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여는 고전의 향기 [115] 겉과 속
마음을 여는 고전의 향기 [115] 겉과 속
  • 서인숙 한국고전번역원
  • 승인 2020.01.10 14:34
  • 호수 7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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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과 속 

겉모습만 보고서 속마음까지 믿기 때문에,

간사한 사람이 나라를 어지럽히고 있어도 

뉘우쳐 바꾸게 할 수가 없는 것이다 

 

視其外而信其中                  (시기외이신기중),

故有奸人亂國而不可悔者也  (고유간인란국이불가회자야)

- 장유(張維, 1587~1638) 『계곡집(谿谷集)』 권4 「필설(筆說)」


윗글은 눈속임으로 만든 붓에 빗대어 당시 사대부들의 허실을 꼬집은 내용이다. 

장유의 벗 중 글쓰기를 좋아하는 이생(李生) 아무개가 어느 날 족제비 꼬리털로 만든 황모필(黃毛筆)이라는 붓을 얻었는데, 터럭이 빼어나게 가늘고 번질번질 윤기가 흘러 아주 좋은 붓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붓을 한 번 털어 보니 그 속이 더부룩한 게 이상하여 붓에 먹을 적셔 시험 삼아 글씨를 써 보았는데, 바로 구부러져 꺾이는 바람에 글자가 제대로 써지지 않았다. 그래서 주의 깊게 살펴보니 그 속에 집어넣은 것은 거의가 개의 터럭으로, 가늘고 윤기가 나는 족제비털을 겉에만 입혀 놓은 것이었으므로 경악하고 탄식해 마지않았다. 이후 장유를 만나서 사람을 속이는 상술(商術)에 대해 분통한 심정을 토로하자, 장유는 다음과 같이 말해 주었다.

“이런 것만 괴상한 일이 아니다. 오늘날의 사대부(士大夫)라고 하는 자들은 몸을 의관(衣冠)으로 감싸고 언어를 그럴 듯하게 구사하면서 걸음걸이도 법도에 맞게 하고 얼굴색 역시 근엄하게 꾸미고 있으니, 그들을 바라보면 모두 군자(君子)나 정사(正士) 같게만 여겨질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남이 보지 않는 곳에 있으면서 이해관계가 걸린 상황을 만나게 되면 평소의 뜻을 바꿔 욕심을 부리며 불인(不仁)한 마음을 품고 불의(不義)한 행동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장유는 대체로 뛰어난 듯 번드르르하게 외양을 장식했지만 다른 사람이 보지 않는 곳에서는 욕심이 가득 찬 행동이나 마음을 드러내는 당시의 사대부들이, 마치 겉은 족제비털로 되어 있지만 그 속은 온통 개의 털로 채워져 있는 이 붓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고 꼬집은 동시에 하나의 현상만을 볼 뿐 더 나아가 그 이면까지 미루어 깊이 생각할 줄 모르는 친구의 마음도 깨우쳐 주었다.

보이는 것이 다는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외양만 보고 그 사람을 평가해 믿고 의심하지 않는다. 나무랄 데 없이 그럴듯해 보이는 겉모습에 감추어진 속내를 간파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참으로 쉬운 일이 아닌 듯하다.    

서인숙 한국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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