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가야본성-칼과 현’ 전…잃어버린 가야왕국 500년의 흔적을 찾아서
국립중앙박물관 ‘가야본성-칼과 현’ 전…잃어버린 가야왕국 500년의 흔적을 찾아서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9.12.13 15:50
  • 호수 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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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미술관‧도쿄박물관 등 31개 기관이 소장한 문화재 2600여점
6m 높이로 쌓은 ‘가야 토기탑’, ‘고령 지산동고분 금동관’ 등 눈길
이번 전시에서는 ‘철의 나라’로 유명했지만 신라에 흡수 통일된 이후 ‘삼국사기’에도 실리지 않는 등 상대적으로 홀대받았던 가야왕국의 역사를 2600여점의 유물을 통해 재조명한다. 사진은 가야의 갑옷과 투구를 재현한 전시회의 모습.
이번 전시에서는 ‘철의 나라’로 유명했지만 신라에 흡수 통일된 이후 ‘삼국사기’에도 실리지 않는 등 상대적으로 홀대받았던 가야왕국의 역사를 2600여점의 유물을 통해 재조명한다. 사진은 가야의 갑옷과 투구를 재현한 전시회의 모습.

[백세시대=배성호기자] 고대 낙동강 일대에 있었던 가락국(금관가야), 아라국(아라가야), 가라국(대가야), 고자국(소가야), 비사벌국(비화가야), 다라국 등 6개 나라의 연맹 왕국이었던 ‘가야’. 한반도에서 가장 품질 좋은 철을 생산했던 ‘철의 나라’로 유명했던 가야는 중국과 일본을 잇는 동북아 교역의 중심지였다. 잠시나마 군사력으로 위협을 주기도 했지만 결국 562년 신라에 완전히 흡수돼 사라졌다. 이후 김부식이 편찬한 ‘삼국사기’에 포함되지 않는 등 상대적으로 홀대받고 있다. 

이런 가야왕국의 찬란했던 역사를 재조명하는 전시가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내년 3월 1일까지 진행되는 ‘가야본성 - 칼(劒)과 현(絃)’ 전에서는 삼성미술관 리움, 일본 도쿄국립박물관 등 국내외 31개 기관이 소장한 가야 문화재 2600여점을 소개한다. 

이번 전시는 ‘가야사 문화권 조사·정비’ 국정과제 추진과 맞물려 영남과 호남 동부 지방에서 대대적인 가야 유적 발굴조사와 정비가 이뤄지는 가운데 그간 잘 알려지지 않은 가야를 입체적으로 살펴보고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자는 취지에서 기획됐다. 전시제목에서 ‘칼’은 가야가 보유한 강성한 힘, ‘현’은 가야금이라는 악기로 대표되는 조화를 각각 상징한다.

이번 전시는 수로왕과 허황옥 설화를 소개하는 프롤로그로 시작한다. 가야의 건국은 신화와 설화의 형태로 전승돼 아직 역사의 일부로 완전히 자리잡지는 못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남해안의 어느 바닷가에서 이뤄진 수로와 허황옥의 만남을 구성한 영상이 벽면에 펼쳐진다. 48년 7월 허황옥이 바다를 건너 김해까지 오는 동안 무서운 파도를 잠재우기 위해 바다에 싣고 온 파사석탑을 복원해 이해도를 높였다. 이 탑은 원래 바다를 항해할 때 균형을 잡기 위해 배의 바닥에 싣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분석 결과 한반도에서는 보기 어려운 암질로 밝혀졌고 전체적으로 변형이 심해 본 모양을 알 수 없다.

이어지는 1부에서는 가야의 존재 방식이었던 ‘공존’을 주제로 가야 역사를 돌아본다. 강력한 중앙집권적 왕권제를 택하지 않고 통합을 추구한 가야의 특징은 다양한 양식의 토기와 독특한 상형토기에서 잘 드러난다. 창원, 함안을 비롯 중국, 북방유목민, 신라, 백제, 고구려와 교류한 것이 유물로 남아있다. 전시장엔 교류의 증거인 토기 유물이 높이 3.5미터로 쌓였다. 원통형으로 만들어 360도 어느 방향에서도 볼 수 있게 250건의 가야 토기를 전시했다. 이 ‘가야 토기탑’을 들여다보면 금관가야를 비롯한 6개 나라가 동맹형태로 공존했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2부 ‘화합’에서는 호남 동부의 남원, 순천 세력을 규합한 가야가 중국에 사신을 파견해 위상을 높이고 우륵의 가야금 12곡을 만들어 화합을 도모했음을 조명한다. 우륵은 음악을 통해 대가야의 정치적 통합을 이루고자 한 가실왕의 명에 따라 12개 지역의 통합을 상징하는 12곡을 지은 인물이다. 보물 제2028호인 ‘고령 지산동고분 금동관’ 등 각종 금동장식과 위세품(왕의 힘을 과시하는 물품)도 눈길을 끈다. 

무엇보다 방 하나를 할애해 고령 지산동 44호 왕의 무덤을 실제 크기에 가깝게 재현한 것이 인상적이다. 지산동 44호분은 6세기 초 조성된 대가야 최고 지배자의 고분으로 직경 27m, 높이 6m에 달한다. 주인공을 묻은 주곽이 중앙에 배치되고 부곽 2기가 남쪽과 서쪽에 있으며 이를 감싸듯 사방에 순장곽 32기가 놓인 채 발굴됐다. 총 35명의 순장자는 호위무사‧마부‧옷감관리인 등 왕을 섬긴 신하들과 그 가족으로 추정된다. 발굴 당시 이미 도굴꾼이 일부 부장품을 털어간 까닭에 전시에서는 다른 무덤에서 출토된 금관 등을 섞어서 무덤 유물을 재현했다. 

3부에서는 ‘철의 나라’로 유명했던 가야의 모습을 소개한다. 가야가 520년 넘게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철을 바탕으로 한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첨단 소재였던 철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가야의 국력은 주변국의 부러움을 샀다. 장군들은 철로 만든 갑옷과 칼을 사용했고, 말도 철로 만든 갑옷과 투구를 썼다. 지금까지 알려진 삼국시대 갑옷은 대부분 가야에서 만든 것이다. 국보 275호인 ‘말 탄 무사모양 뿔잔’에 묘사된 가야의 무사는 당시 가야의 제철 기술이 최강이었음을 보여준다. 

전시 말미에는 가야의 유산을 안고 살아간 사람들 즉, 가야의 디아스포라(고향에서 멀리 떨어져 사는 것)에 관해 소개한다. 최근 동해 추암동에서 출토된 가야 토기들은 가야 멸망 후 신라 영역이던 강원 동해 지역까지 살아야 했던 디아스포라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대표적으로 잘 알려진 디아스포라는 가야의 가치를 간직한 가야금이다. 가야가 망하면서 결국 실패로 끝났지만 화합을 노래한 가야의 음악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번 특별전이 종료된 후에는 부산시립박물관(2020년 4월 1일~5월 31일), 일본 국립역사민속박물관(2020년 7월 6일~9월 6일), 일본 규슈국립박물관(2020년 10월 12일~12월 6일) 순으로 순회전시를 이어갈 예정이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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