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금요칼럼] 다 내 탓이요
[백세시대 / 금요칼럼] 다 내 탓이요
  • 엄을순 문화미래 이프 대표
  • 승인 2019.12.20 14:17
  • 호수 7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차 후 차량 운전해 나오다

세차기계에 문짝 끼는 사고

70대 알바직원이랑 내쪽에서

서로 ‘내 탓’이라 말하다보니

훨씬 기분 좋게 문제 해결돼

남편이랑 나는 일주일에 두 번씩 서울 피맛골에 있는 헬스장에 간다. 비록 왕복 세 시간 이상 운전해야 하는 번거로움은 있지만, 간 김에 맛있는 음식도 먹고 운동도 하고 커다란 목욕탕에서 목욕도 하고. 기분전환에는 딱 맞다.

어느 날 아침. 시동을 걸었는데 자동차 연료통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근처에 멋진 세차장까지 갖춰져 있는 주유소로 들어가 가득 기름을 넣고 세차장에 차를 세웠다. 주유소에 딸린 세차장 기계는 대충 두 종류더라. 바퀴를 움직이는 도르래 같은 것 위에 올려놓으면, 세차기계는 고정되어 있고 바퀴 밑의 기계가 알아서 차를 앞뒤로 움직여가며 차를 닦는 방법이거나, 정지된 차를 기계가 알아서 앞뒤로 움직여가며 차를 닦는 방법이거나. 

우리가 간 세차자은 세차기계가 앞뒤로 움직이는 방식이다. 세차가 다 끝나고 기계가 멈췄다. 앞에 파란불이 들어왔다. 차를 움직여 나가라는 신호다. 오른편에서 세차장 직원이 어서 오라는 수신호를 한다. 그때 남편이 신호를 따라 차를 오른쪽으로 팍 꺾는 순간 ‘푸지직’ 소리가 났다. 세차기계 모서리에 찍힌 것이다. 다시 뺀다며 후진을 하다가 또다시 ‘쿵푸지지직’ 더 큰 소리가 났다.

난감하다. 세차기계에 차의 오른쪽 문짝 귀퉁이가 끼어버렸다. 후진을 해도 전진을 해도. 와장창 문짝이 찢겨나갈 것이다. 세차장 직원은 안절부절. 기름을 넣어준 직원도 전화기를 붙들고 왔다 갔다 한다.

가게 안 계산대에 있던 여자는 사고 현장만 멍하니 바라보고. 우선 배달 가신 주유소 사장님을 전화로 불렀다. 기계를 조작해서 세차기계를 뒤로 빼면 될 거란다. 세차직원은 연신 죄송하다며 ‘제가 다 배상해드릴게요’ 한다. 그런데 모자를 벗은 그 세차직원을 쳐다보고는 깜짝 놀랐다. 족히 70은 되셨을 알바 할아버지.

‘아니에요. 저희 잘못이 커요. 오란다고 갑자기 직각으로 차를 꺾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오른쪽을 잘 보고 해야지.’

‘아니에요. 전 빨리 수건으로 닦아드릴 생각에 빨리 오시라 했죠. 차 고친 다음 알려주세요, 비용은 제가 드릴게요.’

‘아니에요. 할아버지. 이거 알바하셔서 얼마 버신다고 할아버지한테 책임을 돌립니까. 우리가 알아서 고칠게요. 그나저나 세차기계에서 차를 잘 빼야 할 텐데.’

차는 기계에 끼어 있고 사람들은 분주하게 여기저기 연락 중인데 알바할아버지랑 우리는 화기애애하게 서로 ‘내 탓이요’하는 중이다. 사실 차가 기계에 끼인 다음, 세차기계 망가뜨렸을까 봐 걱정이 더 앞섰다.

시골에서는 보기 드문 최첨단 장치인 것 같던데 가격이 수천만 원은 족히 갈 거다. 그때 알바  할아버지가 먼저 잘못을 시인하자 우리는 양심에 찔렸던 것이다. 배달 갔다가 돌아온 사장님. 작동이 잘 안 된다며 기계를 판 사람을 찾아 사방팔방 연락 중.

‘우리가 힘을 합쳐 차를 들어 옆으로 옮깁시다.’ 알바 할아버지가 내놓은 해결책이다. 우리가?

70대 알바 할아버지, 60대의 주유하던 사람과 사장님, 계산대에 있던 50대 아주머니 그리고 60대인 우리 부부. 이런 노인들이 차를 번쩍 들어 옮긴다고? 보험 레커차도 오고, 지게차도 왔지만 헛수고였다. 지게차로 들면 차 바닥 손상이 너무 커서 안 되고, 레커차는 차를 연결할만한 자리가 없어 안 되고. 돈도 안 받고 그냥 돌아가면서 다들 안타까워 했다. 한 시간 반이 지난 후에야 기계 판 사람과 통화해서 기계 조작을 통해 차를 무사히 빼냈다. 차에 생긴 손바닥만 한 흉터를 보더니 사장님이 한마디 한다. 

‘고친 다음 연락하세요. 그 비용 저희가 드릴게요.’ 

‘아니에요. 저희 잘못도 있는데요,’

일이 생겼을 때 먼저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것. 절대 쉽지 않은 일이다. 인정하는 순간 그 책임을 뒤집어쓰게 될 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TV 형사 드라마의 단골 대사다. 변호사가 의뢰인에게 하는 첫마디도 “어떤 잘못도 인정하지 말라”다.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상대방의 실수나 잘못을 부지런히 찾는 일. 그래야 이길 승산이 크고 그걸 알기에 사고가 나면 모두 상대편 잘못에 집중하는가 보다. 

하지만 이번에는 사고 관련자 모두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에 바빴다. 상대가 잘못을 인정하는 걸 보고 자기 잘못도 오픈하게 되고 결국엔 서로서로 자기 탓이라 하게 되고 상대방의 약점부터 찾는 해결법보다 자기 잘못부터 인정하는 이런 방법이, 훨씬 빠른 그리고 기분 좋은 해결법이 아닌가 싶다. 두 시간 내내 추위에 떨다가 뒤늦게 찌그러진 차를 타고 운동하러 가는 내내 우리 둘은 행복해했다.

‘여보, 휴우, 다행이다. 세차기계 물어 달라고 했으면 어쩔 뻔했어?’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