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금요칼럼] 우리의 삶은 어디로 가고 있나
[백세시대 / 금요칼럼] 우리의 삶은 어디로 가고 있나
  • 오경아 작가,가든디자이너
  • 승인 2020.01.03 15:23
  • 호수 7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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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경아 작가,가든디자이너]

만약 전기가 완전히 끊긴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

비록 문명의 도구가 사라져도

숲과 자연이 있는 한

지구상에 인류의 삶 계속될 것 

동지를 지났으니 이제 점점 낮이 길어질 테지만 아직 겨울밤은 길고 까맣다. 얼마 전 늦은 밤 제목도 기억이 나지 않는 영화를 남편과 함께 본 적이 있다.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했다. 전기가 끊겨서 돌아오지 않는다면 우리 삶은 어떻게 될까에 대한 상상이었다. 전기가 없어진 우리의 삶은 영화 속 상상으로는 대재앙이었다. 휴대전화, 컴퓨터, 텔레비전이 무용지물이 되고, 수도가 끊기고, 더이상 기름을 공급받지 못해 자동차가 다니지 못하게 되고….

지구는 약 46억년 전쯤 생겼을 거라 추정한다. 암석 덩어리였던 지구에 생명체가 태동한 것은 35억년 전쯤, 그중 유인원이 진화되어 ‘현명한 유인원’이라는 뜻의 호모사피엔스가 지구에서 광범위하게 살기 시작한 때를 대략 10만년에서 3만년 사이로 본다. 어느 역사학자의 표현처럼 우리 몸 전체가 지구의 역사라면, 인류의 출연은 손톱의 끝자락, 자라면 딱 잘라줘야 하는 그 정도의 시간에 위치해있는 셈이다. 이 짧은 역사의 인류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정말 엄청나다. 아즈텍, 이집트, 황하 등의 고대 문명이 태동한 시점이 5000년 전쯤, 산업혁명이 1760년, 그로부터 100년쯤 지나 1870년 전기가 발명되었고, 180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컴퓨터가 개발되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인류가 일으키는 변화의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내가 대학을 다닐 무렵 겨우 타자기가 워드 프로세스로 교체되었는데, 순식간에 개인용 컴퓨터가 전 세계에 보급되었고, 무선 전화기도 신기했던 게 불과 30년 전인데 이제는 휴대전화가 컴퓨터를 대신한다. 게다가 영국의 수학자, 팀 버너 리에 의해 개발된 ‘world wide web’의 인터넷 세계는 전 세계를 하나로 연결하고 있다. 사실 앞으로 인류가 어떤 방향으로 무엇을 발전시키게 될지는 이미 예측불허가 되어버렸다고 많은 과학자와 학자들이 입을 모은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이 영원한 것이 아니라면 상황은 어떻게 될까? 우리는 이미 언젠가 고갈될 연료를 끝이 나지 않을 것처럼 쓰고 있고, 무엇인가 하나가 깨지면 연쇄반응으로 모든 것이 사라져버릴 수 있는 유리처럼 연약한 구조 속에 살고 있다는 걸 잊고 있다면. 

식물은 지구에서 가장 오래 살아온 생명체 중 하나다. 그 세월만큼 동물처럼 삶의 방식이 간단하지 않다. 동물처럼 암, 수 따로 있는 식물도 있지만, 한 나무에 암수가 같이 있는 경우도 있고, 환경에 따라서는 암수를 바꿀 수도 있다. 몸 안에 화학 성분을 만들어 자신을 막무가내로 먹어 치우는 동물을 불임으로 만들어 몇 년 안으로 개체 수를 조절하기도 한다. 복잡하지 않은 세포 조직을 유지해 잎과 가지에 손상이 온다고 해도 다시 왕성한 회복도 가능하다. 이런 지구 최강의 생명체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영화 속에서 혼자 살아남게 된 두 자매는 먹을 것이 떨어지자 결국 백과사전을 들고 숲으로 나간다. 어떤 식물을 먹어도 되는지, 어떤 식물에게 우리 몸을 치유할 화학 성분이 있는지를 알아내기 시작했다. 우리가 만들어낸 모든 문명의 산물이 어느 날 사라져버린다고 해도 인류는 끝내 살아남을 거라고 나는 확신한다. 그런데 그 유일한 방법은 이 지구에 살고 있는 생명체와의 협업일 수밖에 없다. 때론 그것이 비정한 생명체 간의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일지라도.

겨울 추위가 찾아오면 산에서 내려온 야생동물들이 속초집 정원으로 자주 내려온다. 외양간을 고친 사무실 유리창 앞에 길쭉한 사각형의 돌확을 두었는데 여기에 늘 물을 담아둔다. 돌확에 담긴 물을 먹으려고 새들이 들락거리고 더러는 족제비를 포함한 작은 포유류 동물도 눈에 띈다. 그 순간만큼은 이 지구는 우리만의 것이 아니라 많은 생명체가 함께 공유하는 곳임을 기억나게 한다.

내가 본 영화는 결국 자매가 무너져가는 집을 완전히 태우고 더 깊숙이 숲속으로 들어가기로 결정하며 끝이 났다. 전기가 없이도 숲이 있는 한 충분히 잘 살 수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삶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예측불허라고는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우리 역시 지구인이고, 그 삶의 터전은 역시 지구다. 그리고 이 지구에는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는 수많은 생명체가 있고 결국 우리도 그들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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