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기고] 아름다운 하직을 준비하며
[백세시대 / 기고] 아름다운 하직을 준비하며
  • 임종선 시인 수필가
  • 승인 2020.01.03 15:20
  • 호수 7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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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후 점쟁이를 찾아가 운세를 물어본 적이 있다. 여자 사주쟁이는 가만히 필자를 들여다보면서 ‘79세수’라고 말했다. 팔순을 넘기기 힘들다는 말에 다소 당황하긴 했지만 아직 20년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점쟁이의 이야기가 머리를 맴돌았다. 

“여보게 친구! 건강관리만 잘하면 80세 이상은 살 것이니 운동이나 열심히 하게.” 

필자의 고민을 알게 된 친구는 이렇게 말했고 다행히도 새해가 밝으면서 뇌출혈로 86세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연세를 넘어섰다.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시기 얼마 전에 아들의 짐을 고향 보성득량역 홈에 내려놓으시고, 기차가 도착하기 전에 석양을 향해 두 손을 합장 하시면서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말과 함께 연거푸 절을 하셨다. 

당시 비정상적인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자식사랑이나 부정(父精) 때문이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을 했다. 이제 올 것이 왔구나 하면서도, 병원에 즉시 모시지 못하고 한동안 시간을 보내는 불효를 저질렀다.

지팡이에 의지하고 있는 아내를 간병하면서 필자 역시 어느 정도 건강을 유지하고 있지만, 마음이 나약해지고 몸이 쇠잔(衰殘)해지고 있는 탓일까? 모든 일에 의욕이 사라지고, 끼니때가 돌아오면 귀찮고 부담스러운 것이 현실이다.

최근에는 지난 일생을 자주 되돌아본다. 과연 나라는 존재는 이 세상에 태어나 존경받는 자랑스러운 인간으로 살았을까. 사람답게 처신하고 봉사하고 헌신하면서, 모든 이웃으로부터 추앙을 받을 수 있는 인간이었을까?

항상 자녀들과 손자녀들에게 “나는 인간으로서 존경받고 후회하지 않게 일생을 살아가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고 다짐해왔다. “너희들도 살면서 너무 영리(營利)에 집착하지 말고 항상 이웃과 남에게 봉사하고 헌신하는 마음으로 생활해라, 그러면 다음에 너희에게 다 되돌아오게 마련”이라고 당부도 했다.

몇 해 전 “앞으로는 좀 더 재미있고 해학적이고 생동감 있게 작품을 창작하겠다”는 다짐을 했지만, 해가 갈수록 약속이나 다짐들을 지키지 못하고 나약해진 모습만 보여서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인명재천’(人命在天)이란 말이 있듯 자연의 섭리를 어찌 거역하리요. 하지만 문학 활동을 하면서 맺어진 소중한 인연들이 “앞으로 100세 시대이니 더욱 용기를 갖고 힘을 내라”는 격려를 해줘 건강관리와 창작 의욕을 되찾고 있다.

필자를 아껴주는 사람들을 두고 세상을 하직해서는 안 되겠다고 염라대왕님께 미리 당부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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