인 풍요로움을 주는 위로의 음식을 말한다. 달콤하고 향긋한 추억에 빠져들게 하는 추억의 음식이다.

음악감독 박칼린은 어린 시절에 부산에서 살았는데 그때 먹던 콩나물조림을 컴포트 푸드로 기억한다. 그녀가 먹었던 콩나물조림은 바닷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생선 뼈들을 모아 콩나물과 간장을 넣고 푹 졸이다시피 해서 만든 음식이다. 뼈 사이로 몇 올씩 빼먹는 콩나물은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고 한다. 박칼린 감독에게 그 음식은 어린 시절의 기억과 함께 그 음식을 떠올릴 때마다 군침을 삼키게 하고 마음을 평온하게 하지 않았을까 싶다.

나에게도 추억이 깃든 음식이 있다. 어릴 적 먹던 엄마 솜씨의 멸치젓도 그런 음식이다. 싱싱한 생멸치를 사서 굵은 소금을 뿌린 뒤에 잘 삭히기만 하면 되는 아주 간단한 것이다. 가시를 발라내고 생멸치의 통통한 살을 떠서 고춧가루, 마늘, 파, 식초 등을 넣고 버무린 멸치젓은 밥도둑이었다. 나중에 이탈리아 음식에 들어가는 앤초비를 보고 우리나라의 멸치젓과 똑같아 놀란 적이 있다. 멸치젓을 먹을 때마다, 이탈리아 음식에 들어간 앤초비를 만날 때마다, 멸치젓을 만들던 엄마의 모습과 그것을 맛있게 먹던 평화로운 어릴 적 시간을 함께 기억해 낸다. 

엄마표 꽃게찌개도 그리운 추억의 음식이다. 알이 가득 밴 꽃게에 된장과 고추장, 고춧가루를 풀고 끓이다 부추를 넉넉히 넣으면 꽃게 살과 알과 어울려 기가 막히게 맛있는 찌개가 된다. 알이 단단히 밴 도루묵찌개나 연탄불에 구운 양미리 등도 군침을 돌게 하는 어릴 적의 추억이 가득한 먹거리였다. 

말과 언어에도 위로가 되는 음식과 같은 것이 있다. 몇몇 단어만 떠올려도 마음의 평온함을 가져다주는 단어가 있다. 타지에 홀로 살면서 간혹 작은 소리로 읊조리는 ‘어머니’라는 말 한마디에 가족의 정을 느낄 때가 있지 않은가. 

위로의 말. 소리 내어 읽기만 해도 따스해지는 말, 컴포트 워드(comfort word)이다. 위로의 힘을 지닌 아름다운 말은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고 따스해진다. 미소를 짓거나 혹은 나를 감싸는 듯한 따뜻한 기운을 느끼게 하는 위로의 말들은 추억과 행복의 기억이 묻어 있어 감성을 일깨우며 소통의 효과를 더 높일 수 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단어는 상대방의 닫힌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열게 해준다. 추억을 떠올리게 하거나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빛났던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면 자연스럽게 마음이 열리는 것이다. 나선희의 『따뜻한 말로 이겨라』에 보면, 감성을 떠올리게 하는 말이 어떤 효과를 나타내는지 보여준다. 병원에서 환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했는데 환자를 어떻게 부르냐에 따라 치료의 의지가 달라진다고 한다. 환자의 이름만 부르는 것보다 “환자의 전성기 직함을 불러주면 얼른 회복해서 남들이 인정해주던 그때로 돌아가야겠다는 치료 의지가 높아졌다”는 조사 결과가 나온 것이다. 홍길동 씨라고 부르는 것보다 그가 가장 전성기였던 시절의 직함인 ‘국장님’이라는 호칭을 붙여서 불러준다면 좀 더 귀를 기울이고 호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1980년대 말에 미국의 대학교수들이 가장 아름다운 말이라고 생각되는 단어를 뽑았다. 숭배, 덕, 환희, 명예, 고독, 신성함, 희망, 순결, 신뢰, 조화, 행복, 자유, 청렴, 숭고, 동정심, 천국 등 참으로 숭고한 아름다움을 지닌 단어들이다. 그러자 젊은 학생들이 이의를 제기했다고 한다. ‘부자, 영광, 사랑, 월급’ 등의 말은 왜 뺐느냐고 말이다. 역시 젊은이답다. 이처럼 저마다 아름답게 여기는 말이 제각각이다. 독일인들은 ‘소유, 든든함, 사랑’ 등이었고 영국인들은 ‘어머니’를 가장 많이 꼽았다고 한다. 아마도 어머니는 이 세상 누구에게나 아름다운 말일 것이다. 따뜻하면서 감싸 안아주는 느낌. 희생과 창조의 근원인 단어이기 때문이다.

일이 잘 풀리지 않고 스트레스 때문에 답답하다면 종이에 자신의 컴포트 워드를 써보자. 안개꽃, 커피, 무지개, 아침햇살…. 그렇게 50개만 쓰다 보면, 어느덧 답답한 속이 풀릴 것이다. 그리고 일주일 동안 매일 한 번씩 그 종이를 꺼내서 소리를 내어 읽어보면 더욱 효과가 있을 것이다.

아름다운 단어의 힘은 절대 가볍지 않다. 또 따스함이 묻어나는 말도 얼어붙은 관계를 녹일 수 있다. 말은 비수가 될 수도 있지만,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따스한 손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내가 사람들에게 뻗어야 할 것은 당연히 비수보다 따뜻한 손길이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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