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여는 고전의 향기 [113] 수세(守歲)
마음을 여는 고전의 향기 [113] 수세(守歲)
  • 김성애 한국고전번역원 수석연구위원
  • 승인 2019.12.27 13:49
  • 호수 7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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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세(守歲)

대문에 꽂는 도부(桃符) 너무도 허황되고

뜰 안의 폭죽 소리 시끄럽고 지루하네

벽온단으로 온역(瘟疫) 피함도 헛말이지만

깊은 술잔 기울이려 짐짓 사양 않노라

門上揷桃何詭誕 (문상삽도하궤탄)

庭中爆竹奈支離 (정중폭죽내지리)

辟瘟丹粒猶虛語 (벽온단립유허어)

爲倒深杯故不辭 (위도심배고불사)

- 『동문선』 권20에 실린 이규보(李奎報 1168~1241)의 칠언절구(七言絶句)


새해가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아직은 설이 남았다는 것을 위안 삼아 섣달그믐 제야의 풍습과 관련된 시를 소개해 본다. 해가 갈수록 절기와 명절이라는 데에 마음 설레는 일이 적어지지만 말 그대로 일상생활에서 하나의 마디 역할을 해주는 것이기에 한 해가 간다는 의미를 곱씹어보게 된다. 

위의 시는 짧은 칠언 절구이지만 제야(除夜)에 행하는 여러 풍습이 고루 담겨 있다. 보통 수세(守歲)는 ‘해지킴’이라고도 하는데 섣달그믐 밤에 잠을 자지 않고 밤을 새우는 풍습을 말한다. 소식(蘇軾)이 지은 「궤세(饋歲)」, 「별세(別歲)」, 「수세(守歲)」 시 서문에 “한 해가 저물 때에 서로 음식물을 가지고 문안하는 것을 궤세라 하고, 술과 음식을 마련하여 서로 불러 함께 마시는 것을 별세라 하고, 섣달그믐 저녁부터 이튿날 새벽까지 잠을 자지 않는 것을 수세라 하니, 촉(蜀) 지방의 풍속이 이와 같다”라고 하였는데, 중국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고려 때부터 수세의 풍습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섣달그믐 밤에 잠을 자지 않는 이 풍속은 경신수야(庚申守夜)라는 고사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즉, 60일에 한 번씩 돌아오는 경신일(庚申日)이 되면 사람의 몸에 기생하고 있던 삼시충(三尸蟲)이 잠든 사이에 몸 밖으로 빠져나가 상제(上帝)에게 그동안의 죄과를 낱낱이 고해바쳐 수명을 단축시킨다고 믿었기 때문에 이를 막으려고 잠을 자지 않고 지킨다는 것이다. 섣달그믐날이 경신일이 아니라 할지라도 이렇게 밤을 새우며 액막이를 하는 수세 풍속은 고려 때 매우 성했고 조선조까지 행해졌다. 

또 『동국세시기』에는 “섣달그믐날 밤 인가에서는 방, 마루, 다락, 곳간, 문간, 뒷간에 모두 등잔을 켜놓는다. 흰 사기 접시 하나에다 실을 여러 겹 꼬아 심지를 만들고 기름을 부어 외양간, 변소까지 불을 켜놓아서 마치 대낮 같다. 그리고 밤새도록 자지 않는데 이를 수세라 한다”라고 하였다. 이렇게 제야에 집안 곳곳에 등불을 켜놓는 것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풍습이다. 

첫 구절에 나오는 도부(桃符)는 복숭아나무로 만든 부적이란 의미이다. 이는 악귀(惡鬼)를 쫓는 부적의 일종으로 복숭아나무 판자에 신도(神荼)와 울루(鬱壘)라는 두 신상(神像)을 그려서 대문 곁에 걸어 두어 악귀를 쫓는다는 고사에서 유래된 것이다. 마당에서 폭죽을 터뜨려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것도 벽사(闢邪), 즉 나쁜 기운을 물리치는 풍속의 하나였다. 또 열병을 물리치는 데 유용하다는 벽온단(辟瘟丹)을 만들어 향으로 피우거나 단약으로 술과 함께 복용하기도 하였다. 궁중에서는 내의원에서 제작하여 임금께 진상하기도 하고 민간에서 만들어 서로 선물하기도 하였다. 이규보는 이런 부적이나 폭죽놀이, 벽온단 등은 모두 실제 효용이 없는 헛소리라 치부하면서도 제석(除夕)에 술을 마실 수 있다면 사양하지 않겠노라는 호쾌한 일면을 보여 주고 있다. (하략)     

김 성 애 한국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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