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세상읽기] 일본 오사카 총영사 잔혹사
[백세시대 / 세상읽기] 일본 오사카 총영사 잔혹사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9.12.27 14:10
  • 호수 7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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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오사카 총영사가 다시 한 번 ‘전리품’으로 등장했다. 이 자리는 정권 창출과 유지에 이익이 되는 행동을 한 이에 대한 보은인사의 ‘단골거래처’(?)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처음 세간의 관심을 받은 건 이명박 정부에서였다. 2009년 용산참사 과잉진압 논란으로 옷을 벗은 김석기 서울지방경찰청장이 2년 뒤 오사카 총영사로 임명된 것이다. 

두 번째는 드루킹 여론조작 의혹 사건에서였다. 2018년 2월 드루킹 김동원씨가 김경수 경남지사 측과 오사카 총영사 자리를 둘러싸고 청탁과 제안이 있었다고 허익범 특검팀이 결론을 내렸을 때다. 

세 번째는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과 관련, 더불어민주당 임동호 전 최고위원이 울산시장 선거에 불출마 조건으로 이 자리를 거래 조건으로 달았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다.

총영사는 해외 교민과 기업에 대한 지원, 국가 간 문화 교류, 관광객 보호를 주 임무로 하는 자리다. 미국·일본·중국처럼 우리 국민이 많고 여러 군데 퍼져 있으면 대사관 외 주요도시에 따로 총영사관을 둔다. 베트남 다낭을 포함해 총 45곳에 있다. 

영사관이 보은 인사의 단골로 등장한 배경은 임명권자로선 부담이 적고 당사자로선 처우가 좋은 자리여서다. 보내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적당히 쉬다오는 곳’으로 여긴다. 대사와 달리 총영사는 아그레망(상대국의 사전 동의)이 필요 없다. 업무 역시 골치 아픈 일이 적다. 반면 공관장으로서 대사 수준의 대우를 받는다. 관할 지역엔 성공한 사업가도 다수여서 네트워크 쌓기에 좋다는 평도 있다. 김석기 전 청장도 총영사 임명 9개월 만에 사퇴해 19대 총선에 출마했다. 

오사카 총영사는 일본 내 총영사관 중 가장 규모가 크다. 2019년 7월 기준 일본에 거주하는 재외국민 44만9634명 중 13만4036명(29.5%)이 오사카 총영사 관할지역인 오사카부, 교토부, 나라현, 시가현, 와카야마현에 거주하고 있다. 일본 제2의 도시라는 점에서 근무·생활환경이 좋고 교민사회에 미치는 입김이 세 대선 이후 논공행상 과정에서 빠짐없이 거론돼 왔다. 최근 일본이 중국에 밀려 예전보다 위상이 낮아졌다는 평가도 있지만 여전히 재외국민이 많은 LA총영사관, 상하이 총영사관 등과 함께 알짜 총영사관으로 손꼽히는 자리이다. 

임 전 최고위원과 드루킹이 오사카 총영사를 원한 시점(2018년 2월)은 공교롭게도 겹친다. 허익범 특검팀 수사에 따르면 드루킹은 자신의 측근인 도모 변호사를 오사카 총영사로 임명해 달라고 청탁했다. 한 달 뒤 백원우 당시 청와대 민정비서관이 직접 도 변호사를 면담했다. 임 전 최고위원 역시 그 해 2월 13일 울산시장 출마를 공식 선언하고 열흘 뒤 한병도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을 만났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한 전 수석이 “울산에서는 어차피 이기기 어려우니 다른 자리로 가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해 “(그러면)오사카 총영사로 가고 싶다”고 말했다는 게 임 전 최고위원의 전언이다.

다른 자리를 역제안 받았다지만 거절했다는 점도 비슷하다. 임 전 최고위원은 한병도 정무수석과 만난 자리에서 오사카 총영사 자리 대신 고베 총영사를 제안 받았으나 “역할을 할 수 있는 오사카 총영사 자리가 아니면 다른 자리에는 연연하지 않겠다”고 했다고 한다. 드루킹도 김경수 지사로부터 센다이 총영사 자리를 듣곤 “듣도 보도 못한 일본 시골 동네 총영사직을 받으라고 하니 거절했다”(2019년 5월 15일 항소심 공판)고 말했다. 

임 전 최고위원은 12월 19일 검찰에 출석해 “오사카 총영사라는 자리가 청와대 의지가 있어야 가능한 자리라는 의미에서 (자리 제안에 청와대의 뜻이 있었다는 취지로) 의견을 말했는데 마치 청와대가 공식적으로 제안한 적이 있는 것처럼 알려졌다”고 했다.

현 오사카 총영사는 문재인 정부 들어 한일 위안부 합의를 백지화하는 과정을 이끈 한겨례신문 논설위원 실장 출신이 맡고 있다. 외교가에선 젊은 외교관이 가야할 곳에 정치인이 낙하산 타고 온다고 불만 섞인 말들이 나오기도 한다. 이런저런 이유에서 앞으론 오사카 총영사 출신 인사들은 자기 이력에서 총영사 경력을 숨기려 할 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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