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두 교황’ 개봉, 교황 승계과정, 진보-보수 간 갈등과 화합의 길
영화 ‘두 교황’ 개봉, 교황 승계과정, 진보-보수 간 갈등과 화합의 길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9.12.13 15:49
  • 호수 69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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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딕토 16세 사임 1년 전 추기경이던 프란치스코와의 논쟁 담아
격렬한 대화 속에서도 서로를 아픔 보듬고 타협해나가는 과정 감동
이번 작품은 베네딕토 16세가 추기경 시절의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났던 실화에 영화적 상상력을 더해 진보와 보수의 화합이라는 주제를 유쾌하게 풀어냈다. 사진은 극중 한 장면.
이번 작품은 베네딕토 16세가 추기경 시절의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났던 실화에 영화적 상상력을 더해 진보와 보수의 화합이라는 주제를 유쾌하게 풀어냈다. 사진은 극중 한 장면.

[백세시대=배성호기자] 2005년 요한 바오르 2세가 선종하고 제265대 교황으로 선출된 베네딕토 16세가 취임한 후로 가톨릭은 기존보다 더욱 보수화된 길을 걷는다. 반면 2013년 베네딕토 16세가 갑자기 사임한 후 뒤를 이어 가톨릭 최고 수장이 된 프란치스코 교황은 역대 가장 개방적이고 진보적인 교황이라는 평을 듣는다. 이처럼 극명하게 다른 길을 걸어온 두 사람이 만났다. 그리고 오랫동안 대화를 주고받는다. 고리타분할 것 같았지만 예상 외로 재미있고 감동적이까지 하다. 12월 11일 개봉한 영화 ‘두 교황’ 속 이야기다. 

아카데미 시상식의 전초전이라 불리는 골든글로브 4개 부문에 후보로 올라 작품성도 인정 받은 ‘두 교황’은 2013년 가톨릭 역사상 약 600년 만에 교황직에서 스스로 물러난 베네딕토 16세와 그 뒤를 이은 현재의 교황 프란치스코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작품은 2005년 콘클라베(선거권을 가진 추기경단의 교황 선거)를 다루며 시작한다. 아르헨티나의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이후 프란치스코 교황)이 남미 출신 추기경 역사상 가장 많은 표를 받으며 주목받기도 했지만 교회는 끝내 보수적인 길을 선택하며 라칭거 추기경을 베네딕토 16세로 추대한다. 

그로부터 7년 후, 아르헨티나로 돌아간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은 여러 사건으로 가톨릭에 잇달아 실망감을 느끼고 사직서를 제출한다. 여러 차례 교황청에 보냈지만 단 한 번도 회신이 오지 않는다. 당시 바티칸을 둘러싼 각종 추문으로 위기를 겪고 있던 베네딕토 16세는 베르고글리오에게 답장을 하지 않다가 마침내 그를 바티칸으로 불러들인다. 퇴임을 마음먹은 베네딕토 교황과 사직서를 품에 넣은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이 며칠간 함께 지내면서 길고 긴 대화를 시작한다.

두 사람은 농담 같은 선문답을 주고받다가도, 신념과 철학 앞에선 한 치 양보 없이 설전을 벌인다. 특히 별장의 아름다운 정원을 배경으로 현 교황과 전임 교황의 이념이 격렬하게 대립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베네딕토 16세는 교회가 전통을 유지해야 함을 강조하고, 베르고글리오는 변화의 흐름에 거스르는 교회의 아집이 얼마나 비현실적인 이상을 좇고 있는 것인지를 설득한다. 여기서의 논쟁은 이미 알려진 두 사람의 신념과 발언 등을 바탕으로 창작됐는데 촘촘하게 긴 호흡으로 구성된 대사를 통해 두 이념의 괴리를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변화와 타협, 리더십, 권력의 무게와 책임 등을 놓고 티격태격하던 두 사람은 마침내 오랫동안 가슴을 짓눌러왔던 각자의 약점을 털어놓는다. 

베르고글리오는 베네딕토 16세가 사직서를 반려하며 개혁적인 그가 차기 교황이 돼야 한다고 말하자 과거 아르헨티나 군부독재 시절 예수회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타협적인 선택을 했던 자신의 잘못을 고해한다. 베네딕토 16세도 자신의 고민과 잘못을 고해하며 그들도 신 앞에서는 한낱 평범한 인간이었음을 보여준다. 

주제는 가볍지 않지만, 영화는 전체적으로 밝고 경쾌하고 유머가 넘친다. 성스러운 의식인 콘클라베 장면에선 아바의 ‘댄싱퀸(Dancing Queen)’을 사용하는 등 스토리 전개 중 극과는 어울리지 않는 팝송이 배경음악으로 깔리면서 웃음을 자아낸다. 이를 통해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이야기를 가볍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돕는다. 

가톨릭 내부에 비밀스러운 권력 이양 과정을 다룬 스토리 역시 꽤 흥미롭게 다가온다. 교황 선출 방식인 ‘콘클라베’도 상당히 공들여 묘사했다. 투표용지가 붉은 실에 꿰어지는 모습, 투표 결과에 따라 굴뚝과 난로에서 검은색, 흰색 연기가 피어오르는 과정이 자세히 그려지는데, 그 자체로 볼거리다. 실물 크기로 재현한 시스티나성당 역시 눈길을 사로 잡는다.

골든글로브 주연‧조연상 후보에 나란히 오른 배우의 호연도 인상적이다. 특히 영화 제작 단계에서부터 프란치스코 교황과 꼭닮아 화제를 부른 조너선 프라이스의 연기가 압권이다. 그는 외모뿐만 아니라, 뛰어난 관찰력으로 교황의 걸음걸이나 말투, 말을 잠시 끊어가는 정적까지도 그대로 복사해냈다. ‘양들의 침묵’에서 한니발 렉터를 연기한 명배우 앤서니 홉킨스 역시 베네딕토 16세를 연기하면서도 강렬한 카리스마를 뽐낸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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