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 일산병원 노년기 암 클리닉을 가다 “지병·합병증 등 감안 어르신에 딱 맞춰 암 치료”
[신년특집] 일산병원 노년기 암 클리닉을 가다 “지병·합병증 등 감안 어르신에 딱 맞춰 암 치료”
  • 이수연 기자
  • 승인 2019.12.27 14:42
  • 호수 7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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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기 암 클리닉에서는 계획부터 치료 이후까지 환자 맞춤형 치료를 제공하고 있다. 사진은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 노년기 암 클리닉 허자윤 교수가 환자와 상담하고 있는 모습.
노년기 암 클리닉에서는 계획부터 치료 이후까지 환자 맞춤형 치료를 제공하고 있다. 사진은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 노년기 암 클리닉 허자윤 교수가 환자와 상담하고 있는 모습.

암 편견 없애고 편안한 환경 만들어…건강 상태 따라 다른 치료법 적용       

협진 시스템으로 여러 과 전전 안 해도 돼…치료 후 호스피스까지 연계

[백세시대=이수연기자] 경기도에 거주하는 김 모(78) 어르신은 암 진단을 받은 후 치료를 위해 꾸준히 대학병원을 찾는다. 당뇨와 고혈압을 함께 앓고 있는 김 어르신은 한 번 병원에 다녀오면 진이 쏙 빠진다. 예약을 해도 진료과가 다르다 보니 내분비내과와 심장내과, 종양내과를 순회하듯 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다니다 보면 불안함은 더욱 커지기 마련이다. 조금씩 회복하고는 있다지만, 점점 치료받는 게 고통스러워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다. 

노년기 암 환자들은 암뿐만 아니라 만성질환 등 합병증 치료를 병행하는 경우가 많다. 암 치료에 만성질환 치료까지 진행하려면 한 번 병원에 갈 때마다 여러 과를 돌아다니며 오랜 시간 대기하는 등 기운을 소모하게 된다. 

이러한 노인 암 환자들의 불편함을 해소하고, 환자별 맞춤 치료를 제공하기 위해 국내 최초로 ‘노년기 암 클리닉’이 개소되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에서는 11월 1일부터 노년기 암 클리닉을 본격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노년기 암 클리닉에서는 노년기 암 환자의 신체‧인지능력, 정서, 일상생활, 사회‧환경 등에 대해 종합적으로 평가하고, 생활습관 관리, 영양 상담, 재활 치료, 호스피스-완화의료 등 노인 환자의 상태에 딱 맞는 항암치료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허혈성 심질환 및 고혈압, 심부전, 당뇨병, 골다공증, 천식 등과 같은 만성질환과 암 치료 후 발생할 수 있는 장기 후유증에 대한 관리도 함께 진행되어 노인 암 환자들의 불편을 줄여주고 있다. 

◇암 치료에 대한 편견을 개선하다

“어르신들은 암 치료를 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나 암에 대한 잘못된 상식 때문에 암이 커질 때까지 병원을 찾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나이 때문에 치료를 받아도 소용이 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이고, 노인 암은 천천히 자란다는 편견도 치료를 늦추는 데 일조합니다. 어르신들이 암 치료에 대한 편견을 거두고 병원을 찾았을 때 좀 더 편안하게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하고 싶다는 바람으로 개소하게 됐습니다.”

일산병원 노년기 암 클리닉 개소에 앞서 허자윤 교수가 고민했던 것들을 이야기했다. 허 교수는 암 발생 후 치료를 받지 않고 미루다가 암이 커질 대로 커진 후에 병원을 찾는 어르신들을 볼 때마다 안타까움을 느꼈다. 

예를 들어 유방암에 걸린 어르신 중에는 멍울이 만져진다는 걸 알면서도 크기가 별로 크지 않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병원을 찾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암은 몇 년 동안 변화가 없다가도 갑자기 빠른 성장을 보여 치료를 어렵게 만들 수 있다. 초기에는 수술이나 약물로 치료할 수 있지만, 뒤늦게 병원을 찾으면 유방 전체를 암 덩어리가 차지하거나 암이 뼈나 뇌 등의 장기로 전이돼 노년을 고통스럽게 보내게 된다. 

또 노년기 암은 수술이나 항암․방사선 치료를 하더라도 신체 특성과 생활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어르신마다 치료 방법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몸은 건강한데 치매 때문에 치료가 어려운 환자가 있을 수 있고, 암 치료를 받을 수 없을 만큼 쇠약해서 치료가 의미 없는 환자도 있다. 약물치료만으로 10년 넘게 상태를 유지하는 노인 암 환자도 있고, 90세에도 암 치료를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또 항암치료 후 완치 판정까지 받는 노인 환자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허 교수는 “어르신들 암 치료에는 정답이 없다”며 “어르신 개인의 다양한 사정을 고려해서 치료를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방사선치료 장비 래피드아크에서 치료받는 환자의 모습.
방사선치료 장비 래피드아크에서 치료받는 환자의 모습.

◇환자를 위한 맞춤형 암 치료를 제공하다

노인 암 환자의 치료 방법을 결정할 때는 환자의 기대여명이 어느 정도인지, 노화가 얼마나 진행되었는지, 항암치료나 수술을 받을 경우 부작용은 얼마나 심각할지 등을 면밀하게 검토한다. 

일산병원 노년기 암 클리닉은 노년기 암 환자의 특성에 맞춰 내과, 방사선종양학과, 영상의학과 등 진료과 간 긴밀한 협진 시스템을 활용한 체계적인 치료 계획을 설계해 진료의 효율성을 높였다. 

허자윤 교수는 “노년기 암 클리닉에서는 당뇨나 혈압 등의 약을 함께 처방받는 등 합병증 관리를 함께할 수 있으며, 협진 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 균형된 치료를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노년기 암 환자들은 치료도 중요하지만, 치료 이후의 돌봄 영역도 중요하다. 생활이 어려운 어르신들은 노인장기요양보험이나 가정간호시스템 등을 받도록 연계해주고, 환자의 의지를 충분히 숙지한 뒤 연명의료계획서 작성 등을 돕기도 한다. 

허자윤 교수는 “의료에는 ‘큐어 앤 케어(Cure & Care, 치료와 돌봄)’라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며 “돌봄도 의료의 중요한 부분인데, 노년기 환자들에게는 치료보다 돌봄이 필요할 때가 많다. 완치될 때까지 최선을 다하지만, 사는 날까지 편안하게 사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도 노년기 암 치료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몇 년을 더 사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게 ‘암 치료 후 남은 생을 어떤 모습으로 살 수 있느냐’이다. 수술 후 합병증이나 항암치료 후 부작용 위험이 크다고 판단된 경우에는 적절한 보조 치료를 병행하고, 암 치료 방법을 바꿔 환자가 견딜 수 있는 치료를 시행한다. 

따라서 치료 단계에서 본인의 의사가 굉장히 중요하다. 환자 본인은 어느 단계까지 치료를 원하고, 어떤 계획을 세우고 있는지, 자녀들의 생각은 어떠한지 등을 상담하는 것도 치료의 일환이다.

허자윤 교수는 “어디까지나 환자가 덜 고생하는 방향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항암치료를 했을 때 기대여명이 더 늘어난다고 하더라도 하지 않았을 때 더 편안하게 생을 마감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판단되면 환자와 함께 치료 방향을 바꿀 수 있다. 정답이 없기 때문에 환자에게 맞는 치료와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노력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이수연 기자 sylee@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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