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문화이야기] 돈은 없어도 정정당당한 예술인들
[백세시대 / 문화이야기] 돈은 없어도 정정당당한 예술인들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0.01.10 15:11
  • 호수 7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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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2015년 개봉해 13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베테랑’의 명대사 중 하나다. 이 말은 톱스타임에도 불구하고 무명배우와 스태프를 살뜰히 챙기는 배우 강수연이 자주하는 말이었다고 한다. 이를 감명 깊게 들은 류승완 감독이 자신의 영화에서 인용해 유명해졌다.  

여기서 가오(顔, かお)는 ‘체면, 낯’ 등을 의미하는 일본어이다. 네이버, 다음 등 포털의 어학사전에서는 ‘폼(form)을 속되게 이르는 말’로 해석하면서 ‘폼’으로 순화해서 쓸 것을 권장한다. 하지만 필자는 일본어를 외래어로 순화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본다. 또 한자어이긴 하지만 가오, 폼 등과 분명하게 바꿔 쓸 수 있는 말이 있다. 바로 염치(廉恥)다. ‘체면을 생각하거나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으로 ‘가오’가 가진 의미와 일맥상통한다. 

지난 1월 4일 방영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풍문으로만 떠돌던 음원 사재기 의혹을 추적했다. 방송에서는 사재기를 주도하는 업체를 파헤치진 못했지만 기술적으로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 방송에서 특히 빛났던 것은 브로커들에게 음원 사재기 제안을 받았지만 완곡히 거절한 가수들이었다. 

음원차트 1위를 기록하면 유명세를 타면서 다음 앨범도 성공할 확률이 높아진다. 현재까지도 검거된 브로커가 없을 만큼 실체를 추적하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당 가수들은 일언지하에 이를 거절했다. 정정당당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또 1월 7일에는 김금희, 최은영, 이기호 작가 등이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권위를 가지는 ‘이상문학상’ 우수상을 반납했다. 해당 작가들은 ‘작품에 대한 소유권이 3년 동안 출판사에 귀속된다’는 등 일부 조항이 작가에게 불합리한 규정이라며 수상을 거부한 것이다. 이상문학상도 음원차트와 마찬가지로 한 번 이름을 올리면 소설가로서의 명성을 단숨에 얻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 과감히 상을 포기했다. 독자들은 세 작가의 결단에 큰 환호를 보냈고 이상문학상을 주최하는 출판사 측은 수상발표를 연기하고 운영 규정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수많은 가수들이 음원 사재기 의혹에 시달릴 만큼 편법이 판을 치고, 보다 큰 성공을 위해 독소 조항을 참아내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현실에서도 돈보다는 ‘염치’를 챙긴 가수와 문인들의 행보는 박수 받아 마땅하다. 반면 염치없는 ‘장사치들’의 ‘물건’은 시장에서 쫓아내야 한다. 염치 있는 그들이 진심을 다해 만든 음악과 소설들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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