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문화이야기]시위가 필요없는 세상을 꿈꾸며
[백세시대 / 문화이야기]시위가 필요없는 세상을 꿈꾸며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9.12.20 13:58
  • 호수 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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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19일, 해가 뜨지 않은 이른 아침부터 필자가 살고 있는 주택가가 떠들썩해졌다. 평소 같은 시간에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음악소리와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인근에 조성 중인 아파트 대단지가 한창 공사 중이어서 흥이 많은 건설노동자들이 노래를 부르며 출근하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소리는 점점 커졌고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창밖을 내다보자 실체가 드러났다. 건설노동자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던 것이다.

이전에도 건설노동자들은 수차례 필자의 집 앞에서 수백명이 모여 시위를 벌이곤 했다. 그런데 그때는 대낮에 집회를 열었고 필자 역시 회사에 있던 시간이라 직접 그 소음을 겪어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날 진행된 시위는 오전 6시부터 8시까지 예정돼 있어 어쩔 수 없이 소음을 감내하며 출근 준비를 해야 했다.

필자가 집을 나설 때까지도 시위는 계속됐고 결국 문 앞에서 시위대와 마주쳤다. ‘결사투쟁’이라는 붉은 머리띠를 두른 시위대는 건설현장 처우 개선을 주문하며 목청을 높였다. 그런데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그들이 처우개선을 요구하는 당사자는 보이지 않았다. 아파트 공사장에는 불이 다 꺼져있었고 시위대의 요구를 들어줄 관리자들 역시 아무도 현장에 나와 있지 않은 상황에서 시위를 진행한 것이다. 

그 사실을 확인하자 잠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아무 상관없는 주민들에게 피해를 줘도 되는가’하는 의문이 떠올랐다. 또 한편으로는 ‘오죽 답답했으면 이 시간에 나와서 시위를 해야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필자의 지인 중에는 광화문 인근에 사는 사람이 있다. 그는 요 몇 년 새 주말마다 엄청난 소음과 집회로 인한 교통체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처음 얼마간은 그 역시 경찰과 구청에 항의를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집회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하나둘 알게 되면서 자신이 참는 방향으로 마음을 바꿨다고 한다. “너무 답답할 때 마음껏 소리 지르고 나면 스트레스가 풀리듯이 시위라도 해야 힘겨운 내일을 버틸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라면서 말이다.

가장 좋은 것은 사람들이 집회를 열어 시위를 하지 않는 세상이 오는 것이겠지만, 아직 그런 시대가 오기에는 갈 길이 먼 것 같다. 어느덧 2019년 기해년의 끝에 다다랐다. 올 한 해에는 유독 떠들썩한 집회와 시위가 많았던 것 같다. 누군가는 요구를 관철시켰고 누군가는 실패했을 것이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아무도 집회를 열지 않아도, 시위를 하지 않아도 만족할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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